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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화도주의 골프남녀] 안양CC에서의 이별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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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CC의 파5 홀인 6번 홀.


그와의 마지막 라운드였다. 8월의 마지막 비가 갠 아침, 안양 컨트리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6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 우리는 약속한 듯 모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연못 저 끝으로 넘기려면 180미터 치시면 됩니다.”

옅은 안개 낀 연못에 분홍 연꽃들이 만발해 있다. 첼로 허리 모양 곡선의 연못 가득히 연잎들이 뜬구름 같다. 현악기에서 낮은 음이 켜지듯 일렁이는 바람에 꽃과 잎들이 서늘히 흔들린다.

“연못을 넘겨 치시고 연꽃다리 건너가시면 좋아요”

캐디가 곱게 웃으며 말한다. 연못을 황금비율로 가르는 곡선으로 나무다리 길이 나있다. 느리게 건너가는 눈길 발길을 연잎과 꽃마다 담긴 비이슬 방울들이 자꾸 붙잡는다.

앞선 5번 홀에서는 그린 앞 실개울에 핀 꽃범의꼬리 들꽃이, 1번 홀에서는 늙은 살구나무에 달린 열매들이 나를 불러 세웠었다.

“한 홀 한 홀 지나는 게 아쉽군요. 남은 홀이 점점 줄어드네요”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는 곧 인도로 떠난다.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이곳에서 꼭 라운드하고 싶어 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이었던 이다.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나와서 벌인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한 뒤 혼자 살며 몇 년 쉬었다고 했다. 얼마 전 수출 중소기업에 들어가 인도 지사로 간다고 한다. 요가 수행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인도에 가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숨이 막혀 못살겠어요. 회사 다닐 때는 잘난 줄 알고 살았는데 사업을 해보니 내가 제일 바보더군요”

한참 일 할 나이에 그는 이 골프장 모기업 그룹 계열사에 다녔다. 영업 일을 했던 그는 꽤 높은 요직에까지 올라서 때때로 이곳에서 ‘비즈니스 골프’를 했다고 자랑했었다. 한때는 ‘싱글 핸디캡 골퍼’였지만 몇 년 동안 골프를 멀리했던 사연 때문인지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골프장이 좀 변했네요. 5번 홀에 개울도 생기고 클럽하우스도 전보다 커졌어요”

그는 골프장 곳곳을 눈으로 사진 찍듯 오래 바라보았다. 특별히 예쁘게 조경해 놓은 곳을 배경으로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기도 했다. 동반자 중 한 명인 ‘노박사’도 연신 사진을 찍었다. 대학에서 골프장 관리를 가르치는 잔디 전문가인 그는 볼을 치다가도 그린과 페어웨이 잔디를 손으로 쓸어 보고 골프장 곳곳에 있는 다박송 소나무 기둥을 쓰다듬으며 혼자 웃다가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가 찍는 피사체는 잔디와 나무들이었다. 노박사는 이십 몇 년 전 이곳에서 한해 동안 연수하며 골프장 관리를 처음 배운 뒤로 골프장에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들잔디를 ‘야지’라고 하는데 잎이 넓고요, 일본 골프장에 많은 ‘고라이 잔디’는 잎이 가늘어요. 그 중간 정도 넓이 잎이라는 뜻의 ‘중지’를 이곳에서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안양 중지’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것이죠. 정말 특별한 품종이고 이게 우리나라 골프장 잔디들의 조상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품종으로 이렇게 잘 관리된 잔디는 여기 말고는 없어요. 오늘 이렇게 건강한 조상 잔디를 보니 시간을 거슬러 젊은 날로 돌아온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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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CC의 5번 홀 그린 앞 실개울.


안양컨트리클럽. 한때 ‘안양 베네스트’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몇 년 전 두 번째로 코스를 수선하면서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1968년에 처음 문을 열어서 90년대 말과 몇 해 전 두 번에 걸쳐 코스와 건물을 고쳤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십 몇 년 전 처음 왔었다. 살구꽃과 홍매화 꽃잎이 일본 영화 장면처럼 바람에 날리고, 활짝 다 핀 목련은 허무하게 떨어지던 이른 봄날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실망했었다. 이곳에 대한 약간은 과장되고 전설화 된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도 약간은 있었다. 당시의 최고 유명 연예인이 회원 자격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부터 한 그루 값이 집 한 채보다 비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 ‘세상에는 안양에서 쳐본 골퍼와 그렇지 못한 두 가지 골퍼가 있다’는 식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이었다.

정작 내가 실망한 이유는 취향의 차이였거나, 굳이 흠을 찾으려는 나의 병증적 비평 본능 탓이었던 것 같다. 나무 가지를 잘라내거나 비틀어 부채꼴 모양을 만들어 키워낸 ‘다박송’이며 '반송' 같은 것들에서 보이는 인공적 분재 취향을, 그때 나는 가학적이라 여기며 좋아하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에 얼마짜리’라며 찬탄하는 뒷말들의 속됨을 내심 비웃기도 했다.

