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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골프가 귀와 귀 사이의 게임 임을 보여준 쭈타누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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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는 에리야 쭈타누깐. [사진=LPGA]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에리야 쭈타누깐(22)이 시즌 최종전인 CMW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017시즌을 해피 엔딩으로 마감했다. 에리야는 최종라운드 17번 홀에서 5.4m 거리의 버디를 집어넣은 뒤 클로징 홀인 18번홀에서 4.5m 거리의 버디를 연거푸 떨어뜨리며 60cm짜리 파 퍼트를 놓친 렉시 톰슨을 울렸다.

에리야는 지난 6월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뒤 슬럼프를 겪었다. '호사다마'라고 메뉴라이프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는데 곧바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사이 메이저 대회에서 4개 대회 연속 컷오프를 당했다. 지난 주 블루베이 LPGA에서 거둔 공동 16위가 메뉴라이프 클래식 우승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롤러코스터 같던 올해 에리야는 그러나 최종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에리야는 8월 말 열린 KLPGA투어 한화클래식에선 꼴찌로 컷오프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이틀간 19오버파로 꼴찌인 126위를 기록하며 예선탈락했다. 초청료를 받고 출전했으나 갤러리가 안쓰러움을 느낄 정도로 샷이 엉망이었다. 샷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갈 때마다 갤러리 사이에선 탄식이 쏟아졌다. 에리야는 경기 막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연습 스윙도 없이 곧바로 샷을 해 빈축을 샀다. 하지만 그녀가 느꼈을 자괴감은 초청료 이상의 상처를 줬을 것이다.

형편없는 경기를 하던 에리야는 그러나 불과 70여일 만에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나흘간 버디 17개에 보기 2개로 15언더파를 쳤다. 드라이버를 잡지 않고 평균 275.25야드의 장타를 날렸고 페어웨이 안착률 83.9%에 그린 적중률 75%를 기록했다. 스코어 메이킹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라운드당 평균 퍼팅수도 27.75개에 불과했다. 역전우승을 이끌어낸 최종라운드의 18홀 퍼트수는 26개였다.

에리야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슬럼프의 ‘골프지옥’에서 벗어났을까? 2년 전 겪은 슬럼프가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어깨부상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무려 10개 대회 연속 컷오프라는 수렁에 빠졌다. 하지만 부상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깊었다. LPGA투어 동료들은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슬럼프의 원인이 모두가 두려워 하는 ‘드라이버 입스’였기 때문.

해결책은 단순했다. 입스의 원인인 드라이버를 버리는 것이었다. 여자 선수들이 다루기 힘든 2번 아이언이 솔루션이었다. 힘이 장사인 에리야는 2번 아이언으로 티샷해도 캐리로 230야드, 지반이 딱딱한 코스에선 런까지 포함해 270야드를 쳤다. 드라이버를 잡는 웬만한 선수들보다 거리가 더 나갔다.

티샷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 근심 걱정이 사라졌고 그린 공략도 정교해졌다. 그 결과 작년 일년간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포함해 최다승인 5승을 거두며 상금타이틀과 올해의 선수상, 100만 달러의 CME 글로브 보너스를 차지했다. 오랜 고생 끝에 선수생활의 꽃을 피운 것이다.

올해 찾아온 슬럼프에 대한 해결책도 같았다. 영국을 통일한 아더 왕의 보검인 엑스칼리버처럼 에리야에게 2번 아이언은 어둠을 꿰뚫는 창이었다.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티박스에서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2번 아이언은 그런 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티샷이 페어웨이에 떨어지면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고 티샷에 대한 확신이 생기자 쇼트게임과 퍼팅 등 골프 게임의 다른 부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역전우승은 그 결실이었다.

에리야는 폐쇄공포증을 앓았다. 그 두려움으로 2015년엔 페어웨이 폭이 아주 좁은 코스에서 열린 숍라이트 클래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로 인한 마음의 병인 드라이버 입스를 해결한 게 2번 아이언이었다. 2번 아이언에 대한 신뢰가 강해 경기를 앞두고 종종 2번 아이언을 도둑맞는 악몽까지 꿨다. 에리야는 연습 때나 프로암 경기 때는 요즘도 드라이버로 티샷을 한다. 하지만 경기에 들어갈 때는 골프백에 2번 아이언이 잘 꽂혀있는 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골프 경기는 귀와 귀 사이의 게임’이란 보비 존스의 명언은 에리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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