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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인 탐구] 코스 설계가 H.S.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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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 콜트와 그의 설계작인 로열 포트러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최근 미국 <골프매거진>이 발표한 세계 100대 코스에서 코스 설계가 H.S 콜트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미국 골프 코스사에 크게 기여한 A.W.틸링허스트, 도널드 로스, 알리스터 매킨지 등을 제치고, 영국 골프의 아버지인 올드 톰 모리스까지 뒤로 하고 콜트가 설계에 참여한 골프장이 11곳이나 세계 100대 코스에 올랐기 때문이다.

매킨지와 톰 모리스는 각각 8곳을 설계했다. 틸링허스트는 100대 코스에 7곳을 올렸다. 오늘날 최고로 꼽히는 탐 도크는 6개, 빌 쿠어-벤 크렌쇼 듀오는 5개 코스를 100대에 올렸다. 콜트의 설계작은 오늘날 설계가들의 2배 이상이다.

게다가 그의 코스는 순위도 높다. 세게 1위에 꼽힌 미국 뉴저지 파인밸리는 조지 크럼프의 설계작이지만 실은 콜트가 라우팅에 도움을 주었다. 12위인 스코틀랜드의 뮤어필드는 톰 모리스가 1891년에 설계했지만, 오늘날의 모습으로 높이 평가받는 건 1925년에 콜트가 이 코스를 리노베이션하면서부터다.

오로지 콜트만의 레이아웃으로 나온 작품은 13위로 평가된 북아일랜드의 로열 포트러시다. 던루스 코스는 올해로 68년만에 디오픈을 개최한 곳으로 유명하다. 올해 대회를 위해 몇 개 홀이 리노베이션되었다. 이 코스는 향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보인다. 도대체 콜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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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콜트.


헨리 샵랜드 콜트(Henry Shapland Colt 1869년 8월4일~1951년 11월21일)는 잉글랜드 하이게이트에서 태어났고, 영국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클래식 설계가로 여겨진다. 콜트는 보비 존스처럼 아마추어 골프 선수이자 법학도였다. 클레어칼리지와 케임브릿지대학을 다녀 법학사 자격을 얻었다. 대학 4학년이던 1890년 골프 팀 주장을 맡기도 했다. 만능 스포츠맨이어서 골프 뿐만 아니라 크리켓 주장도 했고 럭비, 테니스 대회에도 대표 선수로 나갈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법률 회사를 세워 1년간 일했으나, 그의 머릿속엔 법 문구보다는 골프가 더 크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1891년 디오픈에 출전까지 해서 38위를 했고, 브리티시아마추어선수권은 설계가로 일하던 1912년까지 해마다 꾸준히 출전했던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설계가로 첫발을 디딘 것은 1895년 잉글랜드 남쪽 라이(Rye)골프클럽 설계를 맡으면서부터다. 좁은 땅에 파68, 6308야드 골프장을 완공한 후에는 아예 지배인으로 눌러앉았다. 2년 뒤에는 R&A에서 룰 위원회를 창설하자 창립 회원이 되면서 그는 골프업계에서 입지를 넓힌다.

1901년 서닝데일이 개장하면서 지배인 공고가 뜨자, 그는 무려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1922년 문을 연 서닝데일의 뉴 코스는 그가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사무실 창문 너머로 꿈꾸던 코스를 만들어놓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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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파인밸리는 경기 구역과 비관리 구역의 구별이 뚜렷한 난도높은 코스다.


점차 골프장 설계 수요가 높아지자 그는 파트너십을 맺어 사세를 키워나갔다. 1905년에는 알리스터 매킨지와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듬해 찰스 앨리슨이 조인했고, 1923년 매킨지가 독립해나가자 존 모리슨이 들어왔다. 결국 28년에 설계 전문회사인 콜트알리슨&모리슨 을 정식으로 설립해 45년 은퇴할 때까지 대표 설계가로 일했다.

이 회사는 영국은 물론 신대륙인 아메리카, 유럽, 호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24개국에 무려 300개가 넘는 코스 설계작을 남겼는데, 그중 콜트 자신의 코스는 115개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설계 컨설팅도 했다. 1918년 개장한 파인밸리는 설립자인 조지 크럼프가 콜트의 홀 라우팅에 자문을 받고난 뒤 시공에 착수했다.

콜트의 대표작을 꼽자면 첫번째 코스였던 라이를 비롯해 세인트앤드루스 에덴 코스와 북아일랜드의 대표작인 로열포트러시, 잉글랜드에서는 서닝데일 뉴 코스 등이 있다. 리노베이션 중에는 서닝데일 올드, 뮤어필드, 로열리버풀이 있다. 캐나다의 해밀턴CC, 토론토GC는 후대 골퍼로부터 손꼽히는 명 코스다. 디오픈 순회 개최지 8곳 중 2곳이 콜트의 작품이다.

설계학적으로 보면 콜트는 이전까지 링크스에 홀을 낸 벌칙형 코스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략적인 면을 강조한 설계가였다. 콜트 이전까지만 해도 직선의 홀 레이아웃이 특징이었으나 그는 커브를 살려 도그레그 홀과 블라인드 홀을 응용했을 뿐만 아니라, 골퍼에게 시각적인 도전을 주도록 하는 이른바 ‘비주얼 임팩트(Visual Impact)’를 적극 도입했다. 한마디로 골프장이 걸으면서 즐거운 곳이 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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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그가 만든 그린은 배수를 염두에 둔 빠른 그린스피드를 내는 형태여서 오늘날 스팀프미터로도 4~6미터가 나온다. 코스 내에 페어웨이빌라나 숙박 시설을 함께 고려한 오늘날의 골프장 부지 조성의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지향점은 ‘게임성을 높이기 위한 코스 조성’에 있었다.

로열리버풀은 원래 1849년 경마장인 리버풀헌트클럽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평평하고 직선으로 뻗은 페어웨이가 다수였으나 콜트가 1921년에 후반 10~15번 홀을 전면 리노베이션하면서 골프장다운 면모를 띄었고, 나중엔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프대항전인 워커스컵이 처음 개최되는 등 골프 대회의 전당으로 자리잡게됐다.

1994년에는 콜트협회가 창설되어 해리 콜트와 그의 설계 업적을 기리며, 그가 설계한 코스에서 선수들을 뽑아 대회를 여는 콜트컵(Colt cup)이 열리고 있다. 매킨지의 코스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여는 것과 비슷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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