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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골프장의 발견] 우정힐스CC - ‘한국오픈’의 ‘절대코스’
9번 홀에서 3번 째 친 공을 그린에 올려 어렵사리 ‘파’ 퍼팅을 집어 넣자 캐디가 덕담을 건넵니다. “이 홀에서 파(Par) 한번 하면 원 없이 회원권 팔겠다는 회원님들도 계세요. 하도 어려워서요” 그런데 그 분들도 막상 파를 하고 나면 “그래도 이 홀에서 버디 한 번은 해 봐야겠다 하세요” 라 말하며 캐디는 웃습니다.

1. ‘우정’과 ‘한국오픈’

“여기서 언더파를 쳐 보라”
코오롱 그룹의 고(故) 이동찬 회장(1922~2014)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1993년에 이 <우정힐스컨트리클럽(이하 ‘우정힐스CC’)>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당시 정상급 프로골퍼들에게 “이 골프장에서 언더파를 쳐 보라”고 호언했다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코스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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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2회 한국오픈에서 시타하는 고 이동찬 회장.


‘우정(牛汀)’이라는 이름은 이 회장의 아호를 딴 것입니다. ‘물가의 소’라는 뜻이니 ‘소처럼 우직하고 근면하겠다’는 한국적인 소박한 정서가 느껴지지만, 이 골프장은 ‘한국 최초의 웨스턴 스타일’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대부분 일본의 영향을 받은 정원 스타일의 평안한 코스로 조성되어 왔었지요.

‘우정의 뜻’을 받은 다이의 설계
이 골프장 코스를 설계한 이는 전설적인 골프코스 디자이너인 ‘피트 다이(Pete Dye)’의 큰 아들 ‘페리 오 다이(Perry. O. Dye)’ 입니다. 피트 다이는 전 세계 골프 팬들에게 잘 알려진 명코스들을 많이 만들었지요. 미국 PGA에서 ‘제 5의 메이저’라 불리는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스타디움코스를 비롯해서, US오픈이 열렸던 <휘슬링스트레이츠> 등 그가 만든 코스는 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해서, 그는 “골퍼를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코스 설계의 사디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큰 아들인 ‘페리 오 다이’ 역시 아버지의 설계 철학을 이어받아 무척 어려운 코스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정힐스CC’ 설계 당시 40대 초반이던 ‘페리 오 다이’는 이 코스에 많은 열정을 쏟아 부어 공들였다고 합니다.

이 골프장은 코스 랭킹을 매기는 여러 기관과 단체의 평가에서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순위를 거의 매년 받아 들곤 합니다. 2012년에는 미국의 골프 전문지인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미국 외 세계 100대 골프장’에 포함되기도 했었지요. 이러한 골프 랭킹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코스 자체의 품질’이니, 세계적 수준에 드는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코스’로 평가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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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5 홀인 18번 홀(우정힐스 사진).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코스
2003년부터 이 코스에서는 한국 골프를 대표하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오픈>이 열리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협찬사의 이름을 딴 <코오롱 한국오픈>인데, 이 골프장이 코오롱 그룹의 것이니 사실상 ‘한국오픈’을 거의 떠맡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오픈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한양CC>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2002년 당시 19세이던 스페인의 골프 천재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4라운드 합계 23언더파를 치면서 한양CC 코스를 철저하게 유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회가 이렇게 정복당하자 대한골프협회 명예회장까지 지낸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은 당시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자신이 만든 우정힐스CC로 한국오픈 장소를 옮기게 하면서 ‘대회 코스 난도를 높여라’라고 각별히 주문했다는 군요.

그 결과, 2004년 한국오픈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어니 엘스는 “이렇게 힘들고 거친 코스는 처음이다. PGA 투어 메이저 코스보다 어렵다” 라고 했다지요. 당시 우승 스코어는 2언더파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코스이니 어렵게 세팅 되어야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질 수 있다”고 이 회장은 역설하였고 그것이 우정힐스CC에서 열리는 한국오픈의 ‘대회 세팅 기준’이 되었다 합니다.

‘거룩한 얼’이 감도는 자리
이 골프장은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충절로,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아우내 장터와 <독립기념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목천 나들목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독립기념관, 왼쪽으로 돌면 우정힐스CC이지요. 이 일대는 높은 산이 없고 야트막한 구릉에 싸인 분지 지형이어서 독립기념관을 품은 흑성산(517.7m)이 우뚝해 보입니다. 흑성산은 원래 ‘검은산’이었던 것을 한자로 적어 부른 것이었다는데 산이 검은색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령하고 거룩함을 뜻하는 우리말 ‘검’에서 나온 상서로운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이 코스는 흑성산에서 퍼져 나오는 이 ‘거룩한 기운’을 마주 받는 자리에 있습니다.

