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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프장의 발견]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한국 골프장의 발견’ 시리즈는 우리나라 골프 문화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골프장 탐사 작업입니다. 단편적인 기사 형식을 넘어 실제 이용한 뒤의 후기, 인문적 모색을 통한 글쓰기와 시각적 제작(사진, 영상)을 통합하여 한국 골프코스들의 속살을 섬세히 들여다보는 탐사 길을 걷습니다. 이 컨텐츠는 대상 골프장의 협찬 없는 직접 경험을 통해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게재 후에도 지속 업데이트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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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케이프오너스 석양 무렵.


코발트빛 바다와 드나듦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 남해에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South Cape Owners Club)이 있습니다. 천혜의 입지에 앉혀진 극도로 아름다운 코스에서의 골프를 즐길 곳이 한국에도 있지요. 여기가 세계 최고의 코스정보 사이트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가 선정한 세계 100대 코스 중 90위이자 아시아 100대 코스 중 3위, 한국 40대 코스 중 1위에 올라 있는 골프장입니다.

서울에서 길을 나서면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 반 정도면 골프장에 도착합니다(요즘에는 골프장이 잠실이나 만남의 광장에서 가는 1박2일 셔틀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천공항을 지나 삼천포대교, 늑도대교와 창선 삼천포대교 3개 다리를 지나는 길은 ‘한국의 드라이브 하기 좋은 길’로 첫손 꼽히는 명소지요. 그 길을 지나서 잔잔한 해안 도로를 따라 가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골프장의 주변을 먼저 살펴볼까요. ‘한산도와 여수 인근 도서(島嶼)를 이었다’고 이름 붙여진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바다와 육지의 풍광이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절경입니다. 한반도 중에서도 얕은 갯벌이 길게 펼쳐진 서해나 바다로 조금만 나가도 심해와 만나는 동해와는 달리, 이곳은 다도해의 아기자기함이 공존하죠. 통영, 여수, 남해가 모두 우리나라 대표 미항(美港)입니다. 창선 삼천포대교에 들어서서 보이는 땅끝이 골프장이 들어선 곳이죠.

입소문으로는 CJ그룹에서 헬기를 타고 돌면서 하늘에서 코스 부지를 정했다고 합니다. 골프장을 앉히기에는 한국 최고의 입지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에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CJ그룹에서는 땅값이 다시 내리기를 숨죽여 기다리던 중 한섬의 정재봉 회장이 덜컥 계약을 해서 CJ그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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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봉 사우스케이프오너스 회장.


패션 거장의 또 다른 열정
이 골프장을 알려면 우선 정재봉 한섬피앤디 회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골프장이 개장하던 2013년 11월1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바닷가 언덕이지만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고 달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클럽하우스 중정(中庭)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개장 기념문을 읽는, 고희(古稀)를 넘긴 정재봉 회장의 목소리엔 떨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산과 바다가 어울린 이곳의 자연 환경을 보고는 마치 물속에 비친 달의 모습에 반해 그 물로 뛰어들었다는 이태백 시인의 심정으로 골프 리조트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중략)”

그의 비유는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예술가의 심미성, 그리고 목표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사업가의 열정이었죠. 클럽하우스를 짓는 데만 700억원, 골프장과 호텔 등 숙박시설을 합쳐 총 4000여 억원의 사재를 털어넣었다고 하니 이 리조트를 위해 그는 확실하게 올인한 것입니다.

그는 국내 패션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타임(TIME), 시스템(SYSTEM), 마인 (MINE), 랑방(LANVIN), 발렌시아(BALENCIA) 등 숱한 국산 ‘패션(fassion)’ 브랜드를 키워냈죠. 그에게 남해 장천의 골프장 부지는 또 다른 ‘열정(Passion)’을 자극했나 봅니다. 그는 저와 다음날 가진 인터뷰에서 털어놨습니다. “이 정도 자연 환경이면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치 좋은 곳에 리조트를 만들어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정 회장이 골프 라운드에 목매는 골프광은 아닙니다. 구력은 30년이 되지만, 보기 플레이어이고 골프 스코어보다는 자연과 어울린 좋은 풍경과 경치에 반하는 골프 애호가에 가깝죠. 남해에 힐튼리조트가 생기자 가장 먼저 회원권을 구입할 정도로 바다를 낀 리조트를 특히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는 뉴질랜드 네이피어의 해안 절벽에 조성된 세계 100대 코스 케이프키드내퍼스(Cape kidnappers), 뉴질랜드 북섬의 카우리클리프스(Kauri Cliffs)를 체험하고 국내에도 이같은 골프 리조트를 짓고 싶었다고 합니다. 천혜의 자연에 인생의 골프장을 공들여 만드는 것도 패션업에 평생을 바친 이의 열정이었겠죠.

