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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철원의 주먹’이 탁구전도사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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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익두 목사.


# 김익두(1874~1950) 목사는 개신교 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다. 한국 초대교회에서 레전드급이다. 그런데 그는 ‘안악산 호랑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유명한, 그리고 지독한 깡패였다. 평양 시내 신천장에서 악명을 떨쳤다. 사람들이 성황당에서 그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 정도. 그가 회개한 다음 맨 처음 한 일이 부고장을 돌린 것이다.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런데 시장 한 복판에 그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술렁였다. 이때 그에게 모질게 당했던 한 아주머니가 “어디 옛날 김익두가 정말 죽었나 보자”며 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김익두는 물을 툭툭 털고는 “내가 죽었으니 아주머니가 살아있지 않소, 옛날의 내가 살았다면 아주머니는 오늘 죽었을 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먹이 개과천선한 이야기는 고전소설부터, 영화 ‘해바라기’의 오태식처럼 진부하리만큼 친숙한 주제다.

# 철원 동송읍에서 1960년에 태어난 남상원은 어린 시절 학교와 공부가 싫었다. 초등학교와 철원중 시절에는 축구선수를, 철원고(졸업장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때는 잠깐 럭비를 하기도 했지만, 제도권에 갖혀 있기보다는 타고난 스피드와 탄력을 바탕으로 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걸 좋아했다. 본업인 싸움에서는 져 본 적이 없고, 당연히 20대로 접어들면서 지역 최고의 주먹이 됐다. “정말 나쁜 짓 많이했다. 그때만 해도 받아준 돈의 절반을 떼먹는 해결사 노릇, 이자놀이, 도박장 운영, 담배와 술의 불법유통 등 돈이 되는 나쁜 짓은 다 해본 것 같다. 하루 80~100만 원이 들어왔다. 하지만 식구 60명을 먹여 살리기에 바빴고, 나쁘게 번 돈은 나쁘게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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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회 문체부장관기 전국남녀 학생종별탁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철원실내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한 남상원 철원군탁구협회장.


# 영화와는 달리 현실의 깡패세계는 결말이 좋지 않다. 한수이북에서는 알아주던 ‘철원의 상원이’는 전과도 늘려갔다. 1995년인가 호남주먹들이 철원으로 들어오자 100명이 넘는 깡패들이 피와 살이 튀기는 험악한 패싸움을 했다. 심하게 다친 이들이 많았고, 남상원은 검거를 피해 태국으로 도망쳤다. 1년반을 태국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다가 결국 자수해 2년반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1998년에는 사이판으로 3개월 동안 도피하기도 했고, 결국 또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 마지막 징역을 살 때 손을 씻기로 결심했다. 성경을 완독하고, 필사까지 해 매일 아내에게 편지로 붙였다. 매일 감방에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 예배를 드릴 때, 다른 감방에서 욕설과 함께 “조용히해”라고 고함을 쳤지만, 주인공이 남상원인 걸 알고는 이내 “형님, 예배 잘 드리십시오”로 바뀌었다. 교화발표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쓸데없이 전국구 주먹 어쩌고 그러는데, 그런 거 다 엉터리에요. 현실에서 도움도 안 돼요. 저도 감방에서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주먹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그런 건 자랑할게 못 돼요.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세월이 지나면서 다 잊었죠. 내가 얼마나 대단한 깡패였는가가 뭐가 중요합니까?”

# 2000년 출소했고, 선후배들의 연락이 왔지만 “저 싫어요. 손 씻었어요”라고 거절했다. 문제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아내를 통해 여기저기 ‘노가다’ 자리를 부탁했는데 “어떻게 상원이를 부리겠느냐”며 거절 당했다. 이에 없는 돈을 모아 매형과 함께 동업으로 개사육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 개고기 값이 폭락하면서 1년반 만에 쫄닥 망했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소에 취직해 역시 열심히 했지만 심하게 뒷통수를 맞은 후 몇 년 만에 제 발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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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원 철원군탁구협회장이 지난 7월 4일 모교인 찰원고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진로특강을 하고 있다.