‘우정힐스’를 이름으로 풀면 ‘신령한 산 줄기의 황소 능선’ 코스라 하겠습니다. 이런 곳에서 삼일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나고 독립기념관이 들어섰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오픈’이 열리는 골프장이 생긴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코스에서 흑성산을 바라보고 걸으며 느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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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힐스CC 부근 위성사진.


리키 파울러에게 짓밟히다
이동찬 회장은 생전에 “한국오픈을 죽을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 약속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오픈은 어려운 코스에서 열려야 한다”는 그의 뜻 또한 이어져 ‘우승 스코어의 최종합계 점수가 두 자리 수 언더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매년 세팅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1년에 초청선수로 참가한 리키파울러는 4라운드 합계 16언더파로 우승한 바 있지요. 당시 2위 로리 매킬로이가 9언더파였으니 파울러 혼자 이 코스를 짓밟은 셈입니다. 이후 이 코스의 공략법을 선수들이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국내 선수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기 위해 코스 세팅을 좀 더 쉽게 했던 것인지, 2016년에도 16언더파 우승자(이경훈 선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한편, 코스가 본디 까다롭다 보니 대회 기간 날씨와 코스 세팅에 따라 우승 스코어가 최종합계 2언더파(2014년, 김승혁 선수)가 되는 등 상당히 어렵게 플레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실수로 승부가 뒤집히고 역전 우승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요. 2010년 양용은 선수가 노승열 선수에게 10타 차로 뒤지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한 것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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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스에 대하여

토너먼트 급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코스로서의 변별력으로만 보자면 이 골프장은 국내 랭킹 평가 기관이 내는 순위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골프 상급자이거나 전문성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이 코스를 높이 평가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이 골프장은 무엇보다 코스 자체에 중점을 두어 살펴봐야 하는 곳입니다.

“너무 어려우니 벙커를 넣읍시다”
앞에서 적은 것처럼, 이 코스 설계자의 아버지인 피트 다이는 하도 어려운 코스를 많이 만들어서 ‘골프코스의 사디스트’, ‘벙커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대회가 열리는 TPC 소그래스 17번 홀처럼 ‘아일랜드 그린’을 철도 침목으로 경계를 세워 만들어 미스샷을 가혹하게 가려내는 방식은 그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유명합니다. ‘페리 오 다이’ 또한 아버지의 설계 철학과 방식을 본받습니다.

우정힐스의 ‘시그니처 홀’이자 아일랜드 형인 13번 홀은 원래 ‘TPC 소그래스’ 17번 홀처럼 철도 침목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린을 놓치면 공이 바로 물에 빠지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설계를 본 고 이동찬 회장이 “한국 정서가 그렇지 않으니 너무 가혹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여 그린 둘레에 (공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세이빙 벙커’를 만들어 넣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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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아일랜드 홀(우정힐스 사진).


역할이 분명한 연못과 벙커
그린은 언덕 위에 있고 그 주변에 깊은 웅덩이나 벙커를 만들어 놓아, 그린을 놓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곳이 이 코스에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홀에서 연못이나 벙커 등의 위협을 이겨내야만 확실한 보상을 받도록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공략 각도를 설정해 놓은 것이지요. 설계자 다이 가문은 아버지나 아들이나 ‘생각하는 골프’를 표방하고 지향하는 점에서 같은 듯합니다. (설계자에 대한 부분은 코스 설계자에 대한 공부가 깊은 남화영 님의 ‘골프상식백과사전’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코스에는 10개의 연못이 14개의 홀에 넘나들고 있어서 이 연못들을 넘기거나 피해서 공을 보내야 합니다. 또한 78개의 벙커는 저마다 분명한 이유가 있는 자리를 파고 앉아서 제 역할을 합니다. 다이 가문의 상징 같은 핑거 벙커(손가락 모양으로 코스를 따라 길게 난 벙커)와 그린 옆 가파른 언덕 아래 깊은 벙커 등은 경기의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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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구적이고 가장 한국적
한국을 대표하는 토너먼트 코스답게 이 코스에서는 전략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합니다. 매 홀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하고 모든 골프채를 다 사용하며 골퍼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기술 샷을 다채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유리합니다. 긴장감을 늦추어 ‘대강 이쯤’ 하고 치는 샷은 참혹한 결과를 부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풍광을 즐길 여유가 없기 쉽습니다만, 이곳은 골프장이 가져야 할 아름다움을 깊이 갖추고 있습니다. 그 매력은 이곳과 비슷한 최상위 등급의 ‘초명문 골프장’들에서 느껴지는 ‘럭셔리 함’과는 색깔이 다르지요. 요즘 인기 높은 신규 명문 코스들이 저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서 골퍼들의 눈을 잡아 끌고 있는데 견주어, 이곳은 서구적인 (도전적)코스 특성이 훨씬 강하면서도 한국적인 자연미를 오히려 더 추구해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코스는 서구적(세계적)이고 아름다움은 한국적”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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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골프 실력과 아름다운 자기 연출이 으뜸인 우리나라 여성 골퍼들을 존중하는 뜻에서인지, 이 골프 코스의 여성용 티잉 구역 위치에 대한 배려 또한 으뜸입니다. 여성 골퍼들이 특히 더 좋아하는 골프장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이야기가 깃든 홀들