정회장은 최고의 자연이란 소재에 최고의 코스 설계가와 건축가를 불러모아 온 정열을 쏟아부어 사우스케이프를 엮어냈습니다. 시인같은 감수성과 사업가의 투지가 어울린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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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설계자 카일 필립스가 개장식에 초대되어 포즈를 취했다.


링크스와 마운틴 스타일의 혼합
코스 설계가인 카일 필립스는 스코틀랜드의 킹스반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야스링크스 등을 설계한 링크스 스타일 코스의 권위자입니다. 골프장 개장식에 초대된 그는 한국에서 사우스케이프를 만든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또한 설계 과정에서 정 회장의 아낌없는 후원과 지원, 그리고 개장식까지 초청한 배려에 감사해했죠.

“골프장 부지는 세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절경이었다. 링크스 지형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마운틴과 링크스, 그리고 시사이드가 합쳐진 코스다.” 2008년 부지를 살펴본 뒤로 루트플랜을 고민한 끝에 그는 ‘환상(Illusion)’의 개념을 코스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후반 11번 홀부터 16번 홀까지 바다를 향해 파도가 여러 겹 물결치듯 내닫는 느낌이 들도록 했죠. 그러면서 ‘다음 홀은 어떻게 펼쳐질까?’가 궁금해지는 환상의 요소를 홀마다 적용했다고 합니다.

“아웃 코스는 마운틴 스타일, 바다를 면하는 인 코스는 링크스 느낌을 최대한 시도했고, 암반이 있는 시사이드 홀(5번)에서는 암반의 특징을 살리는 홀 레이아웃이 나왔다. 골프장이 리조트인만큼 어려운 챔피언십 세팅보다는 곳곳에 스코어를 지키는 요소를 넣었다. 따라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티 샷 후에 짧은 범프&런 샷을 할 때(13번)도 있고, 계곡을 넘기는 과감한 공격이 필요할 때(15번)도 있다. 14번 홀은 페블비치 7번 홀처럼 짧지만 만만찮은 파3 홀이다. 16번 홀에선 사이프러스포인트의 16번 홀이 떠오를 것이다.”

사우스케이프오너스의 지형은 독특합니다. 특히 남해 리아스식 해안은 유럽의 링크스 지형과도 많이 다릅니다. 원형보존지로 남겨진 장군산은 절벽 위로 솟아 있죠. 링크스 설계 전문가가 링크스를 고집하지 않은 점, 그리고 한국적 토양을 활용한 점이 절묘하게 조응해 바다와 산이 어울린, 사우스케이프만의 탁월함이 탄생했지요.

카일 필립스는 각 홀마다 주어진 환경을 이용한 걸작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18홀 중에 바다가 조망되는 홀이 11개이고, 바다를 따라 흐르는 홀이 6개에, 바다를 건너 쳐야 하는 홀이 4개입니다. 바다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한려해상공원의 중심이니 그 풍광이 얼마나 찬란한가요.

하지만, 국내 설계가 송호 씨는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한국 최고의 풍광과 부지는 맞다. 하지만 루프 플랜이 아쉽다. 6번, 16번 등 바다에 면한 홀들에서 티샷할 때 모두 바다를 등지고 있다. 하지만 페블비치나 사이프러스포인트와 비교하자면 이들은 바다를 향해 서는 모습이다. 현재의 반대 방향으로 홀이 흘렀으면 그보다 더 좋은 흐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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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홀 그린에서 바라본 코스와 주변 전경.


