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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세월호 4주기와 탁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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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에 나온 <노란리본>의 표지.


# ‘노란리본’이라는 책이 있다.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14년 7월에 나왔으니 세월호의 수많은 유산 중 하나일 것이다. 익히 잘 알려진 전과자 빙고의 노란 리본 이야기, 로렌조 오일의 탄생스토리, 영화로도 제작된 허드슨 강의 기적 등 30편의 실화 에세이가 실려 있다. 새로운 스토리의 발굴보다는 파편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들을 모았기에 ‘진부한 감정팔이가 아니냐’고 낮춰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4년 전 세월호의 슬픔을 잊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사람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 ‘4년 전 오늘 이 시간, 당진에서 탁구대회를 보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진행하던 뉴스는 동기가 대타로 맡았다. 운전하며 세월호 뉴스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얼굴들은 당시 최강의 전력으로 결승전을 앞두고 있던 단원고 선수들이었다. 친구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들으며 슬픔을 참고 경기를 하는 선수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다. 오늘부터 바로 그 대회(종별탁구선수권)가 열린다. 수많은 어린 선수들은 또 수업에 빠지고, 수학여행에 못 가고, 경기를 한다. 내 둘째 아들(탁구선수)도 지난 주 제주도 수학여행을 못 갔다. 4년 전 오늘, 이유도 모른 채 하늘나라로 떠난 어린 학생들을 추모한다. 오늘 (내가 진행하는)뉴스의 첫 기사는 합동영결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추모의 방식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다른 어린 선수들을 응원해야겠다.’ 지난 16일 오전 9시 52분, 손범규 한국중고탁구연맹회장(SBS 아나운서실 부장)이 SNS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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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국중고탁구연매의 손범규 회장이 SNS에 올린 세월호 추모 게시물.


# 문성중의 오윤정 코치는 지난 16일 오전 천안의 유관순체육관에 있었다. 오후에 시작될 종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며서. 그는 4년 전 오전 ‘그 시간’에도 체육관(당진)에 있었다. 여고 탁구 최강 단원고의 코치로 다음날 열릴 여고 단체 결승에서 대회 2연패를 준비 중이었다. 비보가 전해지자, 오 코치는 가장 먼저 선수들의 휴대폰을 거둬 뉴스를 접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음 날 결승전을 하느냐 못 하느냐 말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사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들이 걱정됐다. 선수들에게는 다음날 결승전이 끝난 후 자세한 소식을 전하자고 결정이 났다. 저녁 숙소에서까지 통제를 한다고 했지만 선수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 챈 듯했다. 다음 날 선수들은 울음을 참으며 경기를 했고, 우승했다. 그리고 많이도 울었다. 선수들 중 박세리 안영은 김민정은 수학여행을 가야하는 2학년으로 한 번에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원래 선수수급 등 팀사정이 좋지 않던 단원고 탁구부는 이 3명이 졸업하면서 해체됐다.

# 삼성생명의 박세리는 16일 오후 훈련을 마친 후 천안유관순체육관으로 향했다. 그에게 세월호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매년 종별대회와 겹쳤다. 4년 전 고등학생 박세리는 4월 16일만 해도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응원을 온 엄마는 전원구조라는 오보만 전할 뿐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7일 결승을 치르러 체육관에 갔는데 다른 학교 선수들이 “니네 시합을 할 수 있냐?”고 물어오자 그때 큰 일이 난 것을 직감했다. 결승전을 치르고, 울고... 그렇게 잔인한 4월을 보냈다. 한동안 박세리에게 세월호는 금기의 단어였다. 언급하고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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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주니어대표) 시절의 박세리. [사진=월간탁구/더핑퐁]


# 따지고 보면 아이들만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 우리네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탁구를 보면 여고생은 실업선수가 됐고, 유능한 코치는 계속 유능한 코치이고, 아나운서는 계속을 방송을 한다. 박세리는 최고의 명문 실업팀 삼성생명으로 스카우트돼 기량이 더 좋아졌다. 오윤정 코치는 자리를 옮겨 문성중학교를 최강팀으로 만들었다(3월 중고종별대회 단체전 복식 우승). 탁구선수 아버지였던 아나운서는 한국중고탁구연맹 회장으로 선출돼 탁구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월호 슬픔의 당사자들을 빼면 탁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나름의 바쁜 삶을 산다.

#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어렵사리 박세리와 전화연결이 됐다. 조심조심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을 통해 박세리에게 세월호에 대해 한 마디도 물어도 되는지를 타진했는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박세리는 비교적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4년이 지나니까...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달라진 거요? 언제든지 주위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맞다. 4년 전 우리 모두는 세월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일까, 어느새 우리는 이걸 많이도 잊었다. 세월호를 진정 추모하는 것은, 탁구인들처럼 자신이 삶을 더욱 열심히 살고, 박세리의 말처럼 주위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잘 대하려고 노력하면 최선일 듯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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