흑성산을 바라보는 3번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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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홀.


우정힐스CC의 모든 홀에는 별칭이 있습니다. 1번 홀은 워밍업(Warming Up), 2번 홀은 호수계곡(Lake Valley)인데, 3번 홀은 나바론(NAVARON)입니다. 467야드(레귤러 티 359야드) 길이의 도그렉 형 파4 홀이지요. 오르막 티샷을 (오른쪽으로 휘어지는)페이드로 쳐서 오른쪽 벙커를 넘기는 것이 유리하며, 그린 오른편에 있는 위협적인 연못을 피해 (되도록 페이드샷으로) 그린 공략 어프로치를 해야 합니다. 핸디캡 순위 1번의 어려운 홀이라 ‘나바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레고리펙과 안소니퀸이 나온 옛날 영국 영화 ‘나바론 요새(1961년작)’에서 따온 이름인 듯합니다. 난공불락으로 어려운 홀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홀에서는 티샷과 그린 공략을 할 때 흑성산 봉우리를 정면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흑성산이 내려다 보는 기운이 이 홀의 공략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잊혀져 간 ‘나바론’ 말고 이 흑성산(검은산)이 들어간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면 이 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낭패보다는, 이 산의 거룩한 기운만을 기억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기술적인 7, 8, 아슬아슬 9번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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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홀.


몇 년 전 한국오픈 갤러리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관람했을 때, 선수들이 9번 홀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오른쪽은 깊은 러프의 비탈이고 왼쪽은 오비(아웃오브바운즈)구역인데 페어웨이는 오르막으로 좁고 한쪽으로 기울어 평탄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샷 자세가 불편해지기 쉬운 홀이지요. 아이언 어프로치 샷이 왼쪽으로 휘는 구질이 나오기 쉬운 지형인데, 그린 왼편은 급한 경사 밑의 깊은 벙커라 위협적입니다. 끝까지 오르막이라 402야드(레귤러 티 358야드)로 표기된 것보다 훨씬 길게 느껴집니다.

이 홀에서는 한국오픈 참가 선수들도 보기 이상 스코어를 많이 내더군요. 매 샷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아서 선수들도 아슬아슬해 했습니다. 이 글 머리에서 말했던 저를 담당한 캐디는 “전 여기가 핸디캡 1번 홀인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이 홀의 별칭은 SAND LEDGE(모래 선반)인데, 저는 그냥 ‘아슬아슬 힐’이라 기억합니다.

물론, 전반 7,8,9번 홀 모두가 사실은 아슬아슬합니다. 7번 홀(AMEN)은 페이드 샷이 유리한 (연못을 낀) 파3 홀이고, 8번 홀(AVARICE/욕심)은 홀 이름대로 욕심을 내서 (왼쪽으로 휘는)드로우 티샷으로 연못을 넘기거나 따라 돌게 치면 2온에 도전할 듯한데, 안전하게 페이드 샷을 하는 전략 선택도 마련된 파5 홀이지요. 이 세 홀 모두 선택과 도전이 있는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승부의 변곡점 역할을 합니다.

대회 때는 파4인 11번 파5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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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홀 두번째 샷 지점.


