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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넘어져도 올림픽기록’에서 배워야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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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는 여대생 최민정의 캠퍼스 모습. [사진=헤럴드경제 스포츠팀]


# 보통 이 칼럼은 스포츠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 역사적 사실 등 인문학적 얘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책’이 없다. 2018 평창 올림픽 이틀째인 10일, 3000m 계주에서 쇼트트랙 여자대표팀이 보여준 감동이 그 자체로 훌륭한 인문학 교재이기 때문이다. 그저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이 역대급 명승부의 주인공인 최민정(20)이 운동선수로는, 아니 요즘 젊은 세대로는 드물게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점만 살짝 언급하고 싶다. “학교(연세대)에서 수업 듣고 집으로 가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제가 워낙 정적인 걸 좋아해서 독서가 저한테는 딱 맞더라고요. 소설이 부담 없이 읽기 좋은 것 같아요.” 대학 새내기인 지난해 5월 최민정이 소개한 자신의 대학생활이다.

# 심석희-최민정-이유빈-김예진(원래 계주 순서)이 나선 한국팀은 10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1조에서 4분06초387의 올림픽기록으로 결승에 진출했다(결승은 20일 오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26개 중 21개를 쇼트트랙에서 수확할 정도로 이 종목 세계 최강이다. 여기에 4년 전 소치 올림픽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중국을 제치고 1위로 골인한 간판 심석희,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4관왕을 노리는 최민정 등이 포함된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니 말이다.

# 2위만 해도 결승 진출이니 편하게 볼 이 경기가 요동친 것은, 아니 선수 자신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들까지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경기 초반 3번째 주자 이유빈이 넘어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면서부터다. 초반이라고 해도, 넘어지면 순식간에 한 바퀴 가량 뒤처지는 까닭에 부담이 크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당황하지 않고 다같이 분발했다. 못 해도 반 바퀴 이상 뒤졌지만 착실히 추격해 최민정이 3위, 김예진이 2위를 만들었고, 심석희가 7바퀴를 남기고 1위로 나섰다. 실수를 만회하는 것을 넘어 올림픽신기록까지 세우며 1위로 골인했으니 드라마가 된 것이다. 쇼트트랙을 좀 아는 사람들은 ‘2002년 김동성의 분노의 역주를 능가하는 역대급 레이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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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성지순례'를 해야 할 장면이 될 것 같다. 10일 경기에서 최민정(오른쪽)이 넘어진 이유빈의 손을 터치하고 있다. [사진=osen]


# 이 감동은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자세히 알면 더욱 커진다. 3000m 계주(남자는 5000m)는 한 바퀴가 111.12m에 달하는 링크를 4명의 선수가 27번 돌아야 한다. 순서는 상관이 없지만 스피드 유지를 위해서는 4명의 체력안배가 중요하다. 그래서 4명의 선수가 차례로 뛰고, 선수 한 명은 ‘경기→휴식→커버→준비→경기’ 순으로 플레이한다. 1, 2번 주자는 한 번 더 뛰고, 특히 2번은 마지막 주자로 2바퀴를 뛰어야 하는 까닭에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가 나선다. 최민정이 그 역할을 맡았다.

# 이유빈은 4번째 주자 김예진에게 터치를 하기 직전에 넘어졌다(23바퀴가 남은 상황). 바로 그 전에 레이스를 한 최민정은 휴식을 마치고 막 커버를 들어가려고 했다. 불상사가 나자 최민정이 가장 빨리 반응했다. 서둘러 이유빈의 몸을 터치하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계주순서가 엉망이 됐고, 최민정-이유빈-최민정의 순서가 된 까닭에 최민정의 체력부담이 극에 달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최민정은 거리를 좁혔고, 이에 자극받은 나머지 선수들도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기적의 역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얼마나 숨이 가빴을까? 최민정은 경기 직후 방송사와의 현장인터뷰 때 “도저히 인터뷰 못할 것 같아요”라며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그러면서도 성실히 인터뷰에 응했다). 플레이도 인터뷰도 모두 감동이었다.

#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와 진짜 이건 감동이다’, ‘최민정 스피드 실화임?’, ‘넘어지고 올림픽신기록 클라스가 다르구나’, ‘댓글 잘 안 남기는데 계주 보고... 최민정 특히 최고다’, ‘소름 돋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보다!’ ‘최민정 자기 차례도 아닌데 터치하고 뛰는 거 봐라. 진심 멋있다’, ‘훌륭하다. 메달 못 따도 좋으니 다치지만 마세요’... 지켜 본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4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이 경기에는 위기에 대한 침착한 대응, 자기희생, 협동심, 불굴의 의지 등 정말이지 많은 교훈이 담겨 있다. 최민정처럼, 쇼트트랙선수들처럼 한다면 기업이든, 정부든, 가정이든, 학교든 참 살맛날 것 같다. 올림픽에서는, 스포츠에서는 이런 걸 배워야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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