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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 백과사전 224] 디섐보 이전 PGA투어 근육맨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가 지난 겨울 근육을 키우고 헐크처럼 몸짱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최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로켓모기지클래식에서 역대 최장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인 350.6야드로 우승했다. PGA투어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 274미터(300야드)보다 엄청나게 길다.

디섐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일 3회씩 꾸준히 운동했다고 한다. 3개월 만에 PGA투어가 재개된 첫 대회에서 확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몸무게가 석달 새 9kg 늘었는데 지난해 92kg였고 지금 106-108kg이므로 지난 겨울 늘린 체중을 보태면 13~15kg를 늘렸다. 그가 챨스슈왑챌린지에서 친 평균 350.6야드 드라이버 샷은 볼 스피드로 환산하면 시속 305~310km에 이른다.

재개된 대회 이후 RBC헤리티지,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 디섐보는 공동 8위와 공동 6위를 기록했다. 그는 복귀 후 3개 대회 12라운드에서 11번의 60대 타수와 평균 66.5타를 기록하였고, 총 46언더파를 기록했다. 상승세인 디섐보 자신도 이런 변화를 알고 있다. “몸무게를 늘리며 근육도 늘렸고, 게임에 임하는 나의 정신적인 태도도 바꿨다. 전혀 다른 골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승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

근육을 키우고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한 선수는 하지만 디섐보가 처음이 아니었다. 1950년대의 프랭크 스트라나한, 70년대의 게리 플레이어, 그리고 96년에 등장한 타이거 우즈도 근육을 키우느라 노력했다. 디섐보는 우즈를 잇는데, 수준급 실내자전거(플로톤)광인 로리 매킬로이,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 등도 웨이트 트레이닝에 투자하는 이런 트랜드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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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스트라나한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선수였다. [사진=USGA]


프랭크 스트라나한: 역도, 마라톤까지 올 스포츠맨
‘올드 스트라니’ ‘톨레도 스트롱맨’으로 불린 프랭크 스트라나한이 골프 투어의 첫 번째 근육맨이었다.

오하이오 톨레도에서 1922년 태어난 스트라나한은 2013년 플로리다에서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마추어로 1945년부터 4년간 PGA투어 4승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메이저 대회가 브리티시아마추어가 포함되었는데 2승을 거뒀다. 마스터스나 디오픈에서 2위를 3번 했고, 당시 메이저였던 US아마추어선수권에서도 2위를 한 번 했다.

아마추어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1936~54년까지 70개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아버지 대부터 부자였기 때문에 프로로 버는 상금이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의 골프 경력 다수는 아마추어 선수로 거뒀다. 프로로 활동하기 전에는 다른 운동도 뛰어났다. 역도를 했는데 1945~54년까지 그의 체급에서는 세계 1위였다.

프로 골퍼 생활 10년(1955-64)간 그는 188개의 PGA투어 대회에 참가했고, 1958년 로스엔젤레스오픈을 포함해 2승을 거뒀다. 골프 선수를 은퇴하고 나서는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되어 마라톤을 102번 완주했다.

스트라나한은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고,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달리기와 근력 운동을 했다. 그는 이러한 생활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42세로 은퇴한 1962년까지 유지했다. 최근 브룩스 켑카가 개인 운동 장비를 가지고 투어를 다닌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스트라나한은 이미 1940~50년대에 개인 근력 운동 장비를 가지고 투어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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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플레이어는 70대에도 탄탄한 몸매를 지켜 ESPN 보디 이슈 표지로도 나왔다.


개리 플레이어: 77세에 누드 촬영 한 노익장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1935년에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흑기사’ 개리 플레이어는 지구를 500번 이상 돌아다니면서 각종 투어에서 우승을 가장 많이 거둔 골퍼다. 남아공에서 열리는 선샤인투어에서만 73승을 거뒀고 각 대륙에서 평생 250승에 메이저 9승(마스터스 1961, 74, 78년, US오픈 65년, 디오픈 59, 68, 74년, PGA챔피언십 62, 72년)을 거뒀다.

1953년 16세에 프로 데뷔하고 3년 뒤에 영국에 진출했을 때는 그의 남다른 패기와 이상해보이는 스윙과 강한 그립 때문에 주변 선수들로부터 ‘고향에 돌아가라’는 조롱도 들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56년 서닝데일의 던롭마스터스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진가를 인정받았다.

1956년 고향에서 열린 남아프리카오픈에서 첫 승을 거둔 이래로 그 대회만 12번 제패했다. 호주오픈 만도 7승에 74년 브라질오픈에서는 한 라운드 59타 최저타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쟁취한 78년 마스터스에서 거둔 42세 우승이었다.

플레이어는 168cm의 골프 선수치고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호쾌한 스윙을 뿜어냈고, 피트니스를 골프에 적극 적용했다. 그는 늘상 “내 비거리에서 25야드는 음식과 운동에서 나온다”고 했다. 68kg의 가벼운 체중을 평생 일관되게 유지했고, 몸 관리를 철저히 했다. 지난 2103년10월에는 ESPN의 잡지에서 다룬 ‘보디 이슈(Body Issue)’ 특집호에서 77세 나이에 ‘골프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꾸준히 운동하고 음식을 가려먹는 게 건강 비법이라고 말했다. ‘뱃살이 건강의 적’이라는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매일 스트레칭과 윗몸일으키기 1200회를 소화하고 45㎏짜리 바벨을 든다. 평소 미팅이 있어도 엘리베이터를 잘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며 가급적 많이 걷는다. 은퇴 이후에도 쉼 없이 여행하고 체력 단련을 빼먹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선수 초창기에 근육 운동을 할 때 사람들로부터 ‘괴짜’라고 불렸다. 하지만 대회 중에도 운동 루틴을 지켰고 그게 내 성공의 비결이다”라고 말했다. 데이비스 러브 3세는 어린 시절 황당한 이유로 농구를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내가 농구팀에서 경기를 하는 것을 반대하셨고, 결국 팀에서 나왔는데 농구팀에서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전의 골프 선수들은 이처럼 근육을 키우는 게 금기시되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는 꾸준히 몸을 만들고 근육을 키워서 골프를 보다 역동적인 스포츠로 이끈 대표모델들이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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