11번 홀은 아마추어도 200미터 이상 티샷을 보내면 ‘2 온 시도’를 노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짧아서 가장 쉬운 파5홀이지만, 한국오픈 대회 때는 파4로 운영되기에 가장 어렵게 변합니다. 그린 앞까지 길게 이어진 왼쪽의 연못을 피해서 쳐야 하는데, 티샷을 길게 치는 것도 중요하고 두 번째 샷에서 내리막에 공이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홀의 이름은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라기 보다는 ‘하느냐 마느냐’라는 게 맞겠지요. 보통 때에는 전장이 짧은 대신 작은 변수들이 많아서, ‘버디’를 노리다가 ‘보기’하기 쉬운 홀이지요. 파4로 운영되는 한국오픈에서는 오히려 너무 어려워서 승부의 변수가 많이 생기는 홀이기도 합니다.

사연 많고 아름다운 13번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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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홀(우정힐스 사진).


13번 파3 홀은 우정힐스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홀’입니다. ‘한국 최초 아일랜드 그린’이라는 기록도 있는 홀이지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설계자가 ‘TPC소그래스’ 17번 홀처럼 철도 침목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린을 놓치면 공이 바로 물에 빠지도록 설계했는데, 의뢰자인 이동찬 회장이 “너무 가혹하니 그린 둘레에 벙커를 만들자”고 하였다는 홀입니다.

설계자의 양보를 받아 볼의 낙하 지점을 넓히고 덜 가혹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이 홀에서는 참혹한 사연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대개는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바람이 변수가 되기도 해서 매년 만 오천 개 이상의 공이 연못에 빠진다고 하지요. 한 조에 한 명 정도는 물에 빠뜨리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홀의 별칭은 ‘SPLASH(풍덩)’입니다.

2009년 한국오픈에서 당시 일본 최고의 골프스타이던 이시카와 료 선수가 이 홀에서 1,2,3라운드 모두 200미터 정도 되는 5번 아이언 티샷을 물에 빠뜨렸었지요. ‘독립기념관의 항일 기운이 일본 최고 스타를 응징했다’는 투의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언론기사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이 홀은 이시카와 료와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사람들도 아름다운 풍경과 이시카와 료의 사연을 기억에 안고 돌아가는 듯합니다.

16, 17, 18…… ‘씰 코너’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미국 오거스타내셔널 코스에 ‘아멘코너’가 있는 것처럼, 한국오픈이 열리는 우정힐스에는 ‘씰(SEAL)코너’ 라는 긴장감 넘치는 구간이 있습니다. 13번 홀에서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하여 다소 쉬운 14, 15번 홀에서는 버디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고조됩니다. 16번 홀부터 마지막 세 개 홀은 파를 지키기도 쉽지 않은 홀이기 때문이지요.

하늘에서 보면 바다표범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연장전에 들어가면 이 세 개 홀의 합산 점수로 우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한국오픈에서는 13번 홀과 이 ‘씰 코너’ 3개 홀이 가장 드라마틱한 구간으로 평가됩니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코스 가운데서도 가장 변별력이 높은 홀들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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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픈 대회 때 18번 홀(우정힐스 사진).


16번 홀은 유일하게 연못이 없는 파 3홀이지만 248야드(레귤러 티 176야드)로 가장 깁니다. 그린 오른쪽 3개의 벙커를 피해서 쳐야 하는 홀인데 그린 굴곡도 커서 퍼팅 또한 어렵지요 이 홀의 별칭은 아름다움의 여신인 ‘VENUS’입니다. 굴곡이 아름답다는 의미라 합니다.
17번 홀은 488야드(레귤러 티 375야드)로 가장 긴 홀인데, 페어웨이가 좁고 그린 뒷편이 내리막이고 오비구역이라 조심스러운 그린 공략이 필요합니다. “골프의 대원칙인 ‘파(Far) 앤드 슈어(Sure)’를 시험하는 홀”이라고 하네요. 이 홀의 별칭은 ‘노 머시(No Mercy)’, 무자비한 홀입니다.
18번 홀은 파 5홀이지만 프로선수들도 ‘2 온’을 노리기 쉽지 않습니다. 영웅적인 플레이를 부르는 홀이지만 그린 앞에 연못이 깊게 파고들어와 있고 그린이 가로로 길어서 그린 우측으로 공을 보내서 세 번째 어프로치 샷으로 버디를 노리는 것이 정석적인 플레이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도전에 따라 1, 2타 차 승부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이 홀의 별칭은 ‘스타디움(STADIUM)’입니다. 그린을 둘러싼 잔디 비탈이 마치 스타디움의 관람석 같아서 대회 때에는 관람객들이 이곳에 앉아 마지막 홀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세계적인 토너먼트 코스 18번 홀들에는 이런 모양이 많지요.