“코스가 평탄해서 쉬워 보이는데 은근히 어려워요”

또 다른 동반자인 ‘오사장’이 볼멘소리를 했다. 정보통신 벤처회사 대표이자 싱글 핸디캡 골퍼인 그는 이 골프장에 처음 왔는데 첫 홀부터 빠른 그린에 적응하지 못해 ‘더블보기’를 하더니 홀마다 퍼팅이 홀을 많이 지나쳐 ‘보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골프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꽃과 나무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공을 치고 나면 그 낙하지점 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직선으로 빠른 걸음을 했다. 그는 ‘페어웨이와 그린이 비단결 같다’며 좋아했지만 자신의 점수에 낙담하고 자책하며 고개를 젓곤 했다.

“골프채 14개를 다 써야 하는 코스네요. 카트 없이 걸어야 하니 숨이 차서 공이 안 맞나 봐요.”

회원이 아니면 출입이 어렵다는 이 골프장에, 나는 이런 저런 인연과 기회가 닿아 때때로 드나들었다. 올 때마다 계절이 달라서 이곳의 진귀한 나무와 꽃이며 풀들의 이름과 얼굴이 제법 익숙해지고, 그들의 표정이 해마다 철마다 변하는 것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도 이곳에서 보고 즐긴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치기를 부리기도 하고, 그 부질없음을 자책하며 남몰래 얼굴 붉히기도 했었다.

나의 골프는 운동이나 게임이라기보다는 숲과 들을 노니는 산책 또는 감상인 편이어서 골프장을 전문적으로 평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이곳의 풀을 밟는 경험이 늘어날수록 내가 다녀 본 여느 골프장에서와는 무언가 다른 감정을 이 골프장에서 느끼곤 했다. 그 다름이 무엇인지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골프 코스로는 도전적이되 조경은 아늑한 정원 같은 조화와 품격의 절묘함을 다른 골프장에서는 느끼기 어려워서였을까. 진귀한 나무와 철마다 노래하듯 피는 꽃들, 비단결 고운 잔디가 돋보인달 수도 있고 고상한 취향의 클럽하우스와 종업원들의 사려 깊은 서비스가 주는 기품이 다르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눈과 살갗에 닿는 감각일 뿐 내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좀 더 깊은 곳에 저며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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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CC의 연습 그린 앞 다박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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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홀 그린 옆에 놓여 있는 고 이병철 회장의 휘호 빗돌.


9번 홀을 마치고 그린 옆에 세워진 바위를 향해 인도로 떠날 사내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무한추구'

바랜 묵색 빗돌에 한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곳의 설립자가 붓으로 쓴 예서체 휘호 작품을 음각으로 새긴 것이다. 공간감과 균형이 유려하게 잡힌 글씨다. ‘정묘년 호암’이라고 적혔으니 1987년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쓴 글자다. 이 글씨가 쓰여질 무렵 나는 그가 세운 호암미술관에 여러 번 갔었다. 고려청자와 추사, 겸재의 고아한 작품은 물론 불화와 민화에 이르는 숱한 소장품들은 돈이 많다고 해서 사 모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 방대한 작품들 대부분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고급 취향에 감탄하였지만 한편으로 좀 아쉽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문화는 꽃이 아니라 뿌리’라는 견해에 더 깊이 동조하고 있었으므로, 그 같은 부호가 양반 귀족들이 남긴 꽃 같은 작품뿐 아니라 토박이 민중의 뿌리 같은 삶에서 남겨진 민간 생활 공예품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발굴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10번 파5홀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 심어진 고아한 다박송 소나무들을 보며 골프장 관리 전문가 노박사는 장성한 제 아이를 보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비 온 뒤의 하늘은 푸르고 높게 가을로 가고 있다. 인도에 갈 사내는 골프장 곳곳의 풍경을 아스라한 눈빛과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고 첫 방문자인 오사장은 그린 위 깃대에 시선을 집중하고 거리측정기를 눈에 댔다 떼었다 했다.

우리는 ‘조폭 스킨스’ 내기를 하고 있었지만 오사장을 제외하고는 내기에 집중하는 것 같지 않았다. 11번 홀에서는 티샷 낙하지점 오른 편에 있는 노송 숲에 얽힌 재벌 회장들 라운드의 에피소드를 누군가 이야기한 것 같다. ‘이곳의 구석구석마다 대한민국 현대사 속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이 놀다가 남긴 사연이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의 라운드에서 들었던 기억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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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3 홀인 13번 홀.


특별히 조경에 더 많이 공을 들인 13번 파3 홀에 이르렀을 때 코스의 경관에는 무관심한 것 같던 오사장이 탄성을 내며 말했다.

“일본식 정원 같군요. 너무나 예쁩니다.”

