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스포츠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골프대회 누가 ‘갑’ 인가?

  • 기사입력 2018-04-12 02:06
    • 프린트
    • 메일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이미지중앙

US 오픈에서 질서를 잘 지키고 있는 갤러리들의 모습.

긴 겨울이 끝나고 우리나라의 프로골프 시즌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많은 골프 팬들이 대회장을 찾는데, 갤러리는 골프대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갤러리가 지켜야 할 에티켓을 강조하다 보니, 의무만 남고 권리는 생각도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이는 골프대회에서 관중이 최고의 ‘갑’이라는 사실을 잊은 발상이다. 관중은 스폰서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고 선수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다.

갤러리와 선수

2016년 세상을 떠난 ‘골프의 킹’ 아놀드 파머가 남긴 일화가 있다. 어떤 골프 대회에서 파머가 막 퍼팅을 하려고 하는데 그린 주변의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를 들은 파머는 퍼팅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울음을 멈추도록 달래려고 했다. 아이가 계속 울자 파머는 자기의 퍼팅을 끝낸 후 다시 아이에게 와서 한 번 안아주고 아이의 엄마에게 인사를 한 후 다음 홀로 갔다. 아이의 엄마와 주변의 갤러리는 평생 동안 아놀드 파머의 팬이 되었다.

필자가 직접 목격한 한국 프로대회의 상황은 심각했다. 파3 홀에서 선수가 티샷을 하려고 하는데 유모차에 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선수는 샷을 멈추고 우는 아이 쪽을 바라봤다. 당황한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려 했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자 유모차를 끌고 먼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선수는 점점 화가 난 얼굴로 변했고, 다른 갤러리도 아이 엄마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우는 아이를 빼면, 선수와 아이엄마, 다른 갤러리 모두 파머의 사례와 무척 달랐다.

관중이 골프의 미래

우는 아이와 엄마는 우리나라 골프의 작은 미래였다. 그 유모차는 다시는 골프대회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중이 없는 골프 대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선수들이 잊고 있다. 관중은 선수보다 높은 ‘갑’이다. 때로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선수가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다. 갤러리도 에티켓을 지켜야 하고, 우리나라의 관전 문화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이던 갤러리가 을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방해를 받은 선수가 관중을 노려보는 순간 관중은 그 선수의 마음을 읽어내고 불쾌해한다. 버디를 하고 박수를 받으며 관중에게 답례하는 작은 동작에서도 그 선수가 진심으로 갤러리에게 감사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갤러리에게 더 사랑 받는 선수가 생기는 것이다.

이미지중앙

마스터스 대회는 많은 골프팬들이 갤러리로 찾고 싶어하는 대회다.


갤러리와 진행자


골프 대회에는 상금과 비용을 후원하는 주최자, 대회를 운영하는 주관자가 있다. 예를 들어 신한동해오픈이면 신한금융그룹이 주최자이고, KPGA가 주관자이다. 주최자는 대회의 준비와 진행을 위해서 대행사를 지정하고, 그 대행사가 갤러리 로프, 간이화장실 등을 설치하고, 대회에 필요한 진행요원을 공급한다. 갤러리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진행요원은 자기가 갑인 것으로 착각하여 강압적인 말투를 사용하곤 한다. 반면 갤러리는 자기가 갑인 것을 잊고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진행요원에게 불평하지 못한다.

어느 대회의 1번 홀 티에서 근무하던 경기위원은 선수가 티 샷을 할 때마다 “거기 카메라 내리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던 진행요원의 퇴장을 요구했다. 같은 말이라도 말투에 예의가 있는지, 상대를 무시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 진행요원은 너무도 예의가 없었다. 갤러리들은 그의 불손하고 모욕적인 어투를 참아가며 관전했다. 누구도 그 진행요원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자기가 갑이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시즌이 시작되었다. 더 많은 팬들이 대회를 방문하여 에티켓을 지키며 선수들을 응원하기 바란다. 주최자인 기업이 골프 잔치를 열어서 갤러리를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니까 축하해 주고, 방문한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갤러리가 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예의에 벗어난 선수와 진행요원 그리고 불편했던 점들을 메모하여 주최자나 주관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기 바란다. 비난 받는 갑질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정당한 항의를 해야 골프 대회가 발전할 수 있다.

주차시설이나 셔틀버스가 충분하지 않고, 쓰레기통이 없고, 화장실이 모자라고, 물을 사기가 어려워도 TV중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회는 갤러리를 무시하는 대회이다. 골프 대회는 골프팬들을 위해서 열리는 것이므로 갤러리가 ‘갑’이다. 선수와 주최자, 주관자는 그 다음이다. 따지고 보면 아주 자명한 이치다.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핫이슈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