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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백과사전 97] 코스 설계의 역사

  • 기사입력 2018-02-0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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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코스 설계가는 온갖 솜씨를 짜내 골프장 코스를 만들고, 골퍼는 온갖 기량을 짜내 코스를 정복하려 애쓴다.

‘올드맨 파’라는 명칭은 골퍼가 매 홀에서 전장과 난이도에 따라 파를 지켜내기 위한 코스와의 싸움을 지칭하는 데서 나왔다. 1번에서 18번 홀까지 희로애락이 펼쳐지는 무대인 코스를 특징짓는 건 결국 디자인이다.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따라 소름끼치는 재미가 생길 수도 있고,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벙커와 전장, 해저드의 위치에 따라 홀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다.

영국의 링크스에서부터 오늘날의 듄스에 이르기까지 코스 디자인은 다양하게 변모했고, 그중에 멋진 홀과 디자인 컨셉트는 오늘날까지 빛을 발한다. 베스트 코스를 결정하는 요소도 디자인에 있다. 코스 설계가의 역사, 한국의 골프 설계가, 그리고 역사에 모범이 된 대표적인 홀의 특징을 통해 좋은 코스의 형성 조건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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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제임스 브레이드 등은 선수이면서 설계가였다.

1파운드에서 백지수표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코스 설계사는 19세기말 미국으로 골프가 전파되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됐고, 오늘날 아시아를 중심으로 첨단 트렌드가 시험되고 있다.

골프 초창기인 19세기 중반까지 목동 골퍼들은 들판을 발견하면 말뚝을 박아 티잉 그라운드로 썼고, 그린으로 할 만한 구역은 잔디를 더 깎고 홀컵을 만들었다. 근처에 양떼를 방목한다면 양들이 그린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철선을 둘렀다.

‘코스 설계’가 전문적인 직업 영역으로 들어온 건 125년에 이른다. 1860년 디오픈이 시작된 이후 영국 여기저기서 코스가 생기자 골프 선수가 설계를 부업으로 하면서부터다. 1894년에 올드 톰 모리스가 코스를 설계하는 대가로 일당 1파운드에 여행 경비 약간을 받은 게 코스 설계가 전문성을 인정받은 최초의 기록이다.

1899년 런던에 있던 골퍼 100명이 100파운드씩 모은 뒤 디오픈에서 2승을 거둔 윌리 파크 주니어에게 3000파운드를 주고 런던 서편의 히스 벌판에 서닝데일을 조성하게 했다. 당시 파크가 이익을 얼마나 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에게 설계를 위임하는 방식은 이때 처음 등장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선수가 아닌 토공과 건축 지식을 가진 전문 설계가가 등장한다. 영국에선 해리 콜트, 찰스 H. 앨리슨, 톰 심슨 등이 활약했다. 이전까지 골프 코스란 해안가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링크스를 단순 개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들은 숲속 파크랜드에서 1~18번까지 길을 내는 ‘루트 플랜’을 시도했고, 이것이 코스 설계의 중요 요소로 대두됐다.

그들의 작업 영역은 영국을 넘어 독일, 프랑스, 일본까지 번져나간다. 해리 콜트와 찰스 앨리슨은 영국을 벗어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함부르그팔켄스타인 등 오늘날 독일의 대표 명문 코스를 만들었고, 톰 심슨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띠, 몽폰테인, 퐁텐블로우 등 파리 인근의 고아(古雅)한 코스들을 설계했다. 찰스 앨리슨은 30년대 일본에 머물면서 아시아 최고 명문으로 자리잡은 고베의 히로노(廣野), 도쿄의 가와나(川奈), 도쿄GC를 설계했다. 이들 코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볼륨 있는 벙커 스타일을 일본 사람들은 ‘아리손 벙커’라 불렀다. ‘앨리슨이 만든 벙커’에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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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B.맥도날드는 시카고 컨트리클럽 등 미국 코스의 초기 바이블들을 설계했다.


미국의 클래식 시대
오늘날 전 세계 코스의 절반인 1만6000여 곳이 미국에 있다. 따라서 골프 코스 설계의 역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 코스의 터전을 닦은 이는 찰스 B. 맥도날드였다. 그는 눈썰미 탁월한 설계가이면서, 미국 아마추어선수권 첫회 대회의 우승자이기도 했다. 동시에 미국골프협회(USGA) 창설자의 한 명이기도 하다.

맥도날드의 대표 코스는 1894년 개장해 미국의 가장 오랜 18홀 코스로꼽히는 시카고CC, 톱100골프코스에서 7위에 선정된 명문인 내셔널골프링크스(1911년) 등이다. 스코틀랜드식 코스 설계 철학과 방식을 신대륙인 미국에 잘 구현한 결과 후대 코스 설계가들은 그의 코스를 끝없이 모방하고 재창조했다.

