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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구로 세계를 만난다_in 체코②] (29) 축제 같은 체코 배구리그(Extrali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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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승리한 브르노(Brno)팀의 선수들과 함께. 노란색 유니폼이 눈에 띄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체코 배구리그 현장취재를 할 무렵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히 필자는 최근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지난 9월 한국을 떠났고, 이후 코로나19가 심각한 국가들은 여행하지 않았다. 당연히 몸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스스로 잘 관리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동양인을 향한 시선이 좋진 않았다. 가끔 유럽 현지인들이 “코로나? 코로나?, 치나? 치나?(중국인을 뜻하는 비속어)” 등을 말하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 불편했다. 언론에서 접하는 상황을 직접 겪게 되니 황당했다. 이러니까 폭행 등 큰 문제가 야기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속이 상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냥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이대로 취재를 포기하기엔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너무 아깝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 최대한 타국의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또 조금이라도 증상이 나타난다면 곧바로 병원을 가겠다고도.

체코 배구리그 취재를 위해 직관할 경기를 찾았다. 여러 지역이 있었는데 맞붙는 팀들 수준도 괜찮고, 소도시 중 가고 싶은 곳을 추리다 보니 체스케부데요비체(Ceske Budejovice)라는 곳을 택했다.

이곳은 프라하 이후 체코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인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와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필자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체스키 크룸로프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점으로 ‘탑3’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 고요한 분위기,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람 냄새 찐하게 나는 사람들 등. 필자가 평소 상상하던 가장 이상적인 곳과 같았다. 마을 자체가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날 좋은 날 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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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 명소에서 찍은 사진(좌측)과 체육관 외부 모습.


지역 축제 같은 경기장

경기 당일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체스케부데요비체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비용은 편도 2달러(미국)였고 좌석도 편안했다. 저녁에 경기가 있어 도착하니 날이 다 저물어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휑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객들이 잘 안 가는 이유가 다 있는 듯.

체육관에 도착한 후 일반 입구는 팬들이 줄을 서 있었다. 취재진이 출입할 것 같은 VIP용 입구를 찾아 취재의사를 전했다. 기자증을 목에 걸고 취재를 하러 왔다고 하니 별다른 검문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까지 코로나, 그리고 동양인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유니폼과 소수의 기념품들을 파는 부스였다. 스토어라고 하기엔 작은 규모였다.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니 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로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특히 1층 좌석엔 아기들이 놀 수 있는 ‘튜브 놀이터(?)’ 같은 곳이 있었고, 아기들과 놀아주는 홈팀 마스코트 인형도 보였다. 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경기를 기다렸다.

전체적으로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축제’와 같았다. 체육관 바닥이 몬도프렉스 없이 나무 그대로인 것만 빼곤 시설도 괜찮았고, 팬들도 많고 장내 아나운서가 분위기를 끌어올려 주는 것도 재밌었다.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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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치르고 있는 양 팀의 모습. 바닥이 나무 그대로인 것만 빼곤 시설이 괜찮은 편이었다.


체코 배구리그

잠시 경기장 분위기를 감상한 후 인터뷰를 할 사람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홈팀(체스케부데요비체[Ceske Budejovice])과 관련된 사람은 없었고, 어웨이팀(브르노[Brno])의 옷을 입고 있는 경기 기록 및 분석 담당자만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페르트 세젬스키(Petr Sezemsky)였다.

필자는 조심스레 다가가 일에 방해가 안 될 타이밍을 잡아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요, 체코 배구리그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괜찮다면 제게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무슨 일로 먼 이곳까지 오셨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처리하고 말씀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그는 필자를 불렀고,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체코 배구리그는 남자부 12팀, 여자부 10팀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예선리그는 남자팀의 경우 11개의 팀과 각 2번씩(홈과 어웨이 각 1회) 맞붙어 총 22경기를 진행해요. 8강부터는 5판 3선승제로 결승까지 동일하고요. 여자부도 숫자만 다를 뿐 룰은 같습니다.” 예상보다 팀도 경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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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에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방문했다. 응원문화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세젬스키 씨는 이어 “체코에서 배구는 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지역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팀들이다 보니까 각 지역 주민들에겐 인기가 꽤 높은 편이고요. 저희팀 지역은 아니지만 오늘도 많은 팬 분들이 온 것 같아요(웃음)”라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늘 ‘한국은 지역보단 기업의 이미지를 더 추구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경기는 당시 리그 2위팀(체스케부데요비체)과 4위팀(브르노)의 대결이었는데, 체스케부데요비체에 현역 국가대표 선수 3명이 뛰기도 했고, 홈 어드벤티지도 있기 때문에 우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브르노의 경기력이 뛰어났다.

작은 신장(175cm)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토스을 보여준 둑 루안 트루옹(Duc Luan Truong) 선수를 중심으로 브르노 선수들은 똘똘 뭉쳤다. 결과는 3-2로 브르노의 승리. 중요한 순간 책임져줄 ‘완빵’이 없던 브르노가 여러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은 ‘탄탄한 조직력’이었다. 배구는 역시 ‘팀 스포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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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튜브 놀이터?’(좌측)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홈팀 마스코트 인형(우측).


인상 깊었던 것은 5세트 도중 브르노 선수가 공격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코트장에 그대로 누운 장면이었다. 브르노 팀이 앞서고 있었고, 홈 팬들에게는 충분히 할리우드 액션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은 야유를 보내기보단 따듯한 박수를 쳐주며 선수를 격려했다. 이쯤이면 우리가 배워야 할 성숙한 응원문화인 듯싶었다.

사실 체코 배구는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의외로 볼거리도 많고, 갖추고 있는 것들이 훌륭했다. 이번 취재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했다.

긴 여행에 대한 걱정은 이제 뒤로 밀렸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이기 때문이다. ‘배구의 나라’이기도 한 이탈리아도 가야 하는데, 그곳이 코로나19의 유럽진원지가 됐으니 막막하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 체코 배구리그 현장 동영상


* 장도영은 대학 1학년까지 배구선수였던 대학생입니다. 은퇴 후 글쓰기, 여행, 이벤트 진행 등 다양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면서 은퇴선수로 배구인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장도영의 세계 배구여행은 연예기획사 월드스타엔터테인먼트(WORLDSTARENTERTAINMENT)가 후원합니다.
*** 현지 동영상 등 더 자세한 세계 배구여행의 정보는 인스타그램(_dywhy_), 페이스북(ehdud1303), 유튜브(JW0GgMjbBJ0)에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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