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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구로 세계를 만난다] 프롤로그 ‘내가 세계 배구여행을 떠나는 이유’

  • 기사입력 2019-09-0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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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배구를 가르치는 모습(2015년 2월).

2015년 2월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었다. 롯지(오두막 형태의 숙소)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저쪽 멀리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2명이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 모습이 확인됐는데 남자아이 2명이 배구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히말라야에서 배구를 하네!' 신기함에 자세히 봤더니 '체육관 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언더와 토스를 주고받았고, 어설픈 스텝까지 밟으며 스파이크도 때렸다.

전직 배구선수였던 까닭에 곧바로 그들에게 물었다. "I used to be a volleyball player in Korea. Will you learn volleyball from me(나는 한국에서 배구선수로 활동했었다. 나에게 배구를 배우겠니)?". 그들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짓발짓으로 설명을 하니 "Yes, Okay"라는 답이 나왔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진 못했지만 나름 그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개인훈련 방법과 그들이 가장 원했던 공격 스텝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헤어질 때 그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 My Friend.”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당시는 배구를 그만둔 지 1년여가 지났을 때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동안 배구하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선수를 그만둔 후 배구는 치가 떨리게 싫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때 세계 배구여행의 씨앗이 싹텄다. ‘배구로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4년반이 지난 지금 나는 ’세계 배구여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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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선수로 뛸 때의 모습.


배구선수

나는 2005~2013년까지 총 9년 동안 배구선수(수원 칠보초, 분당 송림중, 강원 속초고, 수원 경희대) 생활을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그러니까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배구와 함께 보냈다. 선수로 특출나게 돋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팀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미들블로커, 중학교는 아포짓 스파이커, 고등학교는 다시 미들블로커로서 코트에 나섰다. 고등학교까지는 공격수로 활동을 했었지만 대학교로 올라와서는 작은 신장(181cm)을 극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대학교 감독님과 코치님의 권유로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리베로를 해온 선수들과의 격차를 좁히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운동보다는 매니저의 역할(흔히 말하는 뒤치다꺼리)을 수행했고, 그렇게 한 시즌이 흐르다 보니 문득 '이제는 배구를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시간만 낭비하고 졸업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감독님과 코치님께 진로에 대한 얘기를 했고, 나는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나의 전부였던 배구와 작별했다. 당시 심정은 어떤 설명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 좌절, 허망함, 미래에 대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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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서포터즈로 활동하던 모습. 오른쪽은 현장(배구장)에서 기사를 쓰는 장면.


'일단 한 번 해보자'

운동을 그만두고 두 달 정도는 신세한탄에 부정적인 생각만 갖고 살았다. 10대를 다 바친 배구였기에 배구를 떠나니 '배구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지? 세상은 정말 지옥이나 다름없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서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주자'라는 오기가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굳게 다짐한 후 내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마침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 내에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운영하는 스포츠 매거진(레굴루스)이 있었는데, 우리 배구팀을 취재하던 선배가 “도영아, 네가 배구를 잘 아니까 그거 살려서 글 한 번 써볼래?”라고 다가왔다.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일단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생존본능이 있었던 까닭에 '일단 한 번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글쓰기는커녕, 띄어쓰기와 맞춤법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그렇게 졸지에 대학생기자가 됐다.

기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계속해서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이게 정말 신기했다. ‘글쓰기가 이렇다면 다른 분야도 경험해보자’라고 생각했고, 이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스포츠 마케팅과 관련된 활동, 배구 강사, 인터넷 라디오, 강연 등을 했다. 또 총 6개의 매체(레굴루스, 발리볼코리아, 대학배구연맹,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더 스파이크, 헤럴드경제)에서 기자로 글을 썼다. '실패를 두려워할 시간에 일단 부딪히는 것'이 결국 최선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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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찍은 사진(왼쪽)과 배구를 가르친 현지친구들과 함께한 모습(2017년 8월).