1900년대부터 30년대 중반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를 코스 설계의 클래식 시기로 부른다. 수많은 코스와 전설적인 설계가가 등장했다. 오늘날 <골프다이제스트>의 ‘미국 100대 코스’중에서도 상위권의 상당수는 이 무렵 만들어졌다.

‘최고로 어려운 코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조지 크럼프는 뉴저지 인근의 소나무숲을 사들여 코스 길을 조각하듯 깎아나갔다. 애석하지만 크럼프는 4개 홀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과로에 지쳐 세상을 떴다. 영국의 해리 콜트가 나머지 홀과 코스 공사를 마무리해 1918년에 개장한 곳이 오늘날 미국 최고 코스로 꼽히는 파인밸리다. 빽빽한 송림 사이로 드문 페어웨이와 나대지같은 벙커가 넘쳐나는 이 코스는 오늘날 ‘샷 가치’, ‘난이도’, ‘디자인 다양성’ 등 베스트 코스 평가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얻어 미국 100대 코스 1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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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내셔널과 사이프러스포인트를 설계한 알리스터 매킨지.


오늘날 코스 설계의 명인으로 여겨지는 이는 스코틀랜드 요크셔 출신 앨리스터 매킨지(1870~1934)다. 호주에 머물면서 로열멜버른, 킹스턴히스 등 오늘날 호주의 대표 명문으로 꼽히는 코스를 설계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사이프러스포인트, 오거스타내셔널을 설계했다. 그밖에 우루과이, 아르헨티나까지 생애 60여개의 골프장을 설계했다.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반도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사이프러스포인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힌다. 베스트 코스를 평가하는 기준 항목 중 ‘심미성’에서 항상 최고 점수를 받는다. 마스터즈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은 ‘기억성’과 ‘코스 관리’ 항목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도널드 로스는 넓은 대지에 코스를 만들면서도 그린은 항상 작고 교묘하게 꾸몄다. 페어웨이를 대각선으로 배치하는 크로스 벙커를 만들어 골퍼에게 전략과 도전을 자극하도록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대형 골프장 리조트인 파인허스트를 비롯해 오클랜드힐스, 세미뇰 등을 설계했다.

잭 내빌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3.1운동이 불꽃처럼 일어날 무렵 몬테레이 해안가에 페블비치 링크스를 창조했다. 알버트 틸링허스트는 윙드풋 웨스트 코스를 통해 후세 설계가에게 인상적이고 화려한 홀 레이아웃의 모범을 보였다.

이밖에 윌리엄 플린은 세계 톱100코스 2위에 뽑히고 올해 US오픈이 열리는 ‘미국식 링크스’ 코스 시네콕힐스를 설계했다. 이처럼 80~100년 전에 만들어진 클래식 코스들은 오늘날까지 미국 100대코스 최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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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로빈슨은 핀크스를 아들인 테드 로빈슨 주니어는 휘슬링락을 설계했다.


베이비붐, 설계의 황금기
세계 2차 대전이 지나면서 미국엔 베이비붐과 더불어 골프 인구가 급증했다. 두 명의 걸출한 스타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와 피트 다이에 의해 현대적 코스들이 마구 쏟아졌다. 각종 투어가 생겨나고 TV중계가 되면서 그와 함께 다양한 ‘기술’과 ‘개성’이 코스에 특징 지워졌다.

RTJ는 이종 잔디를 심어 페어웨이, 러프, 그린의 코스 구역을 구분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페어웨이에 배치한 수많은 벙커, 거대한 워터 해저드가 그의 설계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골프다이제스트>의 ‘미국 100대 코스’중 48위인 페블비치의 스파이글래스힐을 필두로 10여 개 코스를 대표 작품으로 남겼다.

RTJ시니어가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면 아들인 RTJ주니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골프 코스를 설계한’ 이로 손꼽힌다. 동생인 리스 존스와 세계를 두루 돌면서 코스를 설계했다. ‘자연과의 조화’를 디자인 철학으로 표방한 RTJ주니어는 특히 아시아에 작품이 많으며 일본에만 후지CC 등 15곳, 한국에서도 레인보우힐스, 롯데스카이힐제주 등 7곳에 이른다.

피트 다이는 그의 특징인 ‘아일랜드 그린’이나 철도 침목을 벙커 턱이나 코스 안에 활용해 넣어 시각적으로 구분을 지었다. 그린 주변에 언덕이나 웅덩이를 만들어 그린을 미스하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다이는 ‘생각하는 골프’를 표방했는데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소우그래스TPC 스타디움 코스와 휘슬링스트레이츠 등 난이도 높은 코스를 보면 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지 이해된다. 객기부리며 함부로 덤볐다간 더블보기조차 못하는 코스들이 즐비하다.

