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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부 줄고 사정은 어려워도…31년째 지켜온 한끼 식사[토마스의 집 르포]
25일 쪽방촌 주민 및 고령자 286명 영등포 ‘토마스의 집’ 찾아
쪽방 주민 “급식소 쉬는 날 제외하면 점심은 항상 이곳서 해결”
자원봉사자들 “지나가면서 토마스의 집 못 본 사람은 없을 것”
高물가, 줄어든 기부금에 한숨…“올 추석엔 지원이 거의 없어”

25일 서울시 영등포구 토마스의 집에서 노숙인과 고령자들에게 제공할 음식이 차려진 모습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수습기자]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28-1. 영등포역 북부에 위치한 노후 주거지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이곳에선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이 제공되고 있다. 1993년 설립된 이후 31년 동안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고 있는 ‘토마스의 집’이다.

토마스의 집 원장이자 설립자인 문래동 성당 김종국(75) 신부는 교도소 교화위원이던 시절 재소자들이 출소 후 거리를 배회하다 결국 다시 범죄를 저지르곤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을 어루만지기 위해 떠올린 생각이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곧바로 성당에서 기부금 1200만원을 모아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하고, 식기와 조리 도구를 샀다.

김 신부는 직접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건물을 청소하고 물건을 옮겨 왔다. 이후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토마스의 집을 운영해 왔다. 토마스의 집은 현재는 영등포 지역 사회 내 복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25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토마스의 집에는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286명의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오전 10시 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은 앞치마를 매고 급식을 위한 식사 준비가 한참이었다. 그보다 30분 빠른 9시 30분부터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거나 근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식사 시작 시간인 11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 앉았다.

“성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토마스에서 식사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아멘.”

총무인 박경옥(65) 씨가 식사기도를 했다. 오늘의 식사 메뉴는 깻잎과 묵은지볶음, 제육볶음, 그리고 부대찌개였다.

기자가 급식봉사와 취재를 겸하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식사하러 오는 이들이 배식을 받을 때 양이 많거나 먹지 않는 반찬이 있으면 ‘덜어 달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선 음식을 최대한 남기지 않는다는 규칙이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식이 많으면 덜고, 필요하면 추가로 배식을 받는 시스템에 익숙했다.

봉사자들이 식판에 미리 밥과 국을 퍼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김도윤 기자]

언뜻 고기반찬이 인기가 많을 것 같았지만, 쪽방 주민들 중에는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고기보다는 국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10년째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는 유영수(76) 씨는 “토마스의 집이 쉬는 날인 목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면 항상 여기서 밥을 먹는다”며 “밥을 굶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욕심 부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당뇨 때문에 이가 하나도 없어서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며 “고기 반찬은 덜어다가 옆 사람에게 주고 밥을 국에다가 말아서 후루룩 마신다”고 말했다.

토마스의 집을 찾은 A(70) 씨는 “올 2월 유방암 수술과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며 “처음엔 여길 지나가면서 여러 번 봤었는데 왠지 부끄러워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 악화로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동생과 함께 토마스의 집을 찾았다”며 “30년 넘게 주방에서 일을 해봐서 안다. 여기는 음식이 부실할 때도 있지만 간식도 챙겨주고 재료나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좀 좋아져서 다시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여기 주방에서 일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2003년부터 총무 역할을 도맡아 하며 무료 급식소를 이끈 박경옥 씨는 “20년 넘게 일을 하다보니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며 기자에게 올라가지 않는 팔을 들어 보였다. 최근에 토마스의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12주간 열심히 배워 미용봉사도 시작했다는 그는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이나 노숙자분들은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국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경우가 많다보니 국을 끓일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소 앞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김도윤 기자]

토마스의 집을 끼고 있는 골목길엔 매일 오전 11시면 무료 급식소를 찾아온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선다. 이날은 카메라를 들고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일본 NHK사는 최근 홈리스월드컵에 선수로 출전한 오현석 씨를 취재하던 중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씨는 노숙인에서 주거 자립을 이루기 위해 현재는 잡지 빅이슈의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빅이슈의 지원을 받아 현재는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공간이 있다’고 말하는 오씨. 그는 “빅이슈 판매일을 시작하기전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노숙생활을 했었다”며 “그때 주변의 소개로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를 해결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밥도 맛있었지만 노숙자라고 무시하지 않고 같은 눈 높이에서 잘 대해주었던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경옥 씨는 “여기서 식사하고 다시 힘을 내서 일을 시작하고, 자식들 키워내는 사람도 종종 나온다”며 “자립해서 찾아오거나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일처럼 기쁘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모습 [김도윤 기자]

오늘 처음 봉사에 참여했다는 이태환(46) 씨는 “처음엔 노숙인분들이 음식 투정을 한다거나 화를 낼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는 그런 분은 거의 없었고 저보다 이곳을 더 잘 알고 오래 찾은 분들이 ‘잘먹고 간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실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지나가면서 토마스의 집을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늘 점심시간 때 이곳 앞은 줄서서 기다리는 노인, 노숙인분들이 많다”고 했다.

올 추석에는 식자재 지원이 줄어 텅빈 냉장고 칸이 늘었다.[김도윤 기자]

월세나 식비가 부족해도 31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토마스의 집’이지만, 운영상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과 점점 줄어드는 기부금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쉰 박경옥 총무는 텅빈 냉장고를 보여준다. 그는 “명절 때는 평소보다 후원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이번 추석에는 식자재 지원이 거의 없었다”며 “옛날에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줘서 대형 냉장고에 식자재가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요즘엔 텅빈 식자재 칸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무료급식소도 상황은 비슷하겠지만 최근 기부금이 줄어들어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토마스의 집은 목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주 4회 적으면 260명에서 많게는 4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1명당 한 끼 식사 준비에 소요되는 비용은 3000원 정도. 2013년부터 노숙인들이 자립 의지를 가져주길 바라며 ‘자존심 유지비’ 명목으로 200원을 점심 값으로 받고 있지만, 쪽방 주민이나 급식소를 찾은 자원봉사자에게는 기부를 받지 않는다.

박 총무는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한 끼를 먹고 가면서도 잘 먹고 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를 보면 힘이 생긴다”며 “여러 단체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토마스의 집이 과거 뒷골목 쪽방 밀집 지역에 있을 때보다는 시설이 나아졌다.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kimdo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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