다시 배구사랑

앞서 언급한 생뚱맞은 히말라야 배구레슨은 나를 움직인 듯싶다. 2017년 8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반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땐 직접 한국의 배구 공인구(STAR 볼)를 들고 갔다. 공에 바람을 빼고 캐리어에 실었고, 아프리카 현지에서 다시 바람을 넣어 산행에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지만 그때는 그저 정상(우후루피크 5895m)에서 공을 들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현지 친구들에게 배구도 가르쳐주고. 결국 나는 원했던 것을 모두 실행했고, 그 경험이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었다.

2018년 4월 세계 배구여행에 대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해외에서 직접 배구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 도착한 후 먹고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고, 2주 정도가 지난 후에야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꾸준히 배구를 할 팀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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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의 배구 활동은 낯선 타지에서 몇 안 되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였다. 선수시절에는 운동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말이다.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클럽팀을 알아봤고, 여러 개의 팀 중 2개 팀으로 추렸다. 두 곳을 직접 가서 훈련을 해본 후, 이후 내 호주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준 드래곤스 발리볼 클럽(Dragons Volleyball Club)과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엔 영어를 잘하지 못해 겉으로 도는 느낌이었지만, 훈련이 거듭되고 어느 정도 수준있는 배구를 하다 보니 호주친구들이 먼저 다가왔다.

나는 호주에서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는 정해져 있고 최대한 많은 금액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하루 2탕(대부분 오전 9시~오후 3시, 오후 5시~오후 11시)은 물론 1년 동안 총 10개의 직종(요식업, 카페, 청소 등)을 체험했다.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세계 배구여행에 대한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정말 악착같이 버텼다. 운동할 때는 그토록 힘들었던 배구가 이제는 스트레스를 푸는 운동이 됐다. 배구하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여행 자금과, 친구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이 3가지를 얻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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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기자로, 오른쪽은 2019 서울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때 가이드로 일하는 모습.


세계 배구여행의 마지막 준비

선수 시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 경기를 뛰는 것이 소망이었다. 비록 선수로서는 코트를 밟지 못했지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기자로서, 2019년 서울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는 가이드로서 활동했다. 현장에서 어떻게 대회를 운영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의 대회를 위해 노력하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가이드 활동할 때 내 업무는 대회 중계방송을 담당하는 SMM Sport(태국) 관계자들과 AVC 임원분들을 서포트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격식을 갖춰야 하고, 뭐든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고, 배구를 좋아하고, 직업이 배구와 관련이 있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친구와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까지 느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세계 배구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훗날 국제대회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보면서 심장이 뛰는 내 자신을 느끼며 ‘아.. 나는 세계 배구여행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고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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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체육부 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모습(2017년 12월).


배구와 내 젊음을 위한 여행

요즘 들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경험들이 내가 원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점선’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을 성공적으로 다녀오면 또 다른 꿈에 다다를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여행을 통해 ‘해외(배구)리그는 어떤 문화와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는지?, 각 나라마다 현지인들과 직접 배구를 함께하며 배구라는 종목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이고 팬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우리나라 실력이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배울 점들이 필요한지’ 등을 다방면으로 취재하고, 또 기록하고 싶다.

사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까닭에 걱정도 크다. 그래도 도전하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배구정보를 얻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리고 나처럼 운동을 그만둔 친구들이 나를 보면서 운동이 아니어도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봐서 못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오는 18일 나는 쿠바를 시작으로 남미, 유럽, 아시아 순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개인돈이라는 경제적 사정과 여러 나라 배구리그의 일정 등으로 인해, 배구를 하는 모든 국가를 방문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많은 콘텐츠로 배구팬들을 만나고 싶다. ‘6년 전 배구를 그만두고 방황만 하던 한 아이가, 세계 배구여행을 떠나는 한 청년이 되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 몇 년이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이 나는 내 여행을 있는 힘껏 즐기려고 한다. ‘지금부터 출발합니다. 장도영의 세계 배구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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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여자선수권 때는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세터 눗사라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행복했다.


* 장도영. 배구선수였던 대학생. 10년여 동안 했던 배구를 그만둔 후 극심한 좌절을 겪었다. 이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차곡히 쌓았고, 이제는 '나와 같은 힘듦을 겪는 친구들을 도와주고자 한다'.

** 소정의 지원금(여행물품 구입)을 후원해주신 경희대 임신자 체육부 부장님과 박경혜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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