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따뜻함, 사랑의 연탄...저는 ‘연탄’입니다.
저는 ‘연탄’, 한자로는 ‘煉炭’이라 씁니다.

구멍 22개에서 불을 뿜어 내죠.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저를 찾습니다. 아니 과거형으로 “찾았습니다”

불과 1980년대 후반, 30년 전,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때만 해도 저는 국민 여러분들께 인기 ‘짱’이었습니다.

얼굴은 까맣고, 구멍이 숭숭 뚫려 밉상처럼 보였지만, 겨울철만 되면 저를 서로 독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고, 온 가족이 저를 판매하는 연탄가게 앞에서 몇 장씩 들고 가기도 했습니다.

지독히 가난했던 시절 저는 국민 여러분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죠.

▶저는 연탄입니다= 저는 쉽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22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고, 지름 15㎝에 높이 14.2㎝, 무게는 3.6kg이어야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발열량요? 당연히 대단하죠. 4600㎉ 이상이어야 합니다. 경사각 30도, 30cm 높이에서 굴러 떨어져 무언가에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아야 합니다. 단단해야 했죠.

이렇게 해서 저는 빛을 보게 됩니다. 당시 깐깐한 품질 규격을 통해 세상에 나와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해줬죠.

사실 전 다문화(多文化) 가정에서 태어났답니다.

일본 출신이죠. 지난 19세기 말 일본 규슈 지방에서 주먹 크기의 석탄에 구멍을 내 목탄 대시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에 송송 뚫린 구멍 모양이 연꽃 열매를 닮아 ‘연(蓮)꽃 연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지난 1920년 일제 점령기 때 일본 상인들이 판매를 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알려지게 됐죠. 그러나 당시에는 비쌌답니다. 오히려 당시에는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펴, 방을 데웠답니다.

그러다 지난 1960년대 전국 곳곳에 저, 연탄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63년에는 제 친구들을 만들어 내는 연탄공장이 수 백개에 달했습니다. 제가 국민여러분께 인기를 끌다 보니 야산에서 나무를 베는 일들이 없어졌답니다.

지금과 같이 야산에 나무들이 무성한 이유도 다 저 때문이죠.

저를 처음으로 만든 곳은 지난 1974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대성산업’이었습니다.

▶50여년간 ‘연탄’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웠답니다= 저는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는 중산층, 서민들의 겨울 수호천사였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1960-1970년대, 저를 태어나게 하는 연탄공장이 전국에 400개에 이르렀습니다.

1980년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총 가구 1117만 5000여 가구 중 저를 사랑하고, 겨울철 꼭 끼고 있었던 가구는 무려 7957가구라 하더라구요. 점유율요? 무려 71.2%에 달했습니다. (대한석탄공사 통계 자료)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깨끗하고, 깔끔하고, 편리한 석유, 가스라는 친구들이 나왔습니다.

가격은 비샀지만 발열량도 뛰어났고, 관리가 수월한 석유, 가스는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급기야 1999년 국내 100가구 중 겨우 2가구만 저를 사용했습니다. 지난 2003년에는 눈물이 납니다. 100가구 중 1가구만이...

그렇게 저는 여러분들 곁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2004년께인가요? 다시 저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좀 더 싼 저, 연탄이 인기를 다시 받은 거죠.

한 때 400여개에 달했던 연탄공장은 거의 자취를 감추기도 했습니다. 서울에는 이문동, 시흥동에 있는 공장 두 곳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지방에는 그나마 소규모 공장이 50여곳이 있기는 합니다.

당연히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가 넘쳐나 이상 현상까지 일기도 했습니다.

▶제가 얼마인지 알기는 아세요?=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한 장에 500원입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보다 싸죠. 그렇게 몸에 안좋다는 담배도 저보다 5배나 비싸답니다.

2000년대 초중반께 저는 한 장에 200원대였습니다. 소비자가격도 약 300원~400원 정도 했습니다. 가스, 전기, 석유 보일러 사용료에 비하면 정말 쌌죠.

하루 1장~3장이면 온 가족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가정용으로는 많이 쓰지 않는 거 같습니다.

겨울철 난방을 해야 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많이 쓴답니다. 공장이나 작은 가게에서도 저는 인기가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울합니다= 그동안 서민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제가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제가 서민 여러분을 따뜻하게 해주면서 내뿜는 ‘연탄가스’ 때문에 과거에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많은 분들을 아프게 한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일부러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살기 힘드시다고, ‘자살’을 하면서 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연예인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저를 밀폐된 공간에서 태우고, 이 때 나오는 연탄가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08년 유명 방송인이 저을 이용해 자살을 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비슷한 시도가 늘어났습니다. 지난 2008-2009년께에만 모두 40여명에 달하는 서민들이 저를 택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저를 놓고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연탄은 저소득층 가정과 서민들이 경제적 부담을 절감하고자 선택한 유일한 난방수단이죠. 서민들의 연료인 연탄으로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은 어떤 이유로든 옳지 않다”며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사랑입니다= 일부 저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저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불우이웃에게 온정을 전달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최근에는 남녀 간 애정을 돈독히 하는 큐피트의 역할을 하고 있죠.

겨울이 되면 불우이웃에게 저를 기부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제가 주인공인 사랑의연탄나눔운동 홈페이지(http://www.lovecoal.org)에는 벌써 12월 한달 봉사활동 일정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저를 날라 주시는 분들은 고등학생부터 시작해 일반 기업, 사회단체, 동창회, 친목회 등 다양합니다. 수백, 수천만원이 필요한 거창한 ‘나눔’이 아닙니다. 마음과 체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가능한 대표적인 나눔 활동인 셈이죠.

얼마전에는 청춘남녀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연탄 미팅’도 등장했더라구요.

20대 남녀 수십명이 서울시 상계동에서 연탄미팅 자원봉사 이벤트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연탄차가 부릉부릉/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안도현의 ‘연탄 한 장’)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