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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해주세요!] PPL 무법지대, 뷰티 정보 프로그램…‘아, 이 배신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드라마 못지 않게 간접광고(PPL)가 활개를 치는 동네가 있다. 과도한 PPL을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은 ‘시청권 방해’인데, 이들 프로그램은 심지어 그 영역조차 뛰어넘는다. 홈쇼핑이 아닌데도, 매출을 보장한다. 상표를 가리면 도리어 궁금하다. 가린다 해도 대부분 쉽게 알 수 있고, 어지간하면 가리지도 않아 지적을 당하기 일쑤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다.

지난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두 편의 뷰티 정보 프로그램에 징계조치를 내렸다.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겟 잇 뷰티 2015’와 패션앤의 ‘팔로우미 시즌5’다.

일단 온스타일 ‘겟 잇 뷰티 2015’는 지난 5월 20일 방송분이 문제가 됐다. 이날 방송에선 ‘뷰티가 동안을 만든다’라는 주제로 피부관리 및 화장법 등을 소개하는 내용을 방송, “전문가로 등장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간접 광고주의 상품을 일부 가림처리해 노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의 규정에는 광고효과에 대한 조항이 있는데, 프로그램은 이를 어겨 주의를 받았다. 제46조(광고효과) 제1항 제1호이다.

광고에 가까운 정보 전달이다. ‘겟 잇 뷰티’에선 집중 탄력관리에는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고농축 앰플 같은 제품들이 있다. 이런 제품으로 일주일 동안 관리를 해주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평상시 하는 것보다 5분 정도 더 투자하면 앞으로 10년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막은 한 번 더 강조했다. ‘평상시 5분 투자하면 앞으로 10년이 젊어진다’는 것. MC 이하늬는 여기에 “기대가 되는 앰플인데요. 어머 좋아”라고 말한다. 누가 의심하겠는가. 이 제품에 단체로 열광해주니 누구라도 구매욕구가 생긴다. 

패션앤 ‘팔로우 미 시즌5’의 5월 30일 방송분은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겟 잇 뷰티’보다 더 높은 수위의 징계다.

당시 방송에선 한국을 방문한 미국 영화배우 클로이 모레츠에게 서울의 명소를 소개하는 내용을 방송하며, 클로이 모레츠가 착용한 재킷의 로고를 노출했고, 협찬주의 상표명 등을 일부 가린 채, 매장의 외관, 내부 전경, 제품을 노출하며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두 눈을 사로잡은 이 곳은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스니커즈를 만날 수 있는 곳’, ‘클로이의 취향 고려 스니커즈 쇼핑 시작’이라고 자막으로 해당 브랜드를 소개했다. 심지어 제품의 특징을 줄줄이 열거하고, 착용 소감까지 덧붙였다. 말 한 마디, 자막 한 줄이 곧 광고가 되는 셈이다.

간접광고는 TV프로그램 구성의 필수조건이 됐다. 나날이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각 채널에선 대형 협찬주를 모셔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프로그램의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시청자도 어느 정도 참고 봐줄 수 있는 것도 바로 간접광고다. 연출자의 역량이 더해져 보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PPL이 완성된다면 금상첨화다. 간접광고에 대해 시청자도 포용력이 생겼지만, 뷰티 정보나 라이프 스타일 정보 프로그램은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태생 자체가 협찬으로 비롯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라이프 스타일 정보 프로그램을 연출한 PD는 “뷰티 정보, 혹은 라이프 스타일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애초에 협찬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경우도 많다. 일단 협찬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굴러갈 수 있고, 협찬이 들어오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예정보다 빠르게 막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협찬의 크기라는 것이 어마어마하다. 뷰티 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비는 채널마다 다르지만, 적당히 이름 있는 스타들의 조합으로 MC를 꾸린 경우 회당 3000만원이 평균치다. 회당 제작비는 대형 협찬주 하나가 들어오면 해결된다. 한 회분 제작비가 협찬으로 충당되니, 해당 브랜드에 대해 프로그램에선 보다 심도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홈쇼핑 수준의 자화자찬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협찬에서 시작된 정보를 준다는 프로그램이니 방송 자체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뻔한 장삿속이 들여다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유통망이 더해지면 방송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준다. 

CJ 계열 콘텐츠 기업 CJ E&M이 보유한 채널 온스타일의 ‘겟 잇 뷰티’는 지난 수년간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린 뷰티 정보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의 흐름까지 바꿔놨다.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였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싸고 저렴한데 제품력은 우수한 일명 ‘저렴이’ 화장품을 발견했다. 화장품 업계의 상생 차원에서 보자면 꽤나 긍정적인 효과다. 채널 측에선 ‘블라인드 테스트’의 경우 PPL을 쓰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를 비롯해 프로그램에서 노출됐던 다양한 제품들은 CJ가 운영하는 헬스 앤 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 가면 ‘겟잇뷰티 1위 상품’이라는 눈에 확 띄는 스티커가 붙어 판매 중이다. 사기업이 공공재를 사용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소비자는 종종 알면서도 속는다. 유명 연예인이 나와 “제 피부관리 비법이요? 전 OO 마유크림 써요. 자고 일어나면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촉촉해요”라고 말하면 그 상품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겟 잇 뷰티’의 MC 이하늬는 자신이 모델로 있는 마유크림을 이 프로그램에서 즐겨쓰는 화장품이라고 소개하며 극찬해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이 말 한 마디에 화장품 업계에선, ‘마유’ 제품이 인기상품이 된다. 그게 바로 광고효과다. 방송에선 실컷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마치 그것이 방송을 지켜보는 여성 시청자의 얼굴을 바꿔줄 것처럼 현혹한다. 이런 제품이 프로그램에선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정보’를 가장한 전파의 상업화다.

당초 올리브 채널에서 시작해 2010년 온스타일에서 다시 출발한 ‘겟잇뷰티’의 성공으로 케이블 여성채널에서는 스타들을 MC로 세운 유사 뷰티 프로그램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미 온라인, 모바일을 통해 정보는 도처에 널려있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이 같은 프로그램은 여전히 등장한다. 뷰티에만 국한하지 않고,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한다. 어차피 두 프로그램 모두 협찬으로 꾸려지기는 매한가지다. 인기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 이후의 판매효과에 시즌 중에는 협찬이 끊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다만 채널과 프로그램의 인지도에 따라 이 업계도 빈익빈 부익부다.

그럼에도 천편일률적인 뷰티 정보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제작이 쉽고, 빠른 시일에 특정 시청층, 즉 2030 여성 시청자들의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보여주는 정보가 ‘그 나물에 그 밥’일지라도, 프로그램은 너나 없이 신상정보를 강조한다. 특히나 홈쇼핑 수준의 구체적인 설명을 더해준 신제품이며, 요즘 가장 뜬다는 제품이고 지역이다. 화장품이든 여행지든, 레스토랑이든 피차일반이다. 시청자는 이제 밖으로 나가 지갑만 열면 된다. 짜고 치는 정보만 한 가득 얻은 채로 말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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