이 세 홀은, ‘씰 코너’라는 이름이 그다지 정서적인 상상과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것 말고는, 참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한 구간이라고 생각합니다.

4. 조경, 관리, 시설 등

“사쿠라는 안됩니다”
독립기념관이 문을 연 뒤 6년 뒤인 1993년에 우정힐스CC는 문을 열었습니다.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할 때여서 이곳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하니 “순국선열의 혼을 모신 맞은 편에 골프장 놀이터가 웬 말이냐”는 여론이 일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 당국이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골프장 건설 허가를 내주면서 ‘왜색(倭色)은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하지요. 코스 안에 일본의 상징으로 비쳐지는 벚꽃을 심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우정힐스CC에는 벚나무가 없습니다. “전국 골프장 중 벚꽃이 피지 않는 곳은 우정힐스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다만 2번 홀에 있는 오래된 벚나무는 원래 있던 것이라 보존했다고 합니다.

‘황소 등줄기 같은 한국미’
고 이동찬 회장은 예쁜 꽃이 피는 유실수를 좋아했고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골프장에 쓸만한 좋은 나무는 전부 안양CC가 가져다 심어 놓았다”며 아쉬워했다는 군요. 우정힐스CC에는 안양CC만큼 기묘한 나무들이 많지는 않지만 희귀한 다박송 교목들이 간간이 얼굴을 보임은 물론 자목련, 백목련, 백일홍, 영산홍 등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관목들이 곳곳에 있어 철마다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 한 편 이곳 조경의 매력은 이러한 인위적인 것들보다는 코스 자체가 들어앉은 자연스러운 자연 풍광의 조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 산은 얕아서 초가지붕의 물결 같고 흑성산 부근의 가까운 구릉들은 황소 등줄기처럼 편안하고 완만하지요. 가장 한국적인 풍치가 이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초가집과 전통한옥들보다 ‘양옥집’이 더 예뻐 보였던 시대가 있었지만 안목이 열릴수록 한국 고유의 것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정힐스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더 값지게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 때가 곧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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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코스의 페어웨이 잔디는 삼덕 중지라는 품종이며 러프는 ‘야지’라고 불리는 들잔디(조이시아 그래스)입니다. 삼덕 중지는 안양 중지 비슷한 품종인데 잎 넓이가 좁은 양잔디와 넓직한 들잔디의 중간 넓이라 하여 ‘중지’라 한답니다. 안양 중지는 안양CC 잔디연구소가 개발한 상표이고 삼덕 중지 또한 상표인데 전문가들도 모양만 보고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하다고 하지요. (안양 중지는 가을에 붉게 ‘잔디 단풍’이 들어서 구분된다고 합니다)

페어웨이 잔디는 보통 때 20밀리미터 정도로 깎다가 한국오픈 대회 때는 18밀리미터로 다소 짧게 관리하며 세미러프는 80밀리미터, 일반러프는 100밀리미터 이상으로 관리한다는데 한국오픈 때는 선수들이 러프에 공을 빠뜨리면 0.5~0.8타 정도 타수를 잃도록 하는 것이 관리 기준이라고 합니다.
그린 스피드는 보통 때는 스팀프 미터 계측 기준으로 3.0 미터, 한국오픈 대회 때는 3.5미터이상으로 관리한다는 군요.

고 이동찬 회장은 우정힐스CC 문을 열면서 “명문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는데 그 유지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겠습니다.

친환경 골프장의 의지
페리 오 다이의 설계철학 가운데 기본이 되는 덕목이 “자연 그대로”라 합니다. 자연 지형과 생태계를 되도록이면 그대로 보존하여 코스를 조성하고 관리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정힐스는 그래서 친환경 골프장을 선정하는 언론사의 발표에서 매번 최상위 등급에 오르곤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친환경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평상시에 하는 기준이 친환경이라는 것입니다. 물고기들이 살기 좋게 만드는 수질 관리를 비롯해서, 흙 속 미생물을 이용한 생태 존중 코스 관리, 저탄소, 저독성 저농약 관리, 코스 내 자연 동물 서식 관리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학농약 사용률 ‘제로’를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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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홀 티잉구역의 조형작품.


