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측근 비리로 집권 말기 ‘레임덕’은 불가피하겠지만 강도 높은 사과로 잔여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꿋꿋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점이 눈에 띈다.
이날 대국민 사과는 지난 측근 비리 사과 때보다 한층 강도가 높았다. 두 차례나 깊이 고개를 숙인 데다 ‘억장이 무너지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등의 강도 높은 표현이 등장했다. 이날 담화문도 참모진이 마련한 초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이 손으로 직접 썼다는 게 박정하 대변인의 전언이다.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고개숙여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빨랐다. 당초 청와대 주변에서 예상한 사과 시기는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지는 이번 주 후반이 유력했다. 금주에는 정기적인 회의를 제외하면 외부일정도 잡지 않아 이 같은 관측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문에서도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먼저 국민여러분께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것이 이 상황에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4일 오후 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대국민담화 결정이 알려진 직후 청와대 참모진조차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처럼 강도 높은 대국민 사과에도 잔여임기 업무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만은 분명히 했다. 이는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온 나라 안팎의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현안 과제들이 너무나 엄중하고 막중하다”고 말한 데서 드러난다.
특히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은 후에야 일을 그만둔다)의 각오로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며 고사를 인용한 점이 주목된다. 이 고사는 논어 태백 편에 나오는 말이지만 삼국지 제갈공명이 위나라 정벌에 나서며 주군인 촉한 유선 황제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인용돼 더욱 유명해졌다.
결국 레임덕이 심해질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이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현안에 대해 기존 방침대로 밀어부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