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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행복한 수어통역사' 박진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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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통역사가 800m 은메달을 딴 이무용 선수가 전해준 마스코트 인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농인 관련 스포츠 수어를 시작한 이래 데플림픽 참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단어나 문장을 따라가는 통역이 아닌, 스포츠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의도를 파악하여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상종목 한국수어통역사 박진영(37) 씨는 값진 메달을 딴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참고로 과거에는 수화라고 불렸지만 2016년부터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며 수화도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공식 인정되며 ‘손으로 하는 대화’라는 의미의 수화(手話)보다는 ‘손으로 하는 언어’라는 의미의 수어(手語)가 맞는 용어다.

“장애인의 3대 올림픽인 데플림픽은 패럴림픽과 스페셜올림픽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이 현저하게 낮아 너무 안타까워요. 한국이 종합순위 3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미디어의 관심은 적더라구요. 앞으론 농인들의 스포츠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박진영 씨는 농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 촉구로 입을 열었다.

한국은 2017년 삼순 데플림픽에 역대 최대 규모인 9개 종목 141명의 선수단(선수 79, 임원 46, 수화통역 16)을 파견했다. 선수단은 총 52개의 메달(금 18, 은 20, 동 14)을 목에 걸며 역대 최다 메달 획득 및 3회 연속 종합순위 3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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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 데플림픽에 참가한 육상팀의 단체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진영 통역사.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배운 수어

박진영 씨는 어릴 적 함께 자란 친척오빠와 친척언니가 농인이어서 자연스럽게 수어를 접했다. 언니, 오빠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본격적으로 수어를 배우게 되었고,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어통역사가 되었다. 사실 미술을 전공한 진영 씨는 수어통역사가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수어를 하면서 청인과 농인의 마음을 잇는 다리 역할은 그녀에게 행복을 주었고 포기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내가 웃고 행복하면 자연히 주변도 행복해진다”라는 철학을 가진 박진영 씨는 행복한 수어통역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수어통역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하고픈 말은 “수어통역사를 직업으로 생각하기보단 진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애정이 먼저라는 것이다.

수어통역사가 되려면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필기와 실기로 평가하며 1년에 한 번 시험이 있다. 자격증에 대한 대비는 서울수어(화)교육원과 한국농아인협회의 각 지역 지회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더 나아가 나사렛대학교와 한국복지대학에 수어통역과가 개설되어 전공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수어는 국제수화와 자국수어로 나뉜다. 수어가 나라별로 다르고 수어통역사들은 자국수어를 구사하고, 국제수화를 배우기도 한다. 데플림픽 포함 국제대회에는 국제수어통역사가 따로 각 종목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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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 데플림픽 기간 중 기술회의에 참석한 박진영 통역사.


삼순 데플림픽을 접수한 수어통역사

삼순에서 수어통역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테크니컬 미팅(기술회의)’이다. 육상종목은 3번의 기술회의가 있다. 다른 종목은 1~2번인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시합 전 기술회의는 마라톤 외 육상종목회의, 마라톤종목회의 이렇게 나뉜다. 기술회의 진행자는 종목별 기술감독(TD)이 하는데, 육상 TD는 육상선수 출신의 호주 농인이었다. TD가 진행을 하면 국제수어를 사용하고 한국국제수어통역사(농인)가 한국수어통역사에게 한국수어로 전달한다. 그러면 한국수어를 하는 박진영 씨는 육상감독에게 한국어로 음성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질의응답 때는 역방향으로 질의가 오간다. 기술회의는 시합 전에 규정이나 진행방식에 대한 중요한 회의이고 통역의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모두가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삼순에 가기 전 박진영 씨는 한국체육대학교와 이천훈련원에서 육상선수들과 함께 합숙을 하며 훈련 통역과 선수들 부상 시 병원 통역, 회의 통역 등 다양한 통역을 준비했다. 삼순 데플림픽 현장에서는 훈련 때 감독 및 코칭스텝과 농인인 선수들 간의 통역을 하며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기술회의, 시합 전 선수명단 확인, 주의사항(예를 들어 마라톤은 자신이 원하는 음료를 5km마다 비치할 수 있는데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통역업무), 콜룸(선수시합 대기 장소) 들어가기 등을 통역했다. 또 선수들 부상 때 본부의무실에 동행 통역, 매일 진행하는 육상감독 회의, 일상생활 등 소통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함께 했다.

데플림픽 육상경기는 다른 장애인경기나 청인경기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출발할 때 출발용 화약총 대신 빛을 이용한다. 스타팅 블럭에 레드, 오렌지, 그린의 빛으로 출발을 알린다. 말하자면 신호등 역할을 한다. 레드는 출발 전 대기, 오렌지는 준비, 그린은 스타트를 말한다. 소리대신 시각적으로 인지하게끔 만들어 둔 장치이다. 경력이 많지 않은 선수들은 이 부분이 익숙하지 않아 스타트 실격도 하게 된다. 이번 데플림픽 100m 예선에서 한 조 8명 중 스타트 실격으로 2명만 남아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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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플림픽의 육상 종목 스타트를 시각적으로 알리는 스타팅블럭.


감동의 메달 - 이무용, 오상미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랄까?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와 함께 경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합숙을 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건지.... 선수가 시상대에 오를 때 그 벅찬 감동은 배가 됩니다.”

이번 데플림픽의 육상 첫 메달은 800m의 이무용(고양시청)의 은메달이었다. 이무용은 작년(2016년)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고 첫 데플림픽 출전을 했다. 한국 비장애인 육상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거리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진영 씨는 “이무용 선수는 정말 누구보다 성실하고 예의바른 선수죠. 시상식에서 은메달과 마스코트인형(꽃다발대신 주는 인형)을 받았는데 소중한 마스코드인형을 제게 주었어요. 그리고 4년 뒤에 데플림픽 같이