골프가 주는 자연의 서사시
설계가가 창조해낸 이 코스는 3막을 가진 한 편의 영웅 서사시의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내해(內海)처럼 잔잔한 물이 찰랑대는 내리막 1번 홀로 시작하죠. 이 홀에서는 홀아웃을 마치고 꼭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린 뒤로 펼쳐진 수평선은 진정한 한 폭의 그림이니까요.

2번 홀로 들어서면 장면이 확 바뀝니다. 마치 고요한 호수 속에 들어온 듯하죠. 언제 바다가 있었나 싶게, 주위에선 끊임없이 새가 지저귀는 평온함을 느끼게 되죠. 호수에서는 오리 가족이 둥지를 틀었고요. 대체로 영웅 서사극의 도입부는 이런 장엄함과 고요함의 혼재에서 시작되지요?

무난한 3,4홀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는 내리막 파5 5번 홀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갑니다. 그린은 계곡 너머 바다를 배경으로 떠 있죠. 그 옆으로는 큰 바위 암반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린 옆으로 선셋(Sunset)이라 이름 붙여진 그늘집입니다. 낙조를 감상하라고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죠. 방위상 정서(正西)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6번 홀은 긴 파3 홀로 바다를 가로질러야 하는 시험장이니 서사시 1막의 마무리로는 최고입니다. 저 멀리 앞바다에는 김양식장이 펼쳐집니다. 고요함 속에서 가끔씩 나는 티샷 소리, 그리고 뒤이은 단말마의 비명들. 그렇게 1막이 끝납니다.

서사시 2막에 해당하는 7~11번 홀은 영웅이 되기 위한 수련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쉬워 보이지만 착시가 있어 슬라이스를 유혹하는 7번 홀, 절벽을 건너 치는 배짱과 힘을 요구하는 8번 홀, 전장이 길고 핸디캡이 가장 높은 9번 홀, 하늘과 잇닿은 듯 스카이라인이 과감한 그린 공략의 정확성을 시험하는 10번 홀, 짧지만 정교한 코스 매니지먼트를 발휘해야 하는 도그레그 11번 홀은 골퍼의 기량과 실력을 다양하게 테스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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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치는 느낌으로 연속해서 흘러가는 12, 13번 홀.


12번부터 16번 홀까지 5개 홀은 코스의 클라이막스이자 서사극의 절정입니다. 바다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자연이 주는 경외감에 빠지죠. 12번 홀에 올라서면 너울치듯 먼 바다를 향해 홀들이 뻗어나갑니다. 12번 홀은 호쾌한 내리막 홀이고, 13번 홀은 짧지만 모상개해수욕장 옆으로 페어웨이가 그린까지 올라가는 형태죠.

14번 홀은 129미터(블랙 티 기준)의 내리막 파3 홀인데 마치 미국의 페블비치 7번 홀처럼 바다를 향해서 샷을 합니다. 어쩌면 그린 주변만 볼록한 곶이 생겨났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린 옆으로 살짝만 벗어나도 30미터 아래 파도가 철썩대는 바다에 빠집니다.

15번(파4) 홀은 직각으로 휘어지는 왼쪽 도그레그 홀로 티 샷의 부담이 만만찮습니다. 그린 뒤로는 세모 끝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그늘집 선라이즈(Sunrise)가 있습니다. 위도상으로 정동(正東)을 향하는 지점에 세모 끝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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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반 위에 덩그러니 그린이 놓인 16번 홀.