2천년대를 지나면서 유럽에서 코스 증설은 드물었고, 리노베이션이 주를 이룬다. 호트리 가문이 3대에 걸쳐 500여 곳 이상의 코스를 설계하면서 리노베이션에도 전통을 쌓은 대표 가문이다. 그린키퍼였던 프레데릭 호트리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전쟁으로 허물어진 코스를 개보수하면서 설계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2차 대전 이후엔 아들인 프레드 W. 호트리가 프레드&선을 창업해 전후 코스 복구는 물론 워털루, 마운트미첼을 개장했다. 손자인 마틴 호트리는 라힌치, 로열애버딘, 로열버크데일 등을 리모델링했다.

70년대 이후로는 톱 프로가 코스 설계 영역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문 설계가와 합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이름을 빌려주면서 코스 조형과 레이아웃에 플레이어적인 의견을 냈다. 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와 호주의 그렉 노먼, 피터 톰슨 등은 자국에서 상당수의 코스 설계를 맡으면서 대표적인 설계가로 자리잡았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남아공 등 이제 막 골프가 생겨나고 주목받는 국가에서는 톱 플레이어의 이름값에 프리미엄을 얹어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선수 중에 설계가로 가장 성공한 이는 잭 니클라우스다. 미국100대 코스 15위에 오른 뮤어필드빌리지를 비롯해 전 세계 24개국에 400여곳의 코스를 설계했다. 그중 300여곳은 설계에 직접 참여했고 그 이름값의 증거로 사인까지 해준 ‘시그니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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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계의 거장인 피트 다이(맨 오른쪽)와 신시아 다이, 페리 다이까지 한 가족이 모두 코스 설계가다.


현대 설계가들의 아시아 러시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비싼 설계가를 꼽으라면 톰 파지오다. 프로 골퍼이자 설계가였던 삼촌 조지 파지오와 함께 캐나다 최고의 코스로 꼽히는 내셔널을 조성하면서 설계업에 뛰어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를 만들어달라’는 설계자의 주문을 잘 따른 성공작이었다.

1945년생인 톰 파지오는 그 뒤로 승승장구했다. 타이거 우즈가 골프 선수의 몸값을 대폭 올려놓은 수퍼 스타이듯, 파지오는 코스 설계가의 몸값을 올리고, 코스를 새로운 게임장으로 여겨지도록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황량한 사막에 숲과 개울이 흐르는 섀도우크릭을 개장하자마자 미국의 갑부들이 그에게 ‘백지수표’를 들고 몰렸다. 1990년 개장한 이 코스는 미국 100대코스 26위에 당당히 올라 있다.

90년대 이후 부동산 붐도 그의 몸값 급등에 기여했다. 대표작 중 알로시안클럽이 미국 100대 코스 15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총 15개 코스가 들어 있다. 페어웨이는 넓지만 워터해저드나 까다로운 벙커를 많이 설치하면서 시각적인 경외감을 주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형인 짐과 아들인 톰 파지오 2세에 이어 설계가 3대를 이룬다. 파지오 2세는 국내에서는 여주의 트리니티를 설계했다.

톰 도크는 뉴질랜드의 바다 절벽에 앉혀진 케이프키드내퍼스와 같이 자연과 어울려 웅장해지는 코스를 만든 설계가로 이름 높다. 그밖에도 미국 오리건 해안을 따라 흐르는 퍼시픽듄스, 호주 태즈매니아 해안가의 반부글듄스 등이 수작으로 꼽힌다.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설계가들이 요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바글바글 거린다는 점이다. 잭 니클라우스와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는 이미 예닐곱 곳씩 설계했다. 카일 필립스는 스코틀랜드에 킹스반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야스링크스에 이어 한국에서는 톱100골프코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코스 90위에 선정된 사우스케이프오너스를 설계했다. 친환경 코스 설계로 유명한 마이클 허잔은 춘천에 클럽모우를 디자인했고, 40대 젊은 설계가인 데이비드 맥레이 키드는 여수경도를 설계했다.

테드 로빈슨이 제주도에 핀크스를 설계했고, 그 아들인 테드 로빈슨 주니어는 춘천에 휘슬링락을 설계했다. 피트 다이의 아들인 페리 다이는 충남 천안에 우정힐스를 설계했다. 백지수표로 이름높은 톰 파지오의 아들인 톰 파지오 주니오는 경기 여주의 트리니티를 설계했다. 세계적인 설계가들이 2대에 걸쳐 한국에 모두 최근 최고의 설계 작품들을 냈다. 전 세계 설계의 트렌드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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