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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골프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3대 역전드라마 (3) - 2009년 PGA챔피언십, 호랑이 잡은 양용은

  • 2017-10-09 12:43|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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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PGA챔피언십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는 양용은. 그는 아시아인 첫 메이저 우승자가 됐다.

해리 바든을 꺾은 프란시스 위멧, 벤 호건을 이긴 잭 플렉의 이야기와 함께 3대 역전 드라마로 선정된 선수는 바로 양용은이었다. 미국 미디어가 선정했고,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양용은을 골프역사를 바꾼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인정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를 너무 쉽게 잊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이거를 위한 2009년 PGA챔피언십

2009년 제91회 PGA챔피언십은 미네소타 주의 해즐틴 골프클럽에서 개최되었다. 7,674야드, 파72로 셋팅 되었는데, 2002년 이곳에서 개최되었던 PGA 챔피언십 때보다 전장이 300야드 이상 길어졌다. 시합 전부터 미디어의 관심은 오로지 타이거가 메이저 최다승인 잭 니클라우스의 18승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느냐였다. 전문가들은 타이거가 이곳에서 열린 2002년 PGA 챔피언십에서 1타차 2위를 했고, 최고 수준의 장타자인 까닭에 그를 우승후보 1순위로 지목했다.

라운드가 끝나고 타이거는 67타를 쳐서 예상대로 1타 차 선두에 나섰고, 2라운드에는 70타로 7언더파가 되어 4타차 선두가 되었다. 양용은은 타이거에게 6타 뒤진 공동 9위로 따라가고 있었다. 3라운드에서 타이거는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며 71타에 그쳤는데, 양용은이 데일리 베스트인 67타를 치며 6언더파가 되어 아일랜드의 해링턴과 함께 2타차 공동 2위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타이거의 낙승을 예상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3라운드 이후 선두에 나섰던 14번을 모두 우승을 했던 타이거의 기록으로 보아 이번에도 쉽게 우승으로 마무리 될 것 같았다. 어떻게 몇 타 차이로 우승하느냐가 관심이었다. 메이저 3승의 해링턴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양용은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기자회견에서 해링턴이 “양용은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유일한 위로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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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콤플렉스를 집어삼킨 흰색.' 18번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한 후 기뻐하고 있는 양용은. 뒤로 타이거 우즈의 모습이 보인다.


무명의 다크호스


1972년 제주도에서 8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양용은의 가정은 부유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보디빌더의 꿈을 키우며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 골프와의 첫 인연이었다. 19세부터 골프채를 잡아 독학으로 스윙을 배우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 티칭프로를 하며 골프를 연마해서 1997년에 투어프로 정회원이 되었고 2002년 한국투어 첫 우승을 한 후 2005년까지 일본 투어에서 3승을 올렸다.

2006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유러피언 투어의 메이저 대회였던 HSBC챔피언십의 출전권을 받은 것이 미국 진출의 꿈을 가진 양용은에게 첫 번째 행운이었다. HSBC 챔피언십에서 2위 타이거를 2타 차로 제압하면서 우승, 유러피언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동시에 세계랭킹도 38위까지 수직 상승하였다. 혼자서 골프를 배운 지 15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Q스쿨을 통해 미PGA투어에 진출했지만 2008년 상금순위 157등으로 부진, 다시 Q스쿨로 가야 했다. Q스쿨을 1타 차로 겨우 통과한 양용은은 2009년 3월 PGA 혼다 클래식에서 드디어 첫 승을 거둔다. 한국인으로는 최경주에 이어 두 번째였다.

당대 최고의 스타 vs ‘코리언 듣보잡’

다시 2009년 PGA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타이거와 함께 챔피언조로 플레이 한다는 소식을 들은 양용은은 흥분되고 긴장되는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009년 8월 16일 오후 2시 45분 마지막 조로 라운드에 나서는 타이거와 양용은이 악수를 나눴다. 타이거는 붉은색 상의에 바지와 구두, 모자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다른 선수들이 보기만해도 겁을 먹는다(일명 ‘레드 콤플렉스’)는 그 복장이었다. 양용은은 모자부터 구두까지 흰색을 착용했다. 백의민족인 한국인을 상징하는 흰색이었다. 꿈과 믿음으로 무장한 양용은은 기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이거와의 매치는 팔각의 링에서 싸우는 격투기가 아니다. 그가 9번 아이언으로 나에게 스윙하는 것도 아니다. 지더라도 골프게임에서 한 번 지는 것뿐이다. 나는 잃을 것이 많지 않다.”

타이거 우즈 : 33세, 21세에 메이저 첫승을 하고, 메이저 14승을 포함 PGA 투어 70승, 세계랭킹 1위, 최고의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
양용은 : 37세, 22세에 겨우 파를 깰 수 있었고, PGA 투어 1승, 세계랭킹 110위, 신참 캐디 몬테시노스.