파3 16번 홀이 이 골프장의 백미죠. 블랙 티에서 179미터인데 바다를 건너 반도형 그린을 공략하는 홀입니다. 전 세계에서 심미성으로는 최고로 꼽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이프러스포인트가 연상됩니다. 사방으로 회색빛의 암반이 있고 그 위에 덩그러니 그린만 놓여 있습니다. 주변으로는 온통 시퍼런 바다일 뿐이죠. 17번 홀에서 지나온 홀들의 여운을 추스르고 마지막 18번 홀은 왼쪽 옆으로 역시 바다를 조망하면서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파5 홀입니다. 서사시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신전같은 클럽하우스와 건축물
탁월한 골프 코스라면 한 사람만의 역량 만으론 불가능합니다. 천혜의 부지라는 자연 환경에 코스가 놓이면 그걸 떠받치는 건 인공 건축물이죠. 사우스케이프 개장식에는 정재봉 회장이 초청한 코스 설계가 카일 필립스 가족을 비롯해, 클럽하우스와 호텔 리니어스위스 설계가인 조민석, 조병수 씨가 참석했고 축사도 했습니다. 지역 명망가나 정치인의 흔한 축사 없이 설계가와 건축가만이 부각된 건 여느 골프장 개장식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프장 입구에 접어들면 골프 티처럼 보이는 조각물이 있는데 그건 클럽하우스의 원래 실물모형(mockup)이었습니다. 완벽한 최고의 골프 명소를 남기고 싶었던 정 회장은 2년을 고민하던 끝에 그걸 허물고 완전히 새로 설계하도록 주문했고, 결국 당시의 목업은 그곳에 기념물처럼 남았습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서면 나오는 아이보리톤의 클럽하우스는 그렇게 두 번째 작업 끝에 탄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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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묘한 클럽하우스 중정.


골프장의 가장 높은 부지에 자리해 남해 앞바다를 조망하는 풍광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습니다. 건축가는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입니다. 지난 2007년 신사동에 한섬이 운영하는 패션 플래그숍 ‘앤드뮐미스터’를 건축했고, 해이리에 ‘딸기가좋아’, 강화도에 ‘옥토끼우주센터’, 강남역에 ‘부티크모나코’ 등 독창적이고 튀는 작품으로 주목받는 건축가죠. 지난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그는 “골프장 클럽하우스 설계는 이것 하나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창조한 클럽하우스는 제가 보기엔 그리스 아테네 남쪽 수리온곶 절벽 위에 서 있는 기원전 5세기 유적인 포세이돈 신전이 연상됩니다. 입구에 서면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하나로 통일되는 느낌이죠. 아이보리톤의 트래버틴 대리석 기둥, 곡선으로 말려진 캐노피가 신전의 느낌을 더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네모 틀을 가진 건물로 가운데는 중정처럼 뚫었습니다. 리셉션 공간은 건물 안쪽으로 숨겨 가운데가 광장이나 극장의 효과가 나는 점도 신전을 연상시키는 요소입니다.

클럽하우스 뒤 암각동산을 따라 길게 늘어선 7성급 리조트인 리니어스위트는 땅의 원리에 밝은 조병수 교수가 건축했습니다. 리니어스위트는 일반적인 골프텔의 개념이 아니라, 제주도 핀크스의 포도호텔과 같은 소수를 위한 럭셔리 부티크 빌라죠.

미국, 캐나다 등에서 활동하는 조병수 씨는 화천의 ‘이외수집필실’, 헤이리의 ‘카메라타’, 양평 ‘땅집’ 등 건축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을 다수 남겼습니다. 그는 건물의 외형이 두드러지지 않고 조응하도록 했습니다. 소재도 외부에는 노출 콘크리트를 썼고, 내부는 원목을 중심으로 했으며 조명은 간접 조명이 은은하게 밑에서 비추도록 조성했습니다.

하버드대학원을 나오고 AIA건축상을 받은 조병수 씨의 설명입니다. “이곳은 햇살이 다른 곳보다 강했다. 따라서 햇살을 최대한 막아주면서 바다를 많이 조망하는 방법을 썼다. 베란다가 깊어졌고, 그늘을 많이 확보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온도가 내려가는 효과를 본다. 건물이 2층으로 높지 않으면서 두부를 덩이째 툭툭 썰어놓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특히 막힘과 트임의 기능을 신경 썼다. 어디서든 바람이 들어오고 또 흘러나간다. 몇발짝 걸으면 보이던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장면이 열린다.” 건축가는 자연 암반과 바다를 살리고 건물은 최소한으로 가져가려 했습니다. 그의 건축 철학인 ‘건물은 최소한, 경험은 최대한’이 여기서도 실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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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는 내내 바다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사우스케이프오너스 전경.


