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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구로 세계를 만난다_in 볼리비아①] (7) 월급이 없어도 배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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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배구협회장인 마르코스 오초아(Marcos Ochoa) 씨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장소는 물론 볼리비아 배구협회다.


페루(쿠스코)에서 볼리비아는 육로로 이동했다. 바로 수도인 라파스로 갈 수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를 들리기 위해 코파카바나라는 곳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0시간이 넘는 야간버스를 탔는데,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나름 잘 맞았던 것 같다. 체질적으로 맞는 것인지, 워낙 피곤하고 쪼들리는 여행인 까닭에 환경에 적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배구여행 덕에 티티카카 호수를 직접 보는 호사를 누리며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라파스로 향했다.

숙소는 라파스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인 ‘마녀시장’ 쪽에 위치한 로키 호스텔(Loki Hostel)이었다. 짐을 대충 풀고 곧바로 배구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호스텔에 영어가 능숙한 매니저가 있었는데 이름이 ‘벤자민(Benjamin)’이었다. 벤자민의 도움으로 볼리비아 배구협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약속시간을 잡아 방문하고 싶다는 내 뜻까지 전달했다. 다행히 볼리비아협회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일 오후 5시 이후에(처음엔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 의아했지만 방문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문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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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즈에서 가장 큰 체육관인 콜리세오 세라도 훌리오 보렐리 비테리토(Coliseo Cerrado Julio Borelli Viterito)의 외부와 내부 모습. 방문 당시 실제로 배구클럽팀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코트로 내려가 함께 뛰고 싶었다.


볼리비아 배구협회를 찾아서

시간에 맞춰 알려준 주소인 ‘콜리세오 세라도 훌리오 보렐리 비테리토(Coliseo Cerrado Julio Borelli Viterito)’로 출발했다. 다행히 날이 저물지 않아 위험하진 않았다. 라파스에 가면 대번에 느끼게 되는 것이 정말 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다는 것이다. 체육관이 그 사이에 들어서 있어 놀랐다. 이 체육관은 실내 종목 선수들이 가끔 훈련을 하고, 대부분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클럽팀 경기장으로 활용된다고 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협회가 있는 3층으로 걸어갔다. 외부도 물론 오래돼 보였지만, 안은 더했다. 특히 허름한 것은 물론 구석진 곳에 쓰레기 더미가 보일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볼리비아 협회에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번역기를 돌려 “오전에 연락드렸던 한국의 배구 기자입니다. 혹시 영어를 할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라고 물었다. 이내 “찾아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답이 나왔다.

다행히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다고 10분 정도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소사(Sosa)’라는 남자 직원과 만나게 됐다. 그런데 처음 꺼낸 말이 ‘잘못 찾아왔다’는 것. “볼비리아 배구협회는 여기가 아닙니다. 여기는 라파스 배구협회에요.” 나는 많이 놀랐고, 또 볼리비아 배구협회로 가서, 원하는 취재를 하기 위해 또 어떤 고난을 겪어야 할지 걱정이 쏟아졌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볼리비아 배구협회는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멀지 않아요. 건물 밖으로 나가서 조금만 걸으시면 됩니다. 제가 안내해드릴 테니 따라오세요”라고 말할 때, 그의 모습은 내게 천사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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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배구협회 외부와 내부 모습. 시설은 정말이지 많이 열악했다.


협회가 오후 5시에 문을 여는 이유

실제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볼리비아 배구협회가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협회장인 마르코스 오초아(Marcos Ochoa)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볼리비아 배구는 엘리트 스포츠 개념이 아니에요. 시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체육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실 것 같네요. 1년에 한 번씩 지역별로(라파스 La paz), 코차밤바(Cochabamba), 산타크루스(Santa cru스), 타리자(Tarija), 추키사카(Chuquisaca), 판도(Pando), 베니(Beni), 포토시(Potosi), 오루로(Oruro) 총 9개의 토너먼트로 경기를 치르는데 참가하는 팀은 총 38개 정도 될 거예요. 이 팀들이 경기를 치르는 걸 보고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 시스템이죠. 국제대회 시즌 전 18명의 엔트리를 먼저 추리고 훈련을 통해 12명의 선수들만 출전하고 있어요. 보통 대회 한 달 전에 그 선수들을 소집해서 훈련을 진행하고요.”

이어 “엘리트 스포츠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 각자의 직업이 따로 있어요. 국제대회 시즌이 아닐 때는 자신의 원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죠. 이유는 선수들에게 따로 급여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훈련에 필요한 장비와 숙식은 제공이 되지만, 돈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나오는 상금밖에 없어요.”

이쯤이면 열악한 환경이다. 그리고 그들도 이게 ‘열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은 원래 일을 하지 않으니 수입이 없잖아요? 그렇다면 선수들은 어떤 이유로 배구선수를 하는 거죠?” 그러자 오초아 회장은 “비록 급여는 없지만 선수들 모두 배구를 정말 사랑해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삶에서 잠깐이라도 희열을 느낄 수 있어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희 배구협회에 소속된 모든 직원들도 모두 무급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협회 운영시간이 오후 5시~9시에요. 메인 직장을 마치고 출근해야 하거든요. 배구를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웃음).”라고 답했다.

감독 등 코칭스태프를 제외하면 선수들과 협회에 소속된 모든 직원들이 급여를 받지 않고 활동을 한다는 얘기에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볼리비아에 배구를 직업으로 하는 선수가 없다니. ‘과연 나는 이들만큼 진정으로 배구를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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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는 내내 친절하게 나를 도와준 라파즈 배구협회의 직원, 소사(Sosa) 씨와 함께.


볼리비아의 배구도시는 코차밤바

오초아 회장은 “여기보다는 코차밤바를 방문하시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지금 그곳에서 국가대표선수들이 소집돼 훈련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가장 배구가 인기 있는 지역이 바로 코차밤바랍니다. 볼리비아 전체에 아마추어팀이 총 300개 정도 등록되어 있는데, 그중 100개팀 정도가 코차밤바에 있어요. 그곳에서는 다른 스포츠에 관심이 아예 없어요. 오로지 배구죠.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꼭 가보세요. 배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원래 볼리비아 배구에 대해서는 기대가 거의 없었다. 세계 랭킹이 최하위권(남자대표팀 공동 131위, 여자대표팀 공동 117위, 10월 27일 기준)이고, 시설 또한 이미 앞선 국가들(쿠바, 페루)을 방문하면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여를 받지 않고도 열정적으로 배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활동을 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내가 놀란 것과는 다르게 그들도 나를 보고 놀랐다. 다른 국가에서 볼리비아 배구에 대해 취재하러 온 사람이 필자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취재하는 내내 아주 친절하게, 가능한 도와주려고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에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볼리비아 배구를 현장취재한 첫 외국인이라니! 그리고 돈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열정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 장도영은 대학 1학년까지 배구선수였던 대학생입니다. 은퇴 후 글쓰기, 여행, 이벤트 진행 등 다양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면서 은퇴선수로 배구인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장도영의 세계 배구여행은 연예기획사 PNB가 후원합니다.
*** 현지 동영상 등 더 자세한 세계 배구여행의 정보는 인스타그램(_dywhy_), 페이스북(ehdud1303), 유튜브(JW0GgMjbBJ0)에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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