기록으로 보아 승부가 뻔할 것 같았던 두 선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3번 홀에서 양용은 버디, 4번 홀 타이거 보기로 동타가 되자 양용은의 사기가 조금 올라갔다. 5번홀에서 보기를 한 양용은이 다시 1타를 뒤지게 되었다. 선수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6번 홀에서 경기위원이 두 선수에게 플레이 속도가 느리니 앞 팀을 따라 잡으라고 말했다. 양용은은 “나 때문이 아니고 타이거 때문이다”라고 대답할 여유를 가졌다. 8번 홀에서 타이거의 보기로 동타, 11번 홀 타이거의 버디로 다시 1타 차 선두, 12번 홀 타이거 보기로 동타가 되는 등 혼전이 계속되자 이제 타이거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승부의 분수령은 파3 13번 홀이었다. 타이거는 3미터 버디 퍼트에 실패했고 양용은 2미터 파 퍼트를 성공시켜 공동선두를 유지하며 기세를 올렸다. 티샷으로 온그린이 가능한 짧은 파4, 14번 홀에서 먼저 티샷을 한 양용은의 공이 그린 가까이에 멈췄고 타이거의 티샷은 벙커로 갔다. 칩샷을 한 양용은의 공이 홀을 향해 천천히 구르더니 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양용은 이글, 타이거 버디로 68홀 만에 양용은이 처음으로 선두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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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골프백 세리모니. 양용은이 2009년 PGA챔피언십 우승 직후 골프백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역사가 된 3번 하이브리드 샷

상황이 이러니 2002년 이곳에서 열렸던 PGA챔피언십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마지막 4홀을 모두 버디로 마무리했던 타이거도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파3 17번 홀에서 어이없는 3퍼트 보기를 범해 2타 차로 달아날 기회를 날려버린 양용은은 1타차 선두로 18번 홀에 도착했다. 475야드 파4 홀에서 양용은의 티샷이 왼쪽 퍼스트 컷 206야드 지점에 멈췄고 타이거는 오른쪽 페어웨이 197야드의 완벽한 지점에 멈췄다. 마지막 어프로치 샷에 승부가 걸렸는데 양용은은 높은 나무를 넘겨야 하고 깃대 바로 앞에 있는 큰 벙커도 넘어야 했다. 바람을 체크하기 위해서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는 양용은의 앞에서 그랜드 스탠드 위로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였다. 바람도 계산에 넣어야 했다.

중계방송 해설자는 양용은의 샷이 몇 배나 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3번 아이언 대신 하이브리드 클럽을 가지고 다니는 양용은은 망설임 없이 3번 하이브리드를 선택했다. 부드럽게 친 그의 볼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나무를 넘었고 벙커까지 넘어서 깃발 1미터 앞에떨어지더니홀에서 2.5미터 거리에 멈췄다. 이 샷은 PGA 투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샷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 양용은의 18번홀 세컨드 샷 영상



쇼크를 받은 타이거의 5번 아이언 샷은 왼쪽 러프에 떨어져서 보기를 했고 양용은이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3타차 역전 우승이 확정되었다. 우승 양용은 70타 8언더파, 2위 타이거 우즈 75타 5 언더파였다.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승 후 골프백을 높이 들어 올리던 우승 세리모니 사진은 전 세계 미디어를 탔다. 클럽하우스에서 일했던 어느 웨이터가 이렇게 말했다. “락커룸 근처의 TV 앞에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양용은을 응원했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한국보다는 세계가 더 인정하는 양용은

역사를 뒤돌아 볼 때는 한국사와 세계사의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한국사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골프 영웅의 계보는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연덕춘, 한국오픈과 KPGA 챔피언십 각 7회 우승을 달성한 한장상, KPGA 43승과 한국의 유일한 그랜드슬램에 빛나는 최상호, 미국 PGA 대회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했고 한국 최초 PGA 우승을 포함하여 8승을 올리며 한국 골프의 국제화의 길을 열었던 최경주이다. 연덕춘-한장상-최상호-최경주의 뒤를 이을 영웅이 나와야 한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태어난 최고의 골프영웅은 양용은이다. 왜냐하면 그의 우승이 세계 골프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이기 때문이다. 타이거는 양용은에게 역전패 한 이후에 PGA 대회에서 8승을 추가했을 뿐 다시는 메이저 우승 근처에 가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골퍼 타이거 우즈는 양용은의 일격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용은의 승리를 잊어가고 있지만 그의 위대한 역전드라마는 세계 골프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PGA클래스A의 어플랜티스 자격을 획득했다. 또 골프심판에 도전해 2015년 가장 어렵다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의 룰 레벨3 테스트까지 통과했다(국제심판). 현재는 대한골프협회(KGA) 경기위원을 맡고, 대학 등에서 골프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원서를 독파하면서 <더 멀리, 더 가까이>(2013), <더 골퍼>(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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