궁극의 힐링 추구하는 골프장
세계 최고의 설계가가 참여한 코스에 최고의 건축가가 만든 클럽하우스 등으로 하드웨어를 만들어낸 뒤로 정 회장의 임무는 운영이었습니다. 조성 비용 자체가 보통 골프장의 두세 배가 든 만큼 ‘이런 골프장 운영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는 이 골프장을 체험한 이들의 공통적인 의문입니다.

정 회장은 애초 회원제이던 이 골프장을 퍼블릭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페블비치처럼 해외에서 골프의 명소를 찾는 골퍼들이 찾을 만한 요소를 만들려했죠. 그래서 ‘궁극의 힐링(Ultimate Healing)’이란 골프장의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정 회장은 골프장의 운영 컨셉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섯 가지의 힐링이 가능하다. 첫째, 해안선을 끼고 도는 멋진 코스에서 라운드로 힐링이 된다. 둘째는 스파와 요가, 음악 감상실을 갖춘 정적인 힐링이 된다. 음악 감상실을 골프 리조트에 갖춘 곳은 세계 최초다. 셋째는 동적인 힐링이다. 13번 홀 밑으로 해수욕장이 있다. 18번 홀 그린 밑으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3시간 거리의 ‘숨어있는 또 하나의 18홀’이다. 넷째는 심미적인 힐링이다. 건축물이 주는 예술적인 힐링이다. 건축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실내 인테리어 하나까지 세밀하게 공들였다. 소품까지 예술작품이다. 마지막으로는 음식 힐링이다. 남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이 좋아 신선한 식재료와 해산물이 풍성하다. 3년 전부터 준비한 헬스 푸드가 힐링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골프장은 티오프 간격을 10분으로 잡고, 원웨이로만 운영합니다. 잔디는 전부 서양 잔디죠. 그린은 벤트그라스, 페어웨이는 캔터키블루그라스에 러프는 페스큐를 심었고 법면으로는 금계국 등 야생화가 우거지며 군데군데 제주도산 팽나무를 심었습니다. 원래 있던 수목 8천 그루를 자리를 옮겼고, 외부에서 들여온 수목도 3500여 그루나 됩니다. 특히 파3 홀은 코스의 경관을 차별화하기 위해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제주산 팽나무를 위주로 식재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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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비치 7번 홀이 연상되는 14번 홀.


비싼 그린피의 딜레마
퍼블릭이지만 골프장 그린피가 무지무지 비쌉니다. 주중에 골프패키지를 이용하려면 2월의 경우 1박2일로 룸의 종류에 따라 1인당 최저 63만원에서 79만원까지 나옵니다. 주말(토-일)을 이용하려면 81만원에서 114만원까지 책정되어 있죠. 여기엔 리니어스위트의 하루 숙박과 조식, 석식 1회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이 금액은 골프 시즌이나 성수기가 되면 더 올라갑니다.

그린피만 보면 주중 그린피는 겨울 할인가가 적용되면 20만원대, 주말은 37만원까지 올라갑니다. 수도권 퍼블릭의 조조할인 4인 그린피가 여기서는 1인 그린피에 맞먹는 셈이죠. 그리고 적어도 3명 이상이 라운드를 해야 부킹할 수 있습니다. 제 지인은 개장 초창기에 혼자서 3명 그린피를 내고 라운드해봤다고 하네요.

하지만 ‘궁극의 힐링’을 지향한 이상 이 골프장에서 1,2인도 이용할 수 있고 이때의 그린피는 ‘한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3인 이상을 내야 한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궁극적인 힐링을 위해 3~4명을 맞추기 보다는 오히려 한 두 명이 와서 조용히 힐링하고 가는 골프장이 더 멋있어 보입니다. 이것 역시 골프장의 매출에는 손해가 나겠지만 이 골프장이 가져가야 할 중요한 미래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그린피가 비싸다고 골프장이 떼돈을 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내장객이 원체 적기 때문에 적자일 겁니다. 비싼 그린피의 좋은 코스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관리비가 만만찮죠. 많은 이들은 ‘퍼블릭으로 조성해 세금 혜택은 받으면서 그린피를 높게 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느 퍼블릭과 비슷한 그린피를 받았다가는 코스 관리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골퍼들이 몰리면 코스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평범한 코스가 되는 것이죠. 이 골프장은 ‘가보고 싶은 좋은 코스’이면서 수익도 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피를 비싸게 받아 코스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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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골퍼들의 로망으로 여겨지는 미국 페블비치는 500달러를 받고 비싼 리조트에 숙박해야만 부킹이 가능한 퍼블릭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골퍼가 몰려들며,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합니다. 하지만 올해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명소인데다가 수없이 유명한 대회를 개최한 역사가 있어서 찾아올 골퍼들이 무한정 많죠.

