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보면 TPC(Tournament Players Club)라는 이름을 가진 코스가 자주 나온다.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TPC쏘그래스나 올해 71만명이 넘는 갤러리가 몰린 인기 많은 웨이스트매니지먼트(WM)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스콧데일 등이 그러하다. 이번 주 일리노이주 실비스에서 열리는 존디어클래식 개최 코스 역시 TPC디어런이다. 올해 49개가 열리는 PGA투어 시즌에 14개의 PGA투어가 TPC코스에서 열린다. 물론 50세 이상 선수가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나 2부 웹닷컴투어 대회는 더 자주 열린다. PGA투어가 대회를 위한 전용 코스를 TPC라는 이름으로 사들이고 직접 운영하기 때문이다. 퍼블릭 및 리조트 골프장으로는 16개, 회원제 19개를 합쳐 총 35개의 골프장이다. 18홀 코스수로 따지면 41개 코스로 늘어난다. 대체로 미국에 있지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에르토리코 등에도 TPC코스가 있다(물론 한국에 있는 양평TPC는 PGA투어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골프장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일 뿐이다). 이들 코스에서는 아마추어 골퍼도 물론 라운드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챔피언티에 해당하는 TPC티가 아닌 레귤러티에서 쳐야 한다. TPC티는 회원 즉, PGA 자격증을 가진 선수들이 치는 곳이고 대회가 열리면 그들은 여기서 티를 꽂고 친다. 투어에 최적화된 코스이기 때문이다.
비먼의 스타디움 코스 계획 미국 PGA투어 전임 커미셔너였던 딘 비먼의 주도로 플로리다 북동부 폰데베드라비치의 늪지에 투어 전용 코스를 만든 것이 TPC의 시초다. 비먼은 저명한 코스 설계가 피트 다이에게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매년 치를 난이도 높은 코스를 주문한 결과 1980년에 TPC쏘그래스가 탄생했다. 1982년부터 TPC쏘그래스에서 더플레이어스가 열리고 투어의 전폭적인 마케팅과 홍보가 더해지면서 TPC는 선수들의 기량차를 미세하게 가려내는 탁월한 투어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광대한 골프장을 경기장처럼 조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애초 비먼의 것이 아니었다. 포드 허바드의 1947년 저서 <골프코스 스펙테이터>란 책에서 유래했다. 허바드는 ‘클럽하우스가 가운데 있고 모든 홀이 바퀴살처럼 원형으로 돌아가면서 조성된다면 관전의 편의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먼은 거기에서 ‘스타디움’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고 실현했다. TPC쏘그래스 스타디움 코스는 오늘날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골퍼를 가르는 시험장으로 여겨진다. 아일랜드 그린을 가진 파3 17번 홀에서는 매년 공이 몇 개나 호수에 빠지는지도 집계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16번부터 물 옆으로 흐르는 세 홀 모두 짜릿한 승부의 연속이자 파이널 승부 변화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TPC코스가 가진 특징 TPC쏘그래스 이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 골퍼들이 용기를 내 TPC티(챔피언 티)에 도전하곤 했으나 이후로는 달라졌다. 그곳에 서면 전혀 색다른 고난도의 경기를 펼쳐야만 한다. TPC 코스는 대회 개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코스이기 때문에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홀 요소요소에 널찍한 부지로 많은 갤러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특징이다. 선수들의 기발한 샷을 잘 관람할 수 있도록 레이아웃부터 반영했다. 또한 방송을 위한 TV중계탑 등 각종 시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유휴 부지를 충분히 확보한다. 둘째, 코스는 굴곡진 페어웨이가 있으며 그린은 작으면서도 언듈레이션이 있어 정확한 어프로치 샷을 구사해야만 온 그린이 가능하다. 그린 주변에 넓은 언덕을 두는 건 그만큼 많은 갤러리의 관람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18번 홀 그린 주변은 스타디움 구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피트 다이의 아들인 페리 다이가 설계한 한국오픈 개최 코스인 충남 천안 우정힐스의 18번 홀을 연상하면 좋겠다. 그 홀의 별칭이 공교롭게 ‘스타디움’이다. 셋째, 페어웨이를 낀 워터 해저드, 파3 홀 아일랜드 그린 등등이 프로들의 기량을 시험하는 홀이면서 갤러리들에게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원래 코스는 자연이 만드는 것이지만 TPC 코스는 인공적인 마운드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흙으로 조성된 원형 경기장 같은 굴곡이 경기 보는 재미를 높여준다. 1980년 TPC쏘그래스를 시작으로 한 이같은 투어형 코스들는 1988년까지 8개로 늘리더니 이후로 급속도로 골프장을 사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쏘그래스 설계자 피트 다이뿐만 아니라 톰 파지오, 보비 위드, 잭 니클러스,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톰 와이즈코프, 그렉 노먼, 헤일 어윈 등 톱 설계가들이 TPC 코스를 만들었다. 이들 코스는 높은 품질을 유지하며 투어 선수들에게는 뛰어난 연습 공간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이중 서머린, 라스베이거스의 캐년 코스는 지역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까지도 펼치고 있다.
