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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국가서열 10위의 탁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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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신한금융 2018 코리아오픈이 열린 대전 충무체육관의 모습. 3,800석이 넘는 만원 관중이 들어서 일부는 서서 관전하는 등 탁구열기가 높았다.


신한금융 2018 코리아오픈 탁구대회는 여러 면에서 대성공이다. 월드투어 최상급레벨인 플래티넘 승격, 북한선수들의 전격 출전, 여기에 남북 혼합복식조의 우승(21일), 장우진의 스타탄생, 화려하면서도 안정된 대회 운영 등 화제만발이다.

이러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쟁쟁한 인사들이 코리아오픈이 열리는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종환 장관은 첫 날 개회식을 찾았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1일,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혼합복식 결승전을 현장에서 관전하고, 장우진-차효심에게 금메달을 직접 수상했다. 같은 날 저녁 허태정 대전시장은 북한선수단에게 환송식을 열어줬다.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정도 고위급 인사가 뜨면 탁구장이 분주해진다. 대회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000이 온대”라는 말이 한 시간 전부터 오간다. 그런데 국가 의전서열 10위에 해당하는 감사원장이 21일 오후 정말이지 조용히 탁구를 보고 갔다.

주인공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최재형 감사원장(62). 사법연수원장을 지낸 판사 출신이다. 감사원장은 국가 의전서열에서 10위로 앞서 언급한 두 장관(굳이 따지면 공동 19위)보다 더 높다(사실상의 권력서열인 대통령 권한 대행 서열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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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최재형 감사원장(왼쪽)이 장우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로 가족사진 중 일부를 캡처해 상태가 좋지 않다.


생활체육 탁구동호인인 최 감사원장은 탁구레슨을 받으면서 탁구에 빠져들었고, 몇몇 탁구인들과 친분이 있다. 코리아오픈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현장직관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나타나면 의전 등으로 관계자들이 괜한 수고를 할까 참았다. 그런데 21일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서울을 벗어나 있다가 코리아오픈에서 한국선수들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비공식’을 조건으로 걸고 대전 충무체육관으로 왔다. ‘언론에 알리지 말 것, 의전은 노(NO), 부부가 조용히 앉아서 탁구만 볼 수 있으면 OK'라는 조건이었다. 이쯤이면 감사원장이 아니라 그냥 중년의 탁구팬으로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최고위급 공직자가 이렇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장우진-미즈타니 준(일본)의 준결승 경기 때 슬쩍 보니 몰입해서 관전하고, 박수와 환호까지 나름 응원도 열정적이었다. 일반 탁구팬들과 다를 게 없었다.

기자들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호기심에 감사원장이 자리를 뜰 때 그 동선을 따라갔다. 흥미로운 것은 감사원장의 기념사진 찍기. 탁구팬으로 명승부를 펼친 장우진 선수와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은 듯했다(실제로 많은 탁구팬들이 그렇게 했다). 감사원장쯤 되면 이런 의사를 피력하면, 대회 주최측이 서둘러 선수를 불러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최 감사원장은 한쪽 귀퉁이에서 장우진의 긴 인터뷰(못해도 30분)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다가 짧게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서둘러 돌아갔다. 주변에서는 여기에 감사원장이 와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기자가 취재를 하려고 하자 김완 감독(부천시청)이 “감사원장은 개인적 일로 언론에 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만류했다. 원래 기자는 쓰지 말라는 것은 쓰고 싶고, 쓰라는 것은 거부하고픈 습성이 있다. 이쯤이면 사진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눈치를 채고, 당신들 가족사진을 찍을 때 슬쩍 휴대폰으로 한 장을 담아뒀다. 이후 감사원장을 아는 탁구지인들에게 관전모습과 탁구 치는 사진 등을 요청했지만 “내가 언론에 사진 줬다고 하면 큰일난다”며 다들 정중히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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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장 사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언론에 보도된 최재형 감사원장의 모습 하나 추가. 대한민국 감사원장은 탁구동호인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러면 더 궁금해지는 법. 스포츠기자로 정치와 행정은 잘 모르지만, 최재형 감사원장의 알려진 모습은 제법 훌륭했다. 아들 2명을 입양해 훌륭히 키웠고, 감사원 탁구동호회에 받는 탁구레슨도 ‘원장이 뜨면 직원들이 불편하다’는 조언에 남몰래 받는다고 한다. 오래된 소나타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서 다니고, 그래서 지난 5월 입양의 날 행사 때는 감사원장이 아니라 입양 부모 자격으로 수행원도 없이 조용히 참석해 ‘작은 소동’이 일기도 했단다.

기자도 탁구동호인. 그렇지 않아도 기분 좋은 코리아오픈이 국가서열 10위 탁구팬의 조용한 관전(이 멋진 콘텐츠가 무료다)으로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사람이라면 감사원장을 제대로 할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런 사람이 탁구팬이어서 동호인으로 으쓱해졌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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