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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철의 링딩동] 정말 이색적인 복싱경기 '정마루에게 걸린 5천만원'
9월 9일로 열리는 한국 웰터급 최강자 정마루와 공식 프로전적 3전인 강신준의 경기에는 자그마치 5,000만원의 대전료가 걸려 있다. 정마루의 기본 대전료는 500만원이고, 추가로 판정승을 거두면 500만원, KO(또는 TKO)시킬 경우 4,500만원을 추가로 받는 조건이다. 지급 시한은 경기 후 3일 이내로 합의했다. 강신준은 이번 시합을 주최하는 L프로모션의 대표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한국권투평의회(이하 ‘평의회’라 칭함)에서 이 시합을 주관하고 심판은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이하 ‘복싱M’이라 칭함)에서 2명, 평의회에서 2명씩 배치하되 주, 부심의 배정은 평의회에서 결정한다.

이번 경기가 승패를 떠나 공식 경기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평의회가 사단법인이 맞다 할지라도 대외적인 공신력에 대한 부분은 의문투성이기 때문이다. 이 시합에 심판 2명을 파견하는 복싱M은 이번 대회와 관계가 없다. 복싱M의 대표선수인 정마루는 한 경기에 대한 계약을 했을 뿐이며 그 경기가 단지 스파링 또는 돈이 걸린 이벤트로 그칠 수도 있어서 정식경기에 대한 판단은 경기 후로 유보한 상황이다. 강신준에 의하면 평의회는 2년 전인 2015년 10월에 설립되었고 출범 시 첫 번째 대회, 작년 4월에 두 번째 대회를 개최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 등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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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웰터급 최강자 정마루(오른쪽)를 상대로 자신감을 보인 강신준은 계약서 공증 직후 계약금 500만원을 정마루 측에 송금했다.


계약 성사 과정


두 달 전인 7월 3일, 정마루의 매니저 윤석정 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황대표, 어떤 녀석이 마루한테 5천만원 줄 테니까 시합 한 번 하자고 하는데?”

한바탕 웃음이 오갔고 그저 농담이려니 했다. 그런데 조건이 제법 상세했다.

“일단 100만원 주고, 마루가 이기면 900만원을 더 주고, 마루가 자신을 KO시키면 4,9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하네. 100만원은 바로 준다고 하는데 이걸 믿어도 되나?”

결국 농담처럼 시작된 이벤트는 현실화되었고 계약금 조율 끝에 이틀 뒤인 7월 5일 강남의 한 법조타운에서 희한한 경기 계약서가 변호사에 의해 공증되었다.

SBS 프로복싱 서바이벌 시즌1 한국 웰터급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3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정마루(와룡체육관)는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복싱M과 자동으로 3경기가 계약된 상태였다. 정마루의 아시아 타이틀매치를 준비하던 복싱M 측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정마루와 윤석정 매니저의 생각은 달랐다. 강신준이 제시한 금액이 워낙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공증 직후 계약금 500만원이 정마루 측에 송금되면서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시합 날짜는 당초 8월 26일로 합의하여 공증서에 명시했고, 2주에 한해 한 번만 연기가 가능하므로 9월 9일이 넘어가면 이 계약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강신준 측에서는 9월 9일 아산시 선문대학교에서 경기, 9월 8일 박용 신경외과에서 계체량을 한다고 통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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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5일 공증 직후 윤석정 매니저, 정마루, 강신준(오른쪽부터).


도대체 강신준은 누구?

강신준은 2008년 11월 당시의 KBA(재단법인 한국권투협회, 현재의 KBA와는 다름)에서 주관하는 경기에서 김가람에게 2회 KO승을 거두고 프로에 데뷔했다. 1개월 후에는 KBC 등록체육관으로 이적하여 코리안 콘텐더 대회에 출전, 라이트급 16강전에서 염형주에게 4회 판정패하고 탈락했다. 3년 후인 2011년 12월 거제도에서 남현규에게 2라운드에서 원 펀치 KO승을 거둬 3전 2승(2KO) 1패가 공식 기록의 전부다. 이후 6년간 국내 프로무대에서 강신준의 선수경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본인은 3전을 더 치렀다고 설명한다. 2008년경 KBA 주관 시합, 2015년 10월, 2016년 4월 두 번의 한국권투평의회 주관 시합에서 모두 KO승하여 6전 5승(5KO) 1패라는 것이 본인의 주장이다. 그는 과거 한 손으로 미군을 눕힌 길거리복서로 SNS 상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강신준은 전화 인터뷰에서 “상대를 보면 느낌이 오는데 자신이 있다. 정마루는 맷집도 좋고 힘을 쓸 줄 알지만 펀치력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일방적인 판정으로 이기거나 KO도 가능할 수 있는데 맷집이 좋아서 초반 KO만 아니면 나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판정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질 경우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할지 의문이라는 질문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많은 돈은 아니고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다. 자신이 없으면 공증까지 설 필요도 없었고, 협회에 공탁을 걸어놓았다. 이 시합을 통해서 뭔가 보여줘야 하므로 가치를 평가할 때 5,000만원은 아깝지 않다”고 일축했다.

정마루는 이번 시합을 앞둔 심정을 말이 아닌 웃음으로 대신했다. 두 번째 도전 만에 강적 김주영을 상대로 한국챔피언에 올랐고,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한층 기량이 업그레이드된 그로서는 단지 돈 때문인 강신준과의 대결이 달가울 리 없지만 프로니까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정 매니저는 “상대가 5,000만원을 걸고 도전할 때는 뭔가 있지 않겠는가? 근데 그 뭔가를 도저히 모르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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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3월 1일 정마루가 한국 웰터급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 왼쪽은 준우승자 정지수.


복싱계의 시선


2주일 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코너 맥그리거의 이색 대결을 승인한 네바다 주 커미션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듯이 국내에서도 이번 시합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10라운드를 뛸 자격도 되지 않는 노장 선수가 거액을 미끼로 자타 공인 현 국내 웰터급의 최강자를 끌어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복서가 아닌 일반인 미군을 상대로 한 길거리 복서의 치기어린 행동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심각한 반응도 있다.

그러나 굳이 색안경을 끼고 이번 경기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강신준은 일반인이 아닌 프로복서 출신이며, 많은 나이에도 본인의 기량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스타가 되고 싶은 열망이든, 노이즈 마케팅으로 복싱 발전에 기여하려는 마음이든, 어쨌든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국내 최강자에게 대결을 신청한 것이니 정마루 입장에서 굳이 이를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이번 경기에 대한 오프라인의 홍보는 거의 없는 가운데 SNS 상에서는 정마루가 강신준을 혼내주기를 바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오늘 오후 5시로 예정된 계체량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내일 저녁에 과연 1라운드 공이 울릴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다만 이번 시합이 정식 경기로 인정받게 될지, 단지 돈이 걸린 이벤트나 비공식경기로 남게 될지는 평의회의 역할에 달려 있다. [SBS프로복싱해설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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