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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스트셀러 트렌드, 영상보다 빨라...책 터지면 1~2년내 콘텐츠로”
매주 서점 돌며 책 판매동향 파악
‘문화보국’ CJ ENM, 인문학에 진심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초격차’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잘한다 하더라도 예능 판에서는 (스타 PD들을) 이길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바엔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자 싶어서 인문학 콘텐츠로 방향을 틀었죠.”

인문학 콘텐츠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민식 책임피디(CP)는 이렇게 답했다. “2인자 밖엔 못할 것 같아서”라고 덧붙이는 정 CP의 어투는 가벼웠지만, 그 속은 가볍지 않았다.

예능 PD를 꿈꾸며 방송계에 뛰어든 정 PD에게 인문학 콘텐츠는 사실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었다. 20대 무렵 교양 프로그램에 잠시 발을 담글 때에도 인문학 콘텐츠가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정 CP는 “선배들이 (강연 프로그램을 하는) 너는 맨날 날로 먹는다 놀렸지만, 강연 프로그램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라며 “강연자 섭외 및 주제 선정을 마치면 사전 콘텐츠 회의도 해야 하고 대본도 어쨌든 만들어줘야 한다. 사후는 편하다 생각하지만 사전에 해야할 게 많아 tvN에 입사해서는 강연 프로그램이 너무 하기 싫었다”고 토로했다.

맡았던 예능 프로그램마다 ‘어정쩡한 성공’을 거둔 게 그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정 CP는 “tvN에 입사하기 전 SBS에서 ‘농비어천가’라는 일반인들의 귀농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118편이나 제작했다. 당시 농비어천가가 원래 그 시간에 있던 타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4배 가량 더 나왔다. (그 때의 성공을 토대로) 2014년 tvN에서 ‘삼촌로망스’라는 방송인 양준혁, 양상국, 셰프 강레오, 배우 강성진 등 네 명의 방송인이 귀촌해 사는 모습을 관찰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서 “하지만 그 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잇달아 벌어지며 흐지부지 사라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런 식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도통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대 때 ‘자신의 가치를 남이 알아주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 인정받는다’는 의미의 ‘인정욕구’라는 개념을 접한 이래 정 CP는 ‘스스로가 인정하고 남이 인정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정 PD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게 바로 강연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삼촌로망스 방영 1년 전인 2013년 ‘김미경쇼’로 성공을 맛봤기 때문이다.

결국 2015년 ‘토크쇼 프로그램이 하나 필요하다’는 회사의 요청에 정 CP가 꺼내든 패는 강연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어쩌다 어른’ 타이틀을 단 강연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게 됐다. 당시 발굴한 게 설민석 선생님이었다. 다행히 또 대박이 났다. 회사 선배들이 ‘까불지 말고 잘 하는 거 하나라도 있으니 그거 해라’ 해서 강연 프로그램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어쩌다 어른은 당초 자기계발 강연 형식이었지만 이후 인문학 소재를 더하며 지금의 인문 강연 형식을 갖추게 됐다.

김미경쇼에 이어 어쩌다 어른,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까지 큰 인기를 얻으며 정 CP는 인문한 콘텐츠 분야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 PD’로 인정받게 됐다. 인정욕구는 이후에도 정 CP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 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됐다. 정 CP는 “지금도 매주 한 번씩 영풍문고와 교보문고 등 각기 다른 종류의 서점을 찾아 도서 판매 동향을 파악한다”고 했다. 각 서점 브랜드마다 주력하는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 CP는 “제가 판단하건대 베스트셀러 트렌드가 영상 트렌드보다 빠른 편이다. 책이 터지면 빠르면 1~2년 내, 늦어도 2~3년 내에 그게 콘텐츠로 생산된다”면서 서점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 CP의 이 같은 노력은 높은 시청률이라는 관심 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의 수상으로 보상 받았다. 지난 해에는 그가 유튜브에서 선보인 인문학 콘텐츠 ‘사피엔스 스튜디오’가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뉴미디어 콘텐츠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개최한 2022 케이블TV방송대상에서도 PP 작품상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해 9월 EBS, 삼프로TV 등과 함께 구글에 초청 받아 미국 뉴욕에 다녀오기도 했다.

스스로를 “잘할 수 있는 게 인문학 하나인 사람”이라고 언급한 정 CP는 비로소 인문학 콘텐츠를 자신의 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능하면 CJ ENM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CJ ENM이야말로 한국에서 인문학 콘텐츠에 가장 진심인 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CJ ENM을 비롯한 CJ그룹은 ‘문화 보국’을 앞세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신념에 힘입어 20년 넘게 문화 사업에 공력을 쏟아 왔다.

정 CP는 “KBS, EBS 같은 방송사들은 공익적 방송을 만드는 게 당연한 곳이지만 사기업인 CJ ENM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인문학 콘텐츠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라면서 “회사가 인문학에 진심인 이상 끝까지 이곳에서 인문학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일·박혜림 기자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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