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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人] 양찬국 스카이72 헤드프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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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는 골프에 인생의 모든 것을 내건 투사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생(生)골사(死)! 골프 때문에 처자식 다 버리고 일년내내 골프장에 살아도 즐거운 삶이 있다.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스카이72골프리조트 양찬국(68) 헤드 프로의 골프 인생이 그러하다. 내기 골프꾼에서 시작해 교습가와 방송해설자에 시니어 투어프로까지, 최근엔 우즈베키스탄의 명예골프협회장에 선임되기까지 46년의 드라마틱한 골프 역정을 2회(상-하)에 걸쳐 다룬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의 양찬국 프로는 JTBC골프의 인기 레슨 프로그램 ‘노장불패’ 나 SNS상의 ‘양싸부’로 더 잘 알려진 스카이72골프장 헤드 프로다. 평일엔 인천 영종도 숙소에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부터 캐디 교육 라운드를 한다. 여름이면 오후 4시반부터 야간 캐디 교육 라운드까지 하고, 주말이면 아카데미 헤드 프로로서 골프장 손님과의 라운드를 하느라 36홀을 소화한 적도 많다. 1년에 대충 400라운드 내외를 돈다. 양손에 굳은살이 박인 지 오래다. 지금까지 했던 라운드를 세면 1만3000라운드는 족히 넘을 것이다.

젊은 시절 미국 이민 후 내기 골프꾼으로 살다 티칭 프로에 도전해 미국골프티칭프로 USGTF를 따고, 골프 교습가로 나섰다. 2001년 한국에 들어와서는 골프장 헤드 프로에, 방송 해설자, 아카데미 원장으로 활약하다 2012년 시니어투어 선수가 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스코티시오픈에서 통산 2승을 올린 이미향의 스승이면서, 지금도 꽤 많은 주니어를 키워내고 있다.

최근에는 그에게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25일부터 3일까지 9일간 우즈베키스탄 골프 협회의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의 내용이 재미나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리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컵에 출전할 골프 선수들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프로 심사에 통과한 선수들과 우즈벸 골프 후원회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우즈베키스탄 골프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내년 3월에는 우즈베키스탄골프협회 주최 ‘오픈챔피온십’을 개최할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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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부터 우즈베키스탄골프협회 명예 회장에 선임되어 인증패를 들고 포즈를 취한 양찬국 프로.


46년 전 골프를 시작하다
양 프로는 공부는 관심 없고, 잘 놀고 운동(싸움까지 포함해)도 잘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70년 초반 파월열차를 타고 베트남 전에 참전했는데 백마부대 29연대 소속이었다. 거기서 26개월을 복무하다 오른쪽 종아리에 총탄 파편을 맞고 상이군인으로 귀국한 뒤, 74년 전역했다(한참 세월이 흘러 고엽제 환자 증서를 받았고 지금도 종종 후유증에 라운드가 망가진다).

군대 다녀온 뒤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세상 다 산 듯한 스물네 살 아들이 안타까웠던 부친은 재활을 위해 워커힐 골프연습장에 데려갔다. 태권도 공인 6단을 땄을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났던 터라 연습장에서 맹렬하게 연습하고, 실전도 부지런히 나간 결과 4개월17일만에 싱글 핸디캡 골퍼가 됐다.

청년 양찬국은 이름깨나 있는 다양한 고수와의 내기 골프로 세월을 보냈다. 서울 근교에 골프장 수가 너덧 개에 불과하던 시절이라 또래 골프 친구는 없고, 부친의 지인들과 주로 라운드 했다. 당시 내기에서 잃는 적은 거의 없었다. 또래 아마추어 골퍼 중에서는 손꼽을 실력이었다. 당시 국내에 골프대회라 해봤자 고작 서너 개에 불과했으니 프로 골퍼는 선망되는 진로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동아일보사> 광고부 직원으로 일하던 80년 2월5일이었다. 당시 정국은 79년 12.12사태가 터지고 난 뒤 급박하게 돌아갈 때였다. 그와 절친이자 보안사에 근무하던 모 씨가 설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무렵, 그를 광화문 금란다방으로 급히 불러낸 뒤 ‘아무 말 말고 다음날 첫 비행기로 김포 가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라’고 했다. 사연은 군 복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전에서 겪은 일과의 보고서(당시 신군부의 지도자급을 비판한) 내용이 어쩌다가 신군부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양 프로는 ‘당시로서는 무조건 미국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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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 파크의 윌슨 골프장은 '서울CC'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미국 이민 20년의 애환
31세에 경황없이 LA로 도망간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골프뿐이었다. 그리피스파크윌슨골프장으로 갔다. 그곳은 서울컨트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한국 교포가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80년대 이전에 이민 간 교포중에도 골프를 하는 이들이 한둘 생겼다.

거기서 내기 골프가 있었고 하루에 47달러를 벌었다. “당시 하루 최저임금이 2달러75센트이던 시절인데 내기 골프로 하루 100달러 이상을 벌었으니 얼마나 괜찮은 돈벌이인가. 주말에 대회가 생기면 나중에는 타 당 5000달러까지 판돈이 커진 적도 있었다.”