성공한 TPC브랜드 코스들 TPC코스 관리 실무 책임자인 PGA투어 코스협회장 버논 켈리의 말이다. “PGA투어 코스엔 일종의 마법이 작용합니다. 톱 프로들이 경기하는 곳이란 점이 코스 홍보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죠. 또한 TPC 코스에서 대회를 개최하면 대회의 품격도 높아지죠.” TPC 코스와 대회는 ‘최고의 실력자를 가린다’는 명제를 놓고 서로 윈윈하는 전략에 성공했다. TPC의 성공에 힘입어 2007년 PGA투어는 헤리지티골프그룹을 통해 골프장을 사들여 TPC로 브랜딩을 한 뒤에 팔기도 한다. TPC쏘그래스 외에도 TPC를 단 코스로 브랜딩에 성공한 코스가 꽤 많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우거진 샌프란시스코의 TPC하딩파크는 워런 하딩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PGA투어에서 지난 2010년에 사들인 이 코스는 지난 2009년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했었고 오는 2020년이면 PGA챔피언십을 개최한다. 지난해 길 한스가 리노베이션을 끝낸 매사추세츠 노튼의 TPC보스톤은 플레이오프 시리즈인 도이체방크와 델테크놀로지챔피언십이 열리는 대표적인 토너먼트 코스로 여겨진다.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스콧데일의 파3 16번 홀은 매년 가장 많은 갤러리가 모이는 홀이다. 3월에 슈퍼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 사막으로 한 주에 60만명 이상의 갤러리가 모인다. 톰 와이스코프가 설계한 이 코스, 그중에 16번 홀은 그 자체로 스타디움을 만들어 환호성이 넘치는 골프 해방구로 여겨진다.
발레로텍사스오픈을 매년 개최하는 TPC샌안토니오 AT&T오크스코스는 그렉 노먼이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컨설팅으로 조성한 코스다. 벙커 턱에 석회암이 박혀 있는 코스로 골프다이제스트의 미국 100대 퍼블릭 중에 83위에 올라 있다. 캘리포니아 라킨타에 위치한 PGA웨스트 스타디움 코스는 매년 커리어빌더챌린지가 열리는 곳이다. 동시에 퀄리파잉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피트 다이가 설계한 곳으로 슬로프 레이팅이 150까지 나오는 무지하게 어려운 코스로 여겨진다. 최근 밀리터리트리뷰트그린브라이어가 치러진 TPC올드화이트는 미국 골프코스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C.B.맥도널드가 설계해 1914년 개장한 전통 명문이다. 지난 2016년 홍수로 코스가 손상을 입어 키스 포스터가 리노베이션을 했다. 골프다이제스트 퍼블릭 100대 코스 중에 31위에 올라 있다. 우리가 TPC코스에서 얻을 교훈이 한 가지 있다. 투어가 성공하면 그걸 통해 스토리를 만들고 코스를 브랜드화하면서 점차 가치를 높여간 PGA투어의 상술이다. TPC쏘그래스가 만들어진 지 36년에 불과하지만 골프장이 단순히 코스로만 끝나지 않고 ‘스타디움’이라는 개념을 집어넣은 건 비먼을 비롯한 투어 전문가들의 장기 계획에서 나왔다. 우리 투어가 본받을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