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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택의 크로스카운터] 구타, 열정페이... 격투계에서 사라져야 할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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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KBS가 보도한 윤 감독의 폭행사건 뉴스의 한 장면. [사진=방송캡처]


최근 용인 거점의 종합격투기(MMA) 체육관 관장 윤 모 감독이 제자이자 소속 선수를 잔인하게 구타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국내 격투계가 발칵 뒤집혔다. 윤 감독으로 추정되는 영상 속 사내는 제자로 보이는 이를 '엎드러뻗쳐' 시키고 대걸레 자루와 골프채로 최소 십여 대 이상을 가격한다. 고통에 몸부림 치며 매질을 피하는 피해자를 닥치는 대로 구타하기도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폭행 이외에도 시합 티켓 강매, 대전료 미지급, 지인의 선거 운동 동원 등 금전 및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까지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조센징'이라는 모멸적 발언은 덤이었다.

더욱이 일본과 연개된 종합격투기(MMA) 대회를 운영하며 격투 관련 용품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모 대표와의 커넥션까지 의혹을 받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은 더하다. 시합 출전 및 대전료 지급여부, 티켓 판매, 현장 스태프 투입 등은 대회사와 직접적인 연결고리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종합격투기(MMA)는 아마추어나 프로스포츠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마니아 문화로 출발했다. 때문에 선수와 지도자의 계약관계, 프로모터와 선수 혹은 팀과의 매니지먼트 관계가 명확한 기준이 없이 각기 다른 형태로 난립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민감한 사안인 금전문제나 시합 출전 관련 권한을 선수가 지도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선수의 편에서 때로는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력해 세계적인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한 팀매드 양성훈 감독처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선수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팀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지위와 격투계 내에서의 입지를 이용해 선수에게 부당한 대우를 행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던 선수가 갑작스레 팀을 이탈하는 경우, 숨겨진 이면에는 금전문제나 구타 사건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며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안타까움을 표한 이들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선수도 있었다. 격투계의 이러한 폭력과 착취 문제가 비단 어린 무명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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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이 소속선수들을 지인의 선거운동에 동원한 정황을 담은 SNS 메시지. [사진=방송캡처]


변화의 기회, 격투계의 엄중한 대응 필요


이번 사건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처음 알려졌지만 지상파 뉴스가 다루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당연히 즉시 해당 감독과 대회사 대표의 책임있는 대응과 공개 사과 혹은 입장표명이 따를 줄 알았지만 헛된 기대였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사태가 알아서 잊혀지기만을 기다리다가 오히려 일을 키운 샘이다.

뉴스를 접한 주변 지인들 역시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던가,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은 너무도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강력 사건이 일어난 후 피의자를 아는 마을 주민이 "그런 짓 할 청년이 아니다"라고 인터뷰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보다 힘이 있거나 자신과 동등한 위치의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강력 범죄자들이 보여주는 양면성과도 닮아서 등골이 서늘해진다.

한국 체육계 역시 체벌, 폭력 문화가 종목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체육계 내부로부터의 각성 의지 덕분에 조금씩 긍정적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한국 종합격투기 단체와 협회, 지도자와 선수들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 당사자들은 일벌백계의 차원에서라도 한국 격투계의 무겁고 엄중한 대응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폭력과 착취, 지위와 관계를 위시한 부당한 대우가 사라질 수 있도록 공정한 계약과 상호 동등한 기준의 매니지먼트 규약도 정립되어야 하겠다.

주식시장에서 "공개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 라는 속설이 있다. 격투계의 어두운 적폐문화가 명명백백 공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건강한 격투기 문화 정착을 위한 쓴 약이 되기를 고대해 본다.

* 이호택은 국내 종합격투기 초창기부터 복싱과 MMA 팀 트레이너이자 매니저로 활동했다. 이후 국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격투 이벤트의 기획자로 활약했다. 스스로 복싱 킥복싱 등을 수련하기도 했다. 현재는 마케팅홍보회사 NWDC의 대표를 맡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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