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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배구로 세계를 만나러 나선 청년

  • 기사입력 2019-09-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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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2015년)의 표지.

#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2013년 평범한 직장이었던 아버지가 전 재산인 50평 아파트를 팔아 가족 5명이 버스를 타고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는 세계여행을 한 것이다. 이 내용이 TV 다큐멘터리, 책으로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뻬빼가족 여행의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미니버스가 집이라 싸워도 나갈 곳이 없다. 긴 여행의 우여곡절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지금 내 가족은 어떤가?’가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다. 남다른 테마가 있는 여행은 값지다. 검색을 해보니, 두 번째 여행(책)이 있었고, 빼빼가족의 두 부부는 세 아이를 독립시킨 후 지금은 전업 여행작가로 산다고 한다. 여행이 삶을 바꾼 것이다.

#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몇 달 앞두고였다. 아시안 게임 뉴스 서비스(AGNS)라는 프로그램이었데, 대학생 100명을 선발해 영문과 국문으로 기사를 작성해, 외신과 국내언론에 대회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참신하면서도 나름 호평을 받은 스포츠이벤트 부가행사였고 개인적으로 국문편집장을 맡았다. 지원서에 적힌 이름은 장도영(1994년생). ‘예전에 유명했던 군인의 이름이네’이라 생각하고 지원서를 꼼꼼히 읽었다. 경희대 1학년. 초등학교부터 배구선수를 하다가 ‘작은 키(181cm)'를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전 운동을 관뒀다고 했다. 운동만 했던 까닭에 글쓰기는 형편이 없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의 이색경력, 그리고 ’운동을 관뒀는데 뭔가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좌절할 것 같다‘는 열정에 그를 뽑았다.

# 대학생기자 장도영은 개인적으로 고역이자 즐거움이었다. 일단 글이 좋지 않아 데스킹이 힘들었다. 따로 불러 급하게나마 문장지도를 하기도 했다. 기사 하나 내보내는 데 다른 친구들보다는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즐거움은 배구를 보고, 이를 독자에게 전하는 그의 능력이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세터 000은 과감하게 토스의 높이 바꿨다. 도박일수도 있지만 상대 토트의 빈공간을 노리는 이 작전은 성공했다’ 배구를 직접 하지 않은 사람은 파악하기 힘든 내용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시안게임이 끝날 무렵 이 친구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 “지금 공부한 게 적은 것, 글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배구한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금방 따라잡는다. 배구보다는 쉬울 것이다. 나중에 최고의 배구기자나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다. 곧 군대에 간다고 하니 군대에서 무조건 책만 읽다가 나와라”라고 조언했다.

# 이후 중간중간 소식을 접하고, 가끔 소주나 밥을 사주기도 했다. 장도영은 배구전문 인터넷 매체에 대학생기자로 일을 하다가, 곧 입대했다. 또 제대할 때는 “저 진짜, 군대에서 나름 책 많이 읽었습니다”라는 안부가 왔다. 제대 후에도 대학생기자로 글을 쓰고, 이제는 그 열심히 사는 것이 알려지며 은퇴선수의 롤모델이라며 후배들을 상대로 강연까지 했다고. 2018년은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1년간 다녀왔다. 이 사이 에베레스트 산과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반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한 번씩 연락하면 ‘아르바이트 때문에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답이 오곤 했다. 기특할 정도로 열심히 산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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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세계 배구여행을 떠나기 직전 포즈를 취한 장도영 전 배구선수. 그의 손에는 특별히 제작한 배구공이 들려 있다. 이 공에 전 세계 배구인들의 의미 있는 사인을 받을 생각이다. [사진=장도영]


# 몇 달 전 이 친구가 찾아왔다. 오는 가을 ‘세계 배구여행’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기간은 일단 5개월, 쿠바를 시작으로 중남미와 유럽을 거쳐 미국과 아시아를 돈다고 했다. 배구리그가 있는 나라를 찾아다니며 엘리트 선수들은 물론이고, 생활체육 동호인들까지 그 나라의 배구문화를 체험해 이를 기사와 SNS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빠듯하지만 나름 여행경비도 모았다고 했다. 이쯤이면 기특을 넘어 감동이다. 흔쾌히 신문연재를 허락했고, 이곳저곳에 25살 은퇴 배구선수의 세계여행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봤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답이 없었지만, 탁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최근 작은 연예기획사를 차린 김승환 대표가 이 얘기를 듣더니 대단하다며 “많지 않은 액수지만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 지난 18일 저녁 대학생 장도영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쿠바. 저렴한 티켓을 끊기 위해 중간 기착지가 많아 이틀 후 아바나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젊은 전직 배구선수가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세계 배구여행이 시작된다. “나름 배구를 열심히 했고, 대학 1학년에 배구를 관두면서 정말이지 크게 좌절했지요. 다시는 배구는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다시 배구가 좋아졌어요. 호주생활 때는 시간을 내 배구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죠. 국가대표 등 선수로 목표했던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배구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배구를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배구로 세계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다. 20년을 넘게 스포츠기자를 해왔지만, 젊은 은퇴선수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장도영과 같은 은퇴선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장도영이 나중에 빼빼가족처럼 멋진 여행책을 하나 냈으면 좋겠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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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PNB의 김승환 대표(왼쪽)와 장도영 씨.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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