그는 한 달 뒤 가족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본격적인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사업을 하며 돈도 제법 모았다. 부인이 사업 수완이 있어 버클리대학 앞에서 커피숍부터 시작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갔고, 나중에는 실리콘밸리의 종업원 600명이 있는 아이티 IT 관련 회사 내 카페테리아를 맡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 그는 골프의 길에 더 빠져들었다. 한국과는 달리 부킹이 어렵지 않은 미국이었다. 카페테리아 일을 마치면 오후에는 자유롭게 라운드를 했고, 또 91년엔 USGTF 자격을 따고 전문 티칭 프로의 길로도 나섰다. 실리콘밸리에서 교습 생활을 했는데 그는 인기 티칭 프로였다. 삼성 직원들이 많이 파견 나와 있었는데 그의 재미난 입담과 알기 쉬운 레슨 덕에 인기가 높았다. 한 명을 가르치면 알음알음으로 가족 친지 동료로 학생이 불어나곤 했다.

현지 방송국에서 오후 4시30분부터 한 시간 ‘양 사부의 골프 세상’이란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매주 월요일에 주말 한인 골퍼의 내기 골프 전적을 발표하고, 실명으로 누가 알 깠는지 밥은 어디서 먹었는지 시시콜콜 알려 인지도도 높았다. 새너제이 산호세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캘리포니아 연안을 따라 ‘양 프로’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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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는 나이보다 훨씬 젊게 입고 생각도 젊게 한다.


미국 생활 10여년이 지나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에도 종종 오갈 수 있었다. 사업 상 한국에 들어와서도 골프 라운드는 빠지지 않았다. 91년 당시 국내에서 ‘임흥순 씨가 용인 프라자CC에서 하루 198홀을 돌아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해 신문에 나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수는 고수끼리 통하는 법. 동향인인 임 씨를 수소문 끝에 만나 라운드도 했고, 임 씨의 색다른 도전에 자극받아서 그 역시 기록 갱신에 도전한 적도 있다. “그분은 샷을 하고난 뒤 오토바이 타면서 돌았고, 세 홀마다 캐디를 갈면서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나는 92년 7월 덕평CC에서 캐디백을 메고서 60홀을 하루에 다 돌았다. 친구들이 ‘저놈 언제 죽나’보자 지켜봤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그때가 한참 골프에 물이 올랐을 때다. 당시 골프 기록을 꼽자면 홀인원만 총 5번(이건 물론 2인 이상이 정규 코스에서 할 때다. 혼자 라운드 할 때도 2번 했다). 베스트 스코어 66타도 그때 쳤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볼을 쳤고, 해 떨어지면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렇게 골프에 미쳐 있으니 집안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부인은 바람이 났다. ‘잘못이라곤 열심히 골프한 것 밖에 없는데, 인생이 심하게 꼬여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에 빠져 사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97년 8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집에선 골프백과 옷만 들고 나오면서 이런 각오를 새겼다. ‘골프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 앞으로 내 골프를 보다 생산적으로 만들겠다. 골프에서만은 이름을 남기겠다.’ 그리고는 하루 3갑씩 피우던 담배와 즐기던 술을 단박에 끊었다. 이후로 레슨에만 집중했고, 내기 골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혼한 부부가 미국이라는 타향에서 같은 도시의 동일한 생활 반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래서 20여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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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는 미국서 내기골퍼로 이름을 날리다가 교습가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양싸부 가라사대 : 내기 골프의 8가지 비결
1. 사탕은 깨먹지 말고 빨아 먹어야 한다.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상대가 타격을 받을 수 없는 만큼씩만 따먹어야 한다. 한꺼번에 큰 돈을 잃게 되면 상대는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내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2. 내 돈을 따먹는 사람을 잡으려고 애쓰지 마라. 복수심만으로는 계속 잃다가 상심하게 된다. 내가 맞설 수준이 되면 상대방은 미리 알고 도망간다. 주변에서 쉽고, 오래 따먹을 수 있는 호구를 발견해 정성으로 양성해야 한다. 이게 내기 골프의 먹이 사슬이다.

3. 내기 골프에서는 첫 홀부터 버디를 하는 것이 아니다. 판돈이 점점 커짐을 알아라. 전반 보다는 후반에, 그것도 후반 몇 홀에서 집중적으로 따는 거다.

4. 상대가 아웃오브바운즈(O.B.)가 났거나 완전히 망가지는 홀에서는 나도 함께 (일부러라도) 보기를 해서 상대가 아쉽게 하고, 피해 복구에의 미련을 갖게 해야 한다.

5. 컨시드를 잘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더블 판을 부를 수 있고 또 결정적인 순간 퍼트를 미스할 수 있다. 아슬아슬한 홀에서 마크하고 쪼면 상대방이 지겨워한다. 휴머니즘이 있는 내기꾼이어야 한다.

6. 엄살도 허세도 안 부린다. 돈 잃어도 화 내지 않는다. 흐물흐물 가면 내기에서 압박을 안 받는다. 대신 난조에 빠진 상대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하지마라. 정신을 차리면 내가 죽는다. 잃고 있다고 위로도 하지마라. 내기 골프는 끝나봐야 안다.

7. 누구누구의 돈을 땄다고 전적을 자랑하지 마라. 계획된 내기 골프에 걸릴 수 있다. 언제나 피해는 부풀리고 소득은 줄여서 말해라.

8. 충분한 현금을 갖고 내기 골프에 임하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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