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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 골프칼럼] (12) 타이거 우즈, 골프볼의 운명

  • 기사입력 2020-03-3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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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과 나이키볼의 인연은 골프 장비 역사에 짤지만 굵은 한 획을 그었다.

1990년대 후반, 타이거 우즈는 당시 절친이었던 마크 오메라와 함께 마스터스 대회 연습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그린 주변의 쇼트게임을 하면서 타이거는 오메라가 상상하지 못했던 스핀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놀라워했다. 타이거가 어떤 기술이냐고 물어 왔을 때 오메라는 ‘타이거가 모르는 기술이 다 있냐’고 장난치면서 ‘몇 홀 더 보면서 연구해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메라의 쇼트게임을 유심히 관찰하던 타이거는 몇 홀이 되지 않아서 해답을 찾아냈다. 자기와는 다른 볼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오메라의 볼은 드라이브 샷 때 스핀이 적고, 웨지 샷 때에는 훨씬 더 많은 스핀량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격했다. 타이거는 자기도 새 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목 받지 못했던 마크 오메라

1995년 프로로 전향하면서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타이거는 그 당시 대부분 프로선수들의 볼이었던 타이틀리스트 프로페셔널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이키에는 아직 프로 선수가 사용할 만한 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타이틀리스트 프로페셔널 모델의 구조는 액체를 채운 작은 코어에 가는 고무줄을 수백 회 감고 마지막에 엘라스터머 커버를 씌우는 와운드볼 스타일이었는데, 와운드 볼의 구조는 거의 100년 동안이나 골프볼의 최고 성능으로 인정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오메라 볼의 구조는 현재 플레이 되고 있는 볼들처럼 솔리드 고무 코어에 소프트 한 재질의 커버를 몇 겹 씌우면서 기능을 개선한 볼이었다. 그 볼은 미국 스팔딩 사의 제품이었는데 스팔딩은 이미 1972년부터 톱 플라이트라는 브랜드로 혁신적인 솔리드 코어 볼을 생산하여 아마추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회사였다. 스팔딩에서는 투어 선수용 솔리드 코어 볼을 개발하여 마크 오메라에게 주었는데, 그 볼을 받은 당시 41세의 오메라는 1998년 마스터스와 디 오픈을 우승하며 새 볼의 우수성을 입증했지만, 타이거 우즈가 대세인 골프계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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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운드 볼의 내부(왼쪽)는 솔리드 볼(오른쪽)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이다.


나의 골프볼을 보내달라


나이키는 타이거 우즈가 원하는 볼을 개발하기 위해서 일본 회사와 협력하고 있었다. 솔리드 코어 구조이면서 당시 사용 중이던 타이틀리스트 프로페셔널보다 더 멀리 나가고,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아 바람 속을 뚫고 날아가며, 그린 근처에서는 더 많은 스핀과 소프트한 느낌을 주는 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본회사는 10가지도 넘는 프로토 타입의 볼을 개발하여 타이거에게 테스트를 요청했다. 타이거는 볼 스피드와 스핀량은 물론이고 딤플의 모양과 퍼팅때 들리는 소리까지 테스트하며 원하는 모델을 골라냈다.

2000년 5월 일요일 저녁에 독일로 유러피언 투어 원정을 간 타이거 우즈가 미국의 나이키 마케팅 담당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대회에서 새 볼을 테스트하고 싶으니 화요일 오전까지 함부르그로 볼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초 10월까지 테스트를 하여 볼을 결정하겠다던 타이거의 마음이 바뀐 것이었다. 나이키의 담당자는 즉시 일본의 개발 담당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들은 직접 볼을 가지고 독일로 가서 화요일 오전에 대회코스의 레인지에서 타이거와 만났다. 레인지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옆바람이 불고 있었다. 드라이브 샷을 테스트하기 위해 자기가 치던 프로페셔널 볼을 쳤는데 가운데로 뻗던 볼은 바람에 날리면서 오른쪽 러프에 떨어졌다. 나이키의 새 모델을 같은 방향으로 쳤는데 그 볼은 바람을 뚫고 계속 가운데로 날아가서 페어웨이 가운데에 떨어졌다. 세 명은 서로 쳐다보며 만족한 웃음을 교환했고 이제 타이거의 볼은 결정이 되어 대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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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의 명장면을 만들어 준 역사적인 볼.


타이거 슬램의 시작


2000년 6월 페블비치의 제100회 US 오픈에서 새로운 볼을 플레이한 타이거 우즈는 2위와 15타 차이로 우승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타이거와 함께 플레이 하며 15타 차 준우승의 굴욕을 참아야 했던 어니 엘스는 타이거가 자기와는 다른 수준의 선수라며 할말을 잃었다. 타이거가 완전히 다른 성능의 볼을 쳤다는 사실은 언급하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다음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과 PGA 챔피언십을 제패한 타이거 우즈는 2001년 마스터스까지 4개의 메이저 대회를 연속 우승하여 타이거 슬램을 달성했다.

타이거의 새 볼은 골프계의 최고 화두가 되었고 프로선수이든 아마추어든 모두가 타이거와 같은 모델의 솔리드 코어 볼을 원했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나이키는 일본에 타이거 볼을 서둘러 생산해 달라는 긴급 요청을 반복해서 보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대량 생산의 준비가 안 되어 선적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타이틀리스트의 빠른 반격

2000년 10월 둘째 주, 라스베가스의 PGA 투어 대회에 타이틀리스트가 5년 동안의 개발 끝에 새로운 솔리드 코어 투어 볼을 소개했다. 솔리드 코어 볼의 모델 이름은 Pro V1 이었는데 대회장에 400 상자의 볼을 가져와서 선수들이 마음대로 쳐 보도록 준비했다. 새 볼을 쳐 본 선수들은 감탄했고 현장에서 47명의 선수가 새 볼로 교체하여 시합에 나갔다. 우승자도 새 볼을 플레이 했던 빌리 안드레이드였다. 그 대회는 골프 장비 역사상 가장 급진적한 변화를 보여준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타이틀리스트는 당초 3월이었던 계획을 당겨서 12월부터 새 볼을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많은 아마추어들이 벌써 타이거 볼을 잊어버리고 PGA 프로들을 따라가게 되었다. 와운드 볼 구조로 골프볼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프로페셔널 모델의 생명은 끝이 났지만, 타이틀리스트는 솔리드 코어 볼 Pro V1으로 나이키의 도전을 막아내고 1950년 대부터 이어온 킹의 자리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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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운드 볼 시대의 막을 내린 타이거 우즈.


역사가 된 타이거의 나이키 볼

나이키는 골프볼의 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나이키의 마케팅 팀에서는 타이거 볼이 4주만 일찍 도착했어도 시장 점유율 1위가 될 수 있었다는 한탄이 나왔다. 타이거와 데이비드 듀발의 효과로 한 때 골프볼 시장점유율 10%를 넘기기도 했던 나이키는 2016년에 골프장비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나이키의 타이거 골프볼 투어 애큐러시 모델은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고, 골퍼들은 나이키 골프볼을 잊게 되었다. 그러나 타이거가 남긴 명품샷과 명장면들을 만들어 주었던 나이키의 골프볼은 타이거와 함께 골프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박노승: 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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