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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병역의무, 피할 수 없으면 이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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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전역 후 지난 주 신한동해오픈에서 복귀한 배상문. 이 대회에서 컷오프된 배상문은 공식 인터뷰에서 “저 안 죽습니다. 꼭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영상인터뷰 캡처]


골프 선수의 전성기

위대했던 골프 영웅들도 전성기가 지나면 우승에서 멀어져 갔다. 선수 본인은 아직도 많은 우승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믿지만 최고의 시간은 지나기 마련이다. 위대한 선수의 전성기는 첫 번째 메이저 우승과 마지막 메이저 우승 사이의 기간을 말하는데, 보통은 10년 내외의 기간에 끝난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골프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예외도 있었는데 니클라우스가 24년, 게리 플레이어가 19년의 전성기를 누렸다. 타이거 우즈는 평범하게 11년 만에 끝냈다.

전성기는 거의 모두 30대에 끝나는데 더 이상 우승을 못하는 이유는 체력이나 샷의 기술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을 모두 소진하여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력도 체력처럼 지치고 상처가 나면 치료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체력 저하는 본인이 느끼고 다른 사람이 발견해서 도와줄 수 있지만 정신력이 한계에 가는 것은 본인이 모르거나, 느끼면서도 부정하고 코치나 팬들도 알 수 없어서 훨씬 심각하다.

골프는 정신력의 게임이다. 정신력이 한계에 갔을 때 가장 처음 나타나는 현상은 퍼트가 안 들어가는 것이다. 퍼팅은 특별한 기술이 없고 집중력에 의해 성공률이 좌우되는데 정신력이 약해지면 집중을 할 수 없게 된다. 위대한 골퍼들도 짧은 퍼트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한숨지으며 사라져 갔다. 메이저 4승을 올리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어니 엘스도 2016년 마스터스 첫 라운드 1번 홀에서 60cm짜리 파 퍼트를 6 퍼트 만에 겨우 넣었다. 2m 버디 퍼트를 7번 만에 넣은 엘스는 머릿속이 하얗게 된 그 때의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벤 호건은 50세가 넘어서도 최고의 샷을 가지고 있었지만, 퍼팅을 할 때면 돌처럼 굳어져 버렸고 3퍼트의 숫자가 늘면서 우승이 불가능해졌다.

정신력도 혹사된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하면서 공부를 포기하고 골프에 올인한다. 부모도 골프 이외에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아이를 강하게 압박한다. 반면에 미국의 골프 선수들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다른 스포츠를 즐기며 골프를 배움으로써 기량이 천천히 늘지만 정신력의 소모는 훨씬 적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훨씬 많은 골프 신동들이 탄생하는데 그들이 중학교 때까지 전국을 휩쓸다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체력을 보강하는 보약만 먹이고 정신력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스트레스로 인한 상처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선수는 이미 '번 아웃' 되었고, 기진맥진한 정신력을 처음처럼 강하게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프로가 된 선수들도 10년 이상 정신력을 혹사한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10년 이상 프로 세계에서 정신적인 휴식을 가지지 못한 채 견뎌야 하는 압박감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이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명선수로 끝날 위험이 크다.

■ 이제는 전설이 된 엘스의 7퍼트


병역의무를 이용하라

한국의 (남자)골프선수들은 누구나 군에 입대해야 한다. 한창 기량이 무르익었을 때 군에 입대하는 것은 큰 손실이고 결정적인 장해 요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군입대 기간은 약해진 정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좀체 치료할 기회가 없는 정신력을 병역의무를 수행하면서 점검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기량의 저하는 기술적인 문제이고 훈련으로 쉽게 극복되기에 별것이 아니다. 시합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2년을 쉬고 온다면 본인도 모르게 정신력이 회복되어 훨씬 강하고 장수하는 선수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상급 프로선수들은 이미 병역의무를 조용히 마치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최진호, 박상현, 김승혁, 강경남, 맹동섭 등 많은 선수들이 군입대 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력이 훨씬 강해져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선수들 사이에 "군대에서 현역으로 복귀하면 꼭 우승할 기회가 찾아 온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도 '군=정신력 회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 PGA투어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병역의무 유예기간을 인정하여 제대 후 1년간 투어 시드를 인정하는 것도 우리 선수들이 이용할 수 있는 큰 혜택이다.

군 입대는 골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정신력 치료를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언제가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시간일지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이용하라.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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