저는 퍼블릭으로 조성해 누구나 돈을 내고 라운드할 수 있게 한 건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국내에 클럽나인브릿지, 송도 잭니클라우스, 우정힐스, 트리니티, 웰링턴, 휘슬링락, 안양컨트리클럽 등은 좋은 코스들이고 코스 순위도 높아 외국 골퍼들도 궁금해하는 코스지만 프라이빗 원칙이 강해서 회원권을 사거나 초청받지 않는 한 가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들과 차별되어 외국 골퍼들이 찾아오는 골프장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입니다.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품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방식이죠. 명품은 누구나 살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가 구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장의 마케팅과 매출 증대를 이유로 그린피를 낮추는 건 이 골프장이 미래에도 오래 명품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죠.

좋은 뉴스는 지난해 호주의 골프작가 대니얼 팔론이 지난해 <세계 50대 골프리조트>를 쓰면서 이곳도 다뤘다는 겁니다. 정재봉 회장의 열정과 과감한 투자로 시작된 이곳이 서서히 세계에서 평가받는 것이죠. 사우스케이프오너스도 페블비치처럼 오랫동안 세계 골퍼들이 찾아오는 명품으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골프 강국 한국에도 해외에서 골프를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고급 외국 관광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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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티박스로 쓰이는 볼란테 로고.


몇 가지 소소한 이야기들

천 조각이 하늘에 날리는 로고
- 천 조각이 하늘에 날리는 듯한 아이보릿빛 로고는 조각가 리차드 아드만(Richard Erdman)의 ‘볼란테(Volante)’라는 작품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볼란테란 ‘하늘을 날듯이 빠르고 경쾌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클럽하우스 주변에 전시되는 작품으로 골프장의 상징물입니다. 골프장은 코스나 건축물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부합하는 각종 미술품을 건물 곳곳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배용준 신혼여행지로 뜨다
- 이 골프장은 유명인사와 셀러브리티의 휴양지로 이름높습니다. 한류스타 배용준의 신혼여행지로, 송승헌과 유역페이 커플의 비밀스러운 휴가지이자 프라이빗 힐링 플레이스로 떴고, 각종 CF와 영화의 배경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7년부터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먼싱웨어매치플레이 대회장으로 쓰이고 있기도 합니다.

숨어있는 매력은 노천탕
- 라운드를 마치고 욕탕에 들어가지만 다들 일반적으로 골프장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이 곳에는 노천탕이 있습니다. 가끔씩 노천탕에 유자를 둥둥 띄워두기도 합니다. 감기예방에도 좋고 피부미용에 뛰어나다는 유자가 탕위에 떠 있고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 속에 몸을 담그면 그야말로 신선이 된 듯 합니다. 그리고 탕밖에서는 손에 닿을 듯한 곳에 남해 바다가 펼쳐집니다. 물론 리니어 스위트에도 수영장이 있지만, 저는 라운드를 마친 뒤의 노천탕을 적극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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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유리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


죽방멸치에 신선한 음식
- 남해는 원래 죽방멸치의 산지입니다. 골프장 들어서면서 해안가에 대나무로 통발 길을 만들어놓은 죽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상처 없고 신선한 멸치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해 한우로 만든 이 골프장의 샌드위치 등은 특별히 추천합니다. 물론 바다 옆에서의 식사가 뭐든 별미가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글 남화영
헤럴드스포츠 편집장입니다. 골프 기자 경력 20여년에 저서로는 <골프, 나를 위한 지식플러스>가 있습니다. 영국의 톱100골프코스 사이트 한국 특파원이자, <골프다이제스트> 세계 100대 코스 패널, 세계골프여행기자협회(IGTWA) 회원이기도 합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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