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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스포츠가 본 삼성 비리와 대한항공 갑질

  • 기사입력 2018-05-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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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실린 시집 김수영 전집.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거악과 소악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 김수영의 시는 ‘본질적인 문제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화자가 자신의 소시민적인 모습을 비판적, 자조적으로 인식하고 반성한다’고 요약된다. 쉽게 말해 우리네 나쁜 속성 중의 하나가 진짜 화를 내야할 거악(巨惡)에는 꼬리를 내리면서, 주변의 만만한 상대에게만 성을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적과 고민은 시인이 살았던 군사독재 시절에만 울림이 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나쁜 시절에는 뚜렷한 악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자기반성이 더 쉽다. 요즘처럼 악이 교묘해진 시절에는 그런 줄도 모르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 추악한 삼성
정유라 승마지원이 포함된 최순실 국정농단,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와 관련된 삼성 마음대로 변하는 에버랜드 땅값,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삼성 장충기 문자, 세월호 맞불집회(폭식투쟁) 지원…. 촛불혁명 이래 밝혀지고 있는, 삼성의 폐해는 모두 충격적이고, 끝이 없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정의를 짓밟고 야합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두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다. 재벌에 기생하는 일부 언론은 물론이고, 사법부마저 삼성을 봐주려고 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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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처리를 받은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


# 갑질 대한항공

최근 한달이 넘도록 대한항공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이는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씨의 ‘물컵 갑질’에서 촉발됐다.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 씨의 엽기적인 갑질과 밀수 및 탈세의혹이 더해지면서 ‘대한항공 파문’은 2014년 큰딸 조현아의 ‘땅콩회항’을 넘어서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까지 열고 있다.

# 삼성비리을 덮은 대한항공 갑질
삼성과 대한항공의 못된짓. 두 말이 필요없는, 파렴치한 범죄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무시하는 우리네 봉건식 기업문화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둘 중 어느쪽이 더 비판받아야 하는가?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은 “삼성쪽이 그 사회적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갑질을 보도하는 분량만큼 삼성의 극우단체 후원은 보도되어야 마땅하다”고 몇 차례 일갈했다. 맞다. 어렵게 따지지 않아도 일감으로 삼성이 우리사회에 끼친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과 우리 감정은 대한항공의 갑질에 대해 훨씬 빠르고 강하게 반응한다. 내용이 쉽고, 선정적이기 때문일까? 심지어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삼성이 대한항공 사태에 미소짓고, 이를 키운다는 음모론까지 떠돈다. 대한항공 촛불집회는 있어도, 삼성 촛불집회가 없는 게 유감이다.

# 스포츠의 두 기업
여기서 잠깐 스포츠로 시선을 돌려보자. 온갖 삼성비리의 중심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돈이 되지 않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스포츠계에서 유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이재용의 삼성은 스포츠 후원을 크게 줄였다. 아마추어팀 해체는 물론이고, 프로스포츠에서도 삼성의 후원하에 리그를 호령했던 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사이 이재용은 사익을 달성하기 위해 김종 차관에 붙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사주는 등 승마를 특혜지원했다. 이 점에서 대한항공은 조금 더 억울해진다. 조양호 회장은 최순실과 김종 차관의 횡포에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의 수장에서 쫓겨났다. IOC위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스포츠를 사랑했는지는 몰라도 10년이 넘도록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아 매년 10억 원씩 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로 탁구 세계선수권(2020년 부산) 유치에 일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삼성이 버린 유승민 IOC위원을 후원한다. 확실히 삼성과 대한항공의 분노유발 게이지는 스포츠에서 보면 확연히 더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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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남자탁구대표팀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탁구협회 회장(가운데).


# 정당한 분노

범죄마다 다른 형량은 범죄에 분명히 경중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공정해야 할 사법부가 온갖 어려운 논리를 내세워 재벌, 특히 삼성에 관대한 판결을 내리면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범죄라고 다 같은 범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과 우리네 감정도 범죄마다 그에 걸맞은 보도를 하고, 분노를 느껴야 한다. 만일 삼성이 대한항공에 비해 돈이 더 많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우리네 스스로 그릇된 차별을 만든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김수영 시인의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자문처럼 말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 P.S. 이 글로 대한항공 일가를 옹호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스포츠의 시선으로 보니, 삼성이 조양호 일가보다는 더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래서 미리 밝히는데 조양호 회장의 스포츠계 갑질을 취재 중이고, 곧 기사화할 생각입니다. 혹시 좋은 제보가 있다면 einer6623@heraldcorp.com으로 연락주십시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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