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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축구] 'U-19 출신' 공격수가 ‘등번호 9번’ 수비수로 변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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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주장 이기운(9번)이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스포츠에서 등번호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각 종목 별로 번호에 해당하는 역할 또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축구에서는 1번은 주전 골키퍼, 7번 혹은 10번은 팀 내 에이스, 11번은 발 빠른 선수를 의미한다. 경기를 보다 등번호와 해당 선수의 특성이 맞지 않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지난달 27일 제55회 태백배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 중앙대와 단국대의 결승전에서도 그랬다. 소문난 잔치에 '꿀잼'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0-4→4-4→5-4. 한 경기에서 벌어진 스코어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등번호 9번을 달고 수비수를 보던 단국대 주장이 눈에 띄었다.

경기는 이른 시점부터 균형의 추가 확 기울었다. 중앙대가 4골을 연달아 몰아쳤다. 단국대 주장 이기운이 후반 18분 만에 네 번이나 고개를 떨궜다. 수비수 이기운이 공격수로 올라가면서 단국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후반 33분 이용언의 왼발 중거리 슈팅 골을 기점으로 후반 41분 이기운, 후반 43분 임현우의 골로 턱밑까지 쫓아갔다.

후반 추가시간 단국대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프리킥. 공은 단국대 키커의 오른발을 떠나 페널티박스로 향했고 ‘191cm’ 이기운이 수비수 2명을 따돌린 뒤 어렵게 머리를 댔다. 이렇게 단국대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단국대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기운은 “축구하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며 “벅찼고 우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큰 변수가 발생했다. 연장 후반 중앙대 김현우가 올린 크로스가 단국대 수비수 이창현의 몸에 맞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부차기로 넘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창현의 손에 맞았다는 판정이었다. 중계 장면을 되돌려보면 이는 명백한 오심이었다. 김현우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우승 트로피는 중앙대에게 넘어갔다. 단국대 주장 이기운의 마지막 태백 대회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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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운은 등번호 9번을 달고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한 날이 더 많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모든 선수들이 우승을 갈망하겠으나 이기운은 특히 더 간절했다. 2년 전 단국대가 우승할 때 부상으로 인해 피치를 밟지 못했기 때문. 더군다나 4학년에게 추계 대회는 사실상 마지막 프로행 쇼케이스다. 그는 오심 판정에 대해 “원망스럽기도 한데 이미 끝난 일이니까요”라고 한숨을 쉬고 이어 “후배들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뛰고 싶은 선수들도 많았을텐데 뛰든 뛰지 않든 모두가 팀을 위해서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이기운은 지난해 프로로 향했어야 했다. 그는 광주FC 유스 금호고 졸업 후 단국대로 진학하면서 광주가 우선지명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지명권의 유효기간은 3년. 3학년이 지난 뒤 광주는 이기운에 대한 권한을 포기했다. 2학년 때 무릎 부상으로 인해 1년을 통째로 쉰 탓이 컸다. 서운할 법도 했을 터. 그는 “서운하기보단 제가 부족해서 못 간 것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마지막해인 올 시즌 이기운은 큰 결심을 했다. 십여 년간을 살아온 공격수 인생을 뒤로 하고 수비수로 새 도전에 나선 것이다. 단국대 신연호 감독을 포함해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공격수 커리어로 연령별 대표팀도 다녀 올만큼 재능은 이미 인정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신연호 감독은 올 시즌 이기운에게 공격수를 상징하는 등번호 ‘9’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기운의 의지는 감독마저 막지 못했다.

“22세 룰로 대학 4학년이 취업하기가 힘들잖아요. 운동 그만 둘까도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를 바라봤을 때 공격수로 비전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더 배울 수 있고 더 즐길 수 있는 것(수비수)을 선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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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운은 공격수 재능을 인정받아 지난 2016 AFC U-19 챔피언십에도 참가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이미 단국대엔 포지션 변화 수혜자(?) 역사가 있다. 이기운의 2년 선배 조성욱이다. 조성욱은 본 포지션인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변화했다 다시 수비수로 전향을 하면서 프로 진출에 성공한 케이스다. 이기운은 곧장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처음에 결심을 했을 때 정말 연락을 많이 했어요. 형이 ‘공격수 출신 수비수는 수비만 했던 선수들이 가질 수 없으니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선수보다 발밑이 좋다고 장점을 잘 살리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추계대회 이전엔 프로 합숙도 다녀왔다. 경험보다 좋은 동기부여는 없다. “취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라던 이기운은 “프로 환경이 정말 좋더라고요. 다녀오니 생각도 많이 바뀌고 더 욕심이 생겨서 준비를 더 하게 되는 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여전히 주장임을 잊지 않고 팀 생각을 빼놓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후회만 남지 않도록 마무리하려고요. 제 취업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팀을 먼저 생각하면서 남은 시즌 마무리하고 싶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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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운은 1학년 시절 FA컵에서 전북현대를 만나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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