# 정직하고 바르게 부동산 업소를 운영하고 싶었는데 목돈이 없었다. 그런데 아파트 하나가 전 재산인 친형이 모처럼 바르게 살겠다는 동생을 위해 담보대출로 2억 원을 내줬다. 눈물이 났다. 2005년 사무실을 냈고, 밤 12시에도 땅을 보러 다니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돈이 붙기 시작했다. 매년 철원군 부동산 중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10억 원을 벌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포천의 태국마사지샵을 다녔는데, 2012년 이걸 직접 해보기로 했다. 태국 도피생활 때 태국어를 익혀둔 것도 유리했다. 동송읍에 차린 이 마사지집이 처음 6개월은 고전했지만 이후 한달에 순수익만 1,0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대박이 났다. 포천과 의정부 등에 지점을 냈고, 지금도 4곳을 운영하고 있다. 또 워낙에 여행을 좋아해 예향이라는 태국전문 여행사도 차렸다. 남상원 사장은 지금 부동산, 마사지체인점, 여행사까지 30명이 넘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

# 남상원의 인생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탁구와의 인연은 2007년 시작됐다. 고객 중 연천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살이 쪽 빠져 있었다. “탁구해서 몸이 좋아졌어요”라는 말을 듣고, 남상원 사장도 바로 연천으로 따라가 탁구에 입문했다. 그런데 이게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7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탁구를 쳤고, 스스로 놀랄 만큼 살이 빠지고 몸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좋은 운동을 멀리 연천까지 가지 않고 집근처에서 즐기고 싶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동송읍에 탁구를 치는 사람이 10명 남짓 있었다. 전용 탁구장은 없고, 문화복지센터의 한 공간에서 수시로 탁구대를 놓았다가 치웠다 하며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영 불편했다. 월 40만원의 사용료를 내는 데도 매주 월요일은 안 되고, 행사가 있으면 그때마다 취소됐다. 평균 일주일에 2~3번이 고작이었고, 심할 때는 일주일 내내 탁구를 치지 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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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모교인 찰원고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 남상원 회장(오른쪽).


# 뿔이 난 남상원 사장은 사비를 들여 탁구동호인과 그 가족까지 70명 정도를 모아 큰 야유회를 열었고, 그날로 탁구동호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군수를 만나러 갔다. “탁구장 좀 만들어주쇼.” 그런데 군수가 반대했다. 철원군 내 갈말읍과 김화읍 쪽에서 왜 동송읍만 지어주느냐고 반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남 사장은 밥을 사겠다면 두 읍의 탁구동호인들을 한데 모았고, “동송읍에 전용탁구장이 먼저 들어서면, 김화읍과 갈말읍에도 연이어 생기도록 만들겠다”며 협조를 부탁했다. 이 의견일치를 바탕으로 다시 군수를 찾아갔고, 2010년 마침내 동송읍에 전용탁구장이 생겼다. 그리고 이후 다른 두 읍에도 같은 시설이 들어섰다. 남상원 사장은 현재 8년째 철원군탁구협회장(강원도협회는 감사)을 맡고 있고, 이제 철원에서는 군수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먼저 탁구동호회를 찾아와 인사할 정도가 됐다.

# 지난 20일부터 제52회 문체부장관기 전국남녀 학생종별탁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26일 이 대회가 끝나면 바로 이어 이틀 동안 장관기 생활체육전국대회가 열린다. 총 9일짜리 대회를 유치하면서 철원군은 1억 원의 후원금을 내놨다. 철원에 이렇게 큰 탁구대회가 열리게 된 데에는 남상원 회장의 역할이 컸다. 남 회장은 생활체육대회에는 직접 선수로 출전한다. 앞서 지난 5월 대한탁구협회장 선거 때는 윤길중 후보에게 기탁금 5,000만 원을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자신이 밀지 않았던 유승민 회장이 당선됐지만, 최근 직접 만나 이견을 줄였고 탁구발전을 돕기로 했다. ‘탁구를 하면서 몸이 건강해졌고, 사업도 더 잘 된다’는 것이 남 회장의 지론이다.

# “청소년들을 상대로 강연도 종종 하고, 교회에서 간증도 제법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나 같은 삶을 살지 말자’죠. 물론 저처럼 회개하고 나중에 잘 살 수도 있지만 이건 정답이 아니에요. 한 번 틀어진 삶을 제대로 맞추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없죠. 젊었을 때부터 제대로 열심히 살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개과천선 스토리는 진부하지만, 그 안에 최근 생활체육 붐이 일고 있는 탁구가 있으니 무척 반갑다. 그러고 보니 '탁구 치는 깡패'는 없을 듯싶다. “예전에 잘나갔던 깡패와 탁구 한 게임 하실 분은 언제든지 철원의 소망공인중개사로 오십시오.” 남상원 회장은 ‘깡패 출신 목사’는 아니지만 성공한 ‘깡패 출신 탁구전도사’는 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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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원 회장이 생활체육 탁구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그의 실력은 전국 6부, 지역 4부 정도라고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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