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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승진의 복싱이야기] '루시드 인터벌'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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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 복싱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뇌출혈 부상을 당해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고 최요삼 챔피언.


개인적으로 복서들의 부상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이를 제 블로그에 정리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부상 유형이 발생하여 글을 올립니다. 아마 국내 복싱 경기에서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링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최요삼의 사례가 있듯이 복서들에게 가장 위험한 부상이 바로 뇌출혈입니다. 일반적으로 뇌출혈의 증상은 어지럼움과 메스꺼움을 느끼고, 혀가 꼬이고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심한 두통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급작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쉽게 증상을 보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싱 경기에는 링 닥터의 입회가 필수입니다. 그리고 트레이너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트레이너들은 뇌출혈 부상을 철저히 학습하고, 선수가 유사증상을 느낄 경우 지체 없이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트레이이너의 체크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스파링이 끝나고 내려오면 반드시 문진을 하십시오. “주민등록번호를 말해봐라”, “집 주소를 말해봐라”는 식으로 묻고, 선수가 정확하게 발음하는지, 그리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지를 확인하십시오.

2. 항상 119 소방서나 대학병원의 위치를 파악하고 계십시오. 후송은 반드시 신경외과 집도의가 대기하고 있는 대학병원급으로 해야 합니다.

3. 이상증상이 있을 경우, 바로 보호자에게 연락하십시오.

4. 결코 안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대비해도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루시드 인터벌(lucid interval)’입니다. 루시드 인터벌은 ‘의식소실 사이에 의식상태가 좋은 시간’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처음 충격을 받았을 때 잠깐 정신을 잃은 후 이내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별 증상 없이 지내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 이때 의식상태가 좋았던 기간’을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충격 시 소량의 출혈을 발생하였으나, 출혈양이 적어 이내 충격에서 깨어나고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출혈량이 늘어나면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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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인터벌을 소개하고 있는 해외 인터넷게시물. 선진국에서는 머리에 충격을 받을 경우, 빨리 뇌스캔을 받도록 권하고 있다.


살면서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적 있습니까? 교통사고가 나서 충격을 받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집에 갔는데 다음날 뇌출혈로 쓰러졌다. 루시드 인터벌이 나타난 것입니다.

문제는 복싱과 같은 투기종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는 한 달여 전 한 복싱체육관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토요일 오후 스파링을 한 한 복서가 그날 저녁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했습니다. 그런데 밤 11시에 쓰러졌습니다. 병원으로 옮겼고,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 수술이 진행됐죠. 이 선수는 깨어나는 데 5일이나 걸렸습니다. 후유증도 좀 있다고 합니다.

이 스파링의 동영상을 구해 면밀히 분석을 했는데, 어느 선수가 부상을 당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선수가 괜찮다고 해도, 스파링 현장의 관계자들이 보다 세심히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었습니다.

또 선수들은 스파링이나 경기를 마친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술자리 등 유흥을 즐기며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합니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루시드 인터벌을 겪은 선수도 제때 조치를 했다면, 회복이 훨씬 빨랐을 겁니다.

복싱 등 많은 격투 경기가 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트레이너의 할 일은 "정말 잘했다!'고 칭찬하거나 "왜 가르쳐 준 대로 안 했냐! 앞으로 똑바로 해라"라고 며 혼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선수 옆에 계속 있으며 혹시 이상 없나 관찰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병원에 가서 진찰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싱 트레이너의 역할입니다. 또 일상생활에서도 뇌질환과 관련해 이상증상이 있다면, 마치 경기를 끝낸 복서를 대하듯 면밀하게 체크해서 진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도승진(한국권투인협회 링닥터)

* 이 글을 위해 자문하여 주신 정도영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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