티샷을 하고 그린으로 가는 길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 가운데 섬이 있다. 다듬고 빚어 만든 분재같은 소나무들이 동양화 몇 폭처럼 그 섬에 앉아 있다. 섬을 건너는 돌다리에서 오사장은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같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홀뿐 아니라 이 골프장 모든 곳의 조경은 은근하고 치밀하다. 모든 홀은 3분할 또는 4분할로 안배되어 플레이어가 걷고 머무는 곳마다의 시선을 계산한 경치가 연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귀하고 특색 있는 나무와 꽃들은 눈이 머무는 곳마다에 시각의 황금비율을 마감하며 서있다. 한 홀 한 홀 걸어갈 때마다 고아한 미장본 그림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는 듯한데, 나 혼자 과민한 호들갑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90년대 말에 이 코스를 수선 하면서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라는 유명한 설계자가 코스 디자인을 새로 했다고 한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나는 유독 이 골프장에서 걸어갈 때 골프가 고독한 운동임을 특별히 더 느끼는 것 같다. 그의 설계가 그런 의도를 담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뽑혀와 이곳에 뿌리 내린 진귀한 나무와 꽃들이 외로움을 자아내는 것인지를 나는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곳의 주인이 사실은 고독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외롭지 않았다면 이토록 저마다 다른 사연의 별난 아름다움을 지닌 나무와 꽃 무리들을 이렇게도 많이 옮겨다 서로 어울려 살게 해 놓았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깊고 별난 감정은 그런 외로움인지도 모르겠다.

16번 파5 홀에서 오사장이 버디를 하여 내기에 쌓인 스킨 상금을 모두 가져갔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자기가 방금 한 어프로치 샷과 퍼팅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반복해서 자랑했다. 골프는 가끔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의 철없는 놀이이기도 하다. 놀이의 도가 지나쳐서 때로는 골프에 빠져 생각과 품행이 황폐해지는 이도 많이 보았다. 그런 한편 세상 살이에서 황폐해지는 영혼을 골프를 통해 비워내고 새로 채우는 이도 더러는 있는 것 같다. 그 황폐함과 비움 사이에서 골프는 하는 이의 바탕 됨됨이를 단박에 드러내기도 하고, 간혹 드물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 홀로 넘어가는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골프장을 만든 이는 얼마나 지독한 마음 속 폐허를 경험했기에 이렇듯 집요하게 아름다움을 좇는 골프장을 가꾸어낸 것인가.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 낸 사람이라지만, 나에게 그는 호암미술관과 이 골프장으로 남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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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3 홀인 17번 홀의 백일홍.


17번 홀, 캐디가 홀까지의 거리가 135미터라고 알려주었다. 연못 물가에 선 백일홍이 있는 힘을 다해 붉게 피어있다. 홀 너머에는 높은 낙우송들이 엽서 그림처럼 뾰족뾰족하게 서 있고 연못 건너편 그린으로 가는 오솔길 가에 푸른 억새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인도로 떠날 사내는 티잉 그라운드 뒤쪽 키 큰 나무 앞에 서 있었다. 이곳 설립자가 홀인원 기념으로 심은 은행나무였다. 그는 그 나무를 향해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오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맞바람을 맞아 그의 티샷이 짧게 떨어졌다. 그린으로 걸어가며 그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이 홀에서는 등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요’ 라고 내가 말했는데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홀은 누가 어떻게 공을 쳤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 홀 세컨샷에서 섕크를 내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내게 ‘불러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행복했던 젊은 날도 있었다는 걸 다시 기억해낸 시간'이었다며, '인도에 가서 새로 시작하는 데 힘을 준 라운드였다'고 얘기한 것 같다. 나는 ‘외로울텐데 잘 이겨내시라’고 했고 그는 ‘여기나 거기나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골프장 앞 오래된 코다리 집에서 우리는 소주 반주로 저녁을 먹었다. 방금 전 골프장에서 감돌던 회상과 사색의 분위기는 사라졌고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떠들었다. 오사장은 안양CC에서 첫라운드를 마친 감상을, 노박사는 이 골프장의 잔디관리 이야기를, 인도로 갈 그는 옛날 잘 나가던 시절의 골프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나도 과장을 섞은 골프 무용담으로 맞받았다. 같은 페어웨이를 함께 걸으며 라운드 하면서도 저마다 제 생각 속의 다른 길을 헤매듯이, 모두 독백처럼 외롭고 황폐한 이야기였다.

일주일쯤 뒤 인도에 도착한 그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는 끝에 ‘안양CC에서 구원의 빛을 보았다’ 고 적었다. 그가 적은 구원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났는지는 모르겠다. 골프는 사람을 황폐하게도 하고 때로는 구원하기도 하는 것인가.

나는 답장으로 이렇게 적었다.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골프장을 지키는 신령들께도 간구합니다. 내게도 구원의 빛을 내려 주시기를……”

글 / 류석무

도화도주(필명)는 기업 경영자입니다. 하는 일이 골프에도 다소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골프 상식에 밝고, 업무상 골프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좀더 생각과 목적이 있는 골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골프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문화잡지 편집인을 한 적이 있어 글쓰기에 익숙합니다(편집자 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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