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퍼팅은 손과 손목으로 하라’ 월터 트래비스의 레슨
이미지중앙

1901년의 월터 트래비스의 모습.


대부분의 골퍼들은 퍼팅을 처음 배울 때 손목을 꺾지 말고, 팔과 어깨 등 큰 근육을 사용하라고 배웠다. 많은 골퍼들이 비교적 단순한 이 가르침을 퍼팅의 비법이고 원칙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맞아 떨어지는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다.

'퍼팅의 귀재' 월터 트래비스

1862년 호주에서 태어난 월터 트래비스(Walter Travis 1826-1927)는 23세에 미국 뉴욕 시로 이민을 와서 제법 부유하게 되었다. 1896년에 영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친구의 권유로 골프 클럽을 한 세트 샀는데 그때가 35세에서 3개월 모자라는 날이었다.

트래비스는 레슨서적을 찾아보며 연습에 몰두하여 1년도 안 돼 클럽챔피언이 되었고, 2년 후인 1898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의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골프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결국 골프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1900년의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더니 1901, 1903년에도 우승을 하여 3회 우승의 업적을 남겼다.

30대 중반에 골프를 시작한 트래비스의 스윙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깡마른 왜소한 체격에 스리쿼터 스윙으로 손목을 많이 써서 훅을 치는 타법이었는데 젊은 선수들에 비해서 비거리가 많이 짧았다. 그러나 그의 퍼팅실력은 당시 아마추어 선수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최고수의 실력이었다. 처음에 트래비스를 얕보던 젊은 선수들은 그에게 “The Old Man”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매치에서 그를 피하고 싶어했다. 결국 트래비스는 최고의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이미지중앙

월터 트래비스의 피니시 동작.


영국 골프 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세 번이나 제패한 트래비스는 이제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도전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갔다. 브리티시 아마추어는 외국인이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고, 영국골퍼들에게는 자존심의 상징인 대회였다.

영국은 2류선수 같은 스윙을 하는 허름한 미국선수를 환영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개방되던 클럽하우스의 락커 사용을 금지했고, 장애가 있는 캐디의 교체를 요청했지만 거부하기도 했다. 비바람 속에서 진행된 첫 매치를 승리한 후 다음 매치 전에 옷을 갈아입게 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 당했다. 화가 난 트래비스는 어떻게든 이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다음 4개 매치에서 해롤드 힐튼 등 영국 최고의 아마추어들을 격파하고 결승에 오른 트래비스의 상대는 유명한 장타자 테드 블랙웰이었다. 바람 속에서 드라이브 샷의 거리가 80m 이상 차이가 났지만 신기에 가까운 퍼팅을 계속하며 리드를 지킨 트래비스는 33번째 홀에서 드디어 승리했다. 브리티시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최초로 외국인 우승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관중은 침묵을 지켜야 했다. 시상식에서 대회 위원장은 영국이 로마에게 침략당한 이후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고 연설했다.

이미지중앙

월터 트래비스의 퍼팅 자세.


트래비스의 비밀병기

트래비스는 영국 선수들이 처음 보는 모양의 퍼터를 사용했는데, 알미늄 재질의 맬릿 헤드에 센터 샤프트를 붙인 이상한 모양이었다. 이 퍼터로 모든 거리의 퍼팅을 성공시키는 트래비스를 보며 영국 선수들과 관중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퍼터의 이름은 스키넥터디 퍼터(Schenectady Putter)였는데 이 퍼터의 디자인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R&A는 1910년부터 이 퍼터의 사용을 금지시켰는데 이유는 샤프트가 센터에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1951년 이후 센터 샤프트 사용이 전면 허용되었다.

트래비스의 퍼팅그립

골프를 늦게 시작해 자신의 스윙과 샷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트래비스는 퍼팅이 골프의 반이라는 것을 깨닫고 퍼팅 연구에 몰두했다. 모든 방법을 시험해 본 트래비스는 자기가 찾아낸 방법을 1904년에 ‘퍼팅의 기술(The Art of Puttng)’이라는 책을 냈다.

현재에도 가장 인기 있는 퍼팅그립은 왼손의 집게손가락이 오른손을 덮는 리버스 오버래핑 그립인데, 트래비스가 이 그립으로 신기와 같은 퍼팅을 하니까 다른 골퍼들도 모두 따라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퍼팅의 두 가지 요소는 방향과 거리인데, 방향을 읽어서 라인을 잡아내는 것은 연습과 경험으로 배울 수가 있다. 하지만 거리를 맞추기 위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스트로크를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므로 가르칠 수가 없다. 연습으로 거리에 대한 느낌을 기억하는 방법뿐이다.

이미지중앙

스키넥터디 퍼터의 광고(왼쪽)과 트래비스가 사용한 스키넥터디 퍼터.


트래비스의 비법 “손목을 써라”

퍼팅 스트로크에는 손목을 사용하는 것, 혹은 큰 근육인 팔과 어깨를 사용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트래비스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시험해 보았다. 팔과 어깨를 사용하는 방법은 기계적이고, 손목을 사용하는 것은 본능적인데 두 스트로크의 성공확률은 비슷했다. 다만 어깨를 사용하는 기계적인 스트로크를 정확히 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손목은 신체부위 중에서 가장 민감한 거리 감각을 가진 부위이므로 본능적으로 퍼팅하려면 손목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이다. 연습장에 가서 긴 샷 위주로 연습을 하고 퍼팅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 주말 골퍼라면 본능에 의해서 퍼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퍼팅연습도 안 하면서 꼭 연습이 필요한 어깨의 스트로크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요즘 유행하는 두꺼운 퍼팅그립은 손목의 꺾임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그러나 트래비스는 퍼터의 그립이 가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목의 섬세한 움직임을 퍼터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립이 가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팅이 잘 안 되면 무엇인가 바꿔보아야 한다. 왼손으로 퍼터헤드를 뒤로 밀든 아니면 오른손으로 헤드를 당기든 스트로크를 할 때는 오른손과 손목을 사용하는 방법이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골퍼들에게 정답일 수 있다. 오른쪽 팔꿈치가 오른쪽 옆구리에 붙어있는 기분으로 손목을 꺾으면 된다. 몇 번의 연습만으로도 손목을 사용하면 거리 맞추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잭 니클라우스 등 위대한 선수들은 대부분 손목을 사용하는 퍼터였다.

다음 라운드 때에는 퍼팅 그린에서 손목을 꺾는 스트로크를 몇 번 해 본 후 라운드에 나가서 바로 사용해보기를 권한다. 이것은 본능적인 퍼팅이다.

* 박노승: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