예술작품들과 연습장
코스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랄 만한 이 골프장에는 값이 높이 매겨지는 물건들도 적지 않습니다. 클럽하우스 스타트 광장에 놓인 커다란 개 모양의 조형물은 인기가 높아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은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의 작품이라더군요. 이런 것들이 골프장 곳곳에 꽤 많습니다. 특히 6번 홀 티잉 구역 옆에 설치된 서양 남자와 일본 여자 이름을 단 철물 조형작품은 이 골프장의 지형 앉음새와 함께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한편 더 반갑게 눈에 띄는 것은 스타트 광장 앞의 드라이빙 레인지와 벙커 연습장 등 연습시설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오픈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이니 이런 연습 시설이 예술작품보다 값져 보입니다. 타석이 10개인데 대형 토너먼트가 열리는 곳이니 시설이 좀더 확충되면 더욱 좋겠다 싶습니다.

▶덧붙임 - ‘언더파’가 안 나오는 ‘괴물 코스’
고 이동찬 회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코스이니 어렵게 세팅 되어야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질 수 있다” 하며 “한국오픈 코스 난도를 최고로 높여라” 했다는 것은 미래를 통찰한 탁월한 혜안의 발로였다 생각됩니다.

우정힐스가 ‘웨스턴스타일’을 표방하며 문을 연 뒤로 국내의 많은 골프장들이 서양의 유명 코스 디자이너들을 초빙하여 세계적인 흐름에 맞는 골프코스를 열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코스 설계가들도 세계의 흐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찬 회장의 코오롱에서 지원을 받거나 우정힐스에서 실력을 쌓은 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도 오늘의 한국 골프를 만들어 낸 중요한 과정들이었지요.

그런 한편 “한국오픈 코스 난도를 높여라”는 말은 바로 지금 한국 골프와 우정힐스가 더욱 되새겨 듣고 재해석해서 받아들여야 할 선인의 유지(遺志)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오지랖 넓은 단견이겠으나 한국 골프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고 이 골프장의 앞날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한국여자 프로골프의 경우 어렵게 세팅된 어려운 코스에서 치르는 한화클래식 등을 경험하며 기량이 높아진 국내 스타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스타로 떠오르는 선순환 궤도에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더 연습량이 많은 무서운 신인들이 매년 화수분처럼 배출되고 있지요. 그런 반면 한국 남자 프로골프는 그와는 다른 순환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인기는 떨어지고 스타는 드물어 대회 수는 늘지 않으며, 대회를 치르는 골프장들은 수준 미달이거나 대회 세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코스입니다. 그런 곳에서 토너먼트를 치르는 선수들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최경주 선수 등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일어섰던 옛날처럼 선수들에게 “독기 품고 노력 해라” 할 수도 없는 시대이지요.

이러한 때에 가장 현실적인 역할과 대안은 골프장에서 나옵니다. <한국오픈> 만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골프장”에서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최경주 선수가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이미 정상급에 근접하지만 어려운 코스에서 자꾸 쳐 봐야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고 한 바도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로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골프장은 몇 개 되지 않고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오픈’이라는 국가 명칭 대회가 열리는 우정힐스CC입니다.

(여기부터는 상상의 이야기이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말하자면 이 골프장에서 “신검을 뽑는 절대 영웅”이 나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 판타지 영화의 스토리 식으로 말하자면. 절대 신력의 신궁처럼 먼 과녁에 적중하는 티샷을 칠 수 있으며 마법의 숲 같은 러프에서도 천년의 신검 같은 아이언으로 쏘아 올려 그린 복판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영웅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영웅은 ‘절대적인 괴물’이 먼저 나와서 불러내야 비로소 나오는 것이지요.

골프에서 그 괴물은 ‘언더파가 나오지 않는 골프장’입니다. 한국오픈의 우정힐스는 그렇게 ‘악명 높은 절대 코스’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에 아플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이지요. 그 '악명'이 만방에 퍼지면, 영웅들은 모여들고 그 가운데 인연이 있는 ‘절대 영웅’이 기어이 나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웅과 괴물이 함께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가 탄생합니다. 인연이 없으면 아무도 뽑지 못하는 엑스컬리버 신검이 박힌 바위처럼, ‘절대 영웅을 기다리는 코스’ - ‘흑성산의 거룩한 절대 코스’가 준비되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이 코스를 세운 선인의 유지를 지금에 맞게 받드는 일이기도 하며 한국 남자 골프의 앞날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보약 같은 극약처방”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우정힐스CC가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으로 회원들의 긍지를 높이고 독보적인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하여, 정제되지 않은 의견과 언어로 사족(蛇足)을 달아 덧붙입니다.

글과 사진 류석무 / 골프 스토리라이터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이나 지적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컨텐츠는 계절마다 업데이트하여 수정 발행될 예정이며 책으로도 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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