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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신년사를 대신하는 ‘체육인 서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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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자서전의 표지. 한국에서는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1989년 2년 후인 1991년 출간됐다.


# 1991년에 나온 ‘달라이 라마 자서전’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그가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 나온 책이다). “내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미국 과학자들에 의하면, 어떠 의학자가 발표한 연구논문이 ‘나를, 나의, 내가’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기자라는 직업 탓에 뭐든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어쨌든 1979년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 1935년생)는 미국 하버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 교수를 만나, 수행 중 특별한 생리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에 참여했다. 아마도 이때 ‘자기중심적 사람의 높은 심장마비 발병’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 달라이 라마가 감동 깊게 들은 이야기는 1984년 발표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래리 셔비츠(Larry Scherwitz) 교수의 실험결과다. 셔비츠 교수는 ‘나’에 집착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아보기 위해 600명의 대화를 녹음했다. 이를 정밀 분석했는데, ‘나(I)’, ‘나의(my)’, ‘나를(me)’, ‘내것(mine)’ 등의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를 세어보았다. 그 결과 ‘나’에 관한 말수와 심장병 위험성이 정확하게 비례했다. 말끝마다 ‘나’를 가장 많이 반복하는 사람들의 심장병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었다. 자기 편향적인 사람들(Self-Focused People)이 심장질환에 잘 걸린다는 얘기다. 이것이 달라이 라마에게 소개됐고, 또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전파된 것이다.

# 2004년 10월에 나온 미담기사 하나. 제목은 ‘검찰도 감동한 남몰래 선행…구속위기 기업인 자선활동 밝혀져 불구속’이다. 일부내용을 보면 이렇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2일 현대건설과 한국수자원공사간 로비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아온 토목업체인 우성산업개발 이기흥(50) 회장을 불구속수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중략) 검찰이 이처럼 이 회장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기로 한 것은 회사 압수수색과정에서 발견된 수십장의 감사편지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2년여 전부터 강서구와 도봉구 등 서울 6개구와 경기도 하남시의 독거노인과 장애인 680가구에 매달 쌀 700여포대를 지원하는 사업을 남몰래 펼쳐왔다. 또 현대아산병원의 사회복지팀과 연결,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난치병 청소년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수술비로 매달 3500만원씩 기부해왔다. 그동안 이 회장의 기부혜택을 받은 환자는 100여명. 또 이 회장은 대학생 23명에게 매년 880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는 장학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고시원에 들어간 법대생에게는 월 50만원씩의 장학금도 지급해오고 있다. 이같은 자선사업으로 이 회장 개인이 1년에 사용하는 돈만 10억원에 달한다. (중략) 이 회장은 “2001년쯤 회사부도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반신마비가 돼 한동안 고난을 겪은 뒤 회사를 회생시키고 나면서부터 평소 마음속에 품어왔던 자선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쑥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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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0일 진천선수촌 성화봉송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 이 내용은 대부분의 국내 주요 일간지가 보도했다. 그리고 미담과는 별개로 기업인 이기흥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2007년 8월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그해 12월 갑자기 상고를 포기하며 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6일 만에 법무부의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돼 사면 복권됐다. 확실하게 선행은 했지만, 범죄도 저지른 것이다. 이 사면이 ‘특혜’가 아니었냐는 비판이 지금도 제기된다. 워낙에 오지랖이 넓기로 유명한 이기흥 회장인 까닭에 미담기사도 ‘작업’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가 선행을 했고, 아직도 그 선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기흥 회장은 사단법인을 통해 매년 10억 원이 넘는 돈을 좋은 일에 쓰고 있다. 그의 호인 서담을 따 서담장학금, 서담상이 시상된다.

# 대한체육회장은 월급이 없다. 업무에 필요한 판공비만 책정돼 있다. 그래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체육 쪽에도 개인돈을 좀 쓴다. 도대체 얼마나 부자일까? 이기흥 회장은 1985년부터 이민우 신민당 총재 비서관을 지냈고, 1989년 레미콘 제조업체인 ㈜우성산업개발을 세워 사업을 했다. 골재로 돈을 벌었는데, 특히 영종도 인천공항을 건설할 때 제법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또 이때 번 돈으로 경기도 하남시 인근에 넓은 땅을 사놨는데, 몇 년 후 이곳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수천 억 원으로 키워졌다. 이후 이 회장은 “나 일 안한다. 이제 베풀면서 살 것”이라고 선언했고, 블교(조계중앙신도회장을 연임 중이다)와 체육에 관련된 일에 매진하고 있다. 2000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고, 2010년에는 수영연맹 회장을 맡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선수단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통합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기 전으로, 구속수감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이기흥을 제거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를 이겨내고 회장이 된 것이다.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에 답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궁금했기에 그동안 알아본 것이 위의 내용이다. 추가적으로 법명이 보승(寶僧)이고, 4살 때 장티푸스로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됐는데, 절에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았났다는 얘기 정도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기흥 회장은 한국 체육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사무총장, 태릉선수촌장 인사가 구설에 올랐고, IOC위원을 셀프 추천했다고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고(사실은 많은 사람과 의논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등 절차를 다 거쳤다), 한때 김종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적반하장격으로 ‘체육계 적폐’라고 억지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체육계 일자리 창출, 체육계 재정자립, 생활체육 활성화 등 과제가 쌓여 있다. 확실한 것은 크고 작은 과(過)에도 불구하고 회장이 발로 뛰며 열심히 일 했다는 것은 많은 체육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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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이기흥 회장이 '나눔'과 관련해 불교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BBS 화면캡처]


# 얼마전 한 송년회에서 이기흥 회장의 지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기흥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두 가지죠. 첫 째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베풀 만큼 넉넉하다는 것, 둘째는 사람들을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단점이기도 해요. 아쉬운 게 없으니 마음이 너무 좋아요. 웬만하면 다 받아주려고 하니 조직이 긴장감을 잃을 수 있죠. 밑에서 호가호위하는 이들이 생기기도 하죠. 안타까워요, 그렇게 고생하면서 대한체육회장이 됐는데, 당신은 여전히 이리저리 뛰며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고, 돈은 계속 쓰고 말이죠. 반면 그 주변 사람들은 이 회장 그늘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죠. 그러면서도 ‘냅도유, 괜찮아유’를 연발합니다.”

# 예전에는 연초가 되면 스포츠 미디어들이 대한체육회장 등 주요 인사의 신년사를 싣는 게 관행이었다. 특히 2018년처럼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아주 필수적이다. 몇몇 미디어가 이기흥 회장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얘기들이 나왔다. 빤한 신년사 대신 이기흥의 속살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결국 이 회장처럼 좀 손해를 보고 사는 게 정말 현명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의 이득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더욱이 타인을 착취하고 고통을 가한다면, 그 결과 당신 자신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반면 당신이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 즉시 당신 마음 속에 내적 힘이 강화됩니다. 용기와 의지력이 생기고, 두려움과 의심은 감소됩니다. 남의 이득을 배려하는 것은 실제로 그 자신의 미래에 엄청난 이익이 됩니다.” 2018 무술년은 한국 체육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 모두가 ‘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심장병에 걸릴 확률도 준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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