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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체육회장 후보등록 촌극’ 톺아보기
가요 '천태만상'에 정치인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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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기호순으로 이종걸, 유준상, 이기흥, 강신욱.


# 요지경 후보등록: 돌이켜보면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 개정(2014년)은 옳았다. 세밑 제41대 대한체육회장 후보등록(28, 29일)을 놓고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벌인 ‘코미디 쇼’를 보면 그러하다. 정치판의 수준 높은 무공을 선보여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어 하는 체육계에 큰 웃음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올해 운명을 달리한 한 기업인의 명언 ‘한국 정치는 4류’가 빛을 발할 지경이다.

# ‘용두사미’ 장영달: 4선 국회의원 출신의 장영달(이하 직함 생략)은 현 회장 이기흥(기호3)의 대항마로 기대를 모았다. 8월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고, 이기흥 체제에 신물이 난 다수의 체육인들이 그에게 힘을 보탰다. 그런데 그에게는 선거법 위반으로 출마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이에 장영달은 각종 법조항과 대한체육회 정관에 대한 독특한 해석, 성탄절 특별사면 가능성 등의 눈부신 방탄기공(防彈氣功)을 선보이며 출마를 강행했다. 지난 22일 긴급기자회견을 열며 출마의지를 다졌고, 24일 문대성 출마선언자로부터 단일화까지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틀 만인 26일 불출마를 결정했다. 지지자들의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용두사미의 최고기술이다. 국회에 16년이나 있었으니 ‘꼬리를 내리는 것’도 남달랐다. 야구의 핀치히터 개념을 도입해 ‘대타’를 내세웠다. 안민석 '내리 5선 국회의원'과 함께 이종걸 전 의원(5선)을 설득해 28일 오전 그의 출마 기자회견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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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종걸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 ‘조변석개’ 이종걸: 오락가락의 끝판왕이다. 이종걸(기호 1번)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는 고사성어를 몸으로 보여줬다. 출마선언을 한 그날 저녁 강신욱(기호 4)을 만나 2시간 가까이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그의 진정성에 반해 자신이 후보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강신욱이 “지지자들도 있으니, 돌아가서 심사숙고한 후 내일 오전 결정하라”고 주문했고, 이종걸은 29일 오전 ‘강신욱 지지’와 함께 불출마를 발표했다. 이쯤이면 신념이다. 이로써 선거구도는 ‘이기흥 대 강신욱’ 양강구도라는 기사가 터져나왔다. 이 사이 유력한 출마예상자였던 이에리사와 윤강로는 ‘반 이기흥’의 대의를 위해 출마를 접었다. 그런데 이종걸은 마감 4분을 남기고 전격 후보등록을 단행했다. 세상이 놀랐다. 그 시간 이종걸의 뜻에 따라 강신욱을` 지지지하기로 한 체육인들은 강신욱을 만나고 있었다. 사전에 강신욱은 물론, 자신의 체육계 지지자들에게 전화 한 통 없었으니 이들은 경악했다. 이종걸은 강신욱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전해 들어온 해명은 “정치쪽 지지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등록했다”였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상대방이 미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잽싸게 몸을 날려 위치를 바꾸는’ 비기다.

# ‘유아독존’ 유준상: 4선 의원 출신인데, 장영달-이종걸과는 문파(정치)가 다르다. 유준상(기호2)은 28일 자신을 포함한 강신욱-이에리사-윤강로, 4자 단일화 저녁모임을 주도했다. 가장 많이 발언하며 최연장자인 자신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자기는 상징적인 회장 노릇만 하고, 전문체육(이에리사)-국제(윤강로)-학계(강신욱)로 나눠 대한체육회에서 과두정을 실시하자는 '신박한' 제안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애초부터 철저한 문파정신에 따라 장영달을 잇는 이종걸과의 단일화는 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이후 이종걸의 오락가락 신공이 펼쳐지자 “장영달-이종걸-강신욱으로 이어지는 바람잡이 선거꾼들이 (중략) 릴레이로 후보를 내세우는 야합을 자행함으로써 600만 체육인과 선거인단 2180명을 우롱하고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강신욱은 “나는 피해자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내가 유준상으로부터 보고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내 잘못이라면 체육인들의 신성한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들을 상대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적전분열(敵前分裂)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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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 회장의 공보물 표지. 이름 위로 IOC위원을 넣은 것이 눈길을 끈다.

# ‘어부지리’ 이기흥(기호 3): 그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눈부신 정치무공에 최대 수혜자가 됐다. 사실 그도 지난 4년 간 끊이지 않았던 체육계 인권유린 사고, 내사람 챙기기, 각종 구설 등 약점이 많다. 오죽하면 그를 ‘적폐’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단일화가 선거의 주요 구도가 됐을까? 그런데 용두사미, 조변석개, 유아독존 및 적전분열 등으로 오히려 대세론에 힘이 붙었다. 이기흥은 “한 마디로 정치인 출신들 참 경우가 없다. 체육인들을 무시한 처사다. 보도를 보니 뒤에 안민석 현 국회의원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체육계에 관심이 많으면 국회의원 내려놓고 직접 출마하라”고 지적했다. 뭐, 따지고 보면 이기흥도 유명 정치인의 보좌관 출신이지만. 어쨌든 체육인들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정치인들의 화려한 무공에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시작부터 흠집이 난 것은 확실하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가요 ‘천태만상’이 온갖 직업을 언급하고 있는데, 혹시나 싶어 찾아봤더니 '의원님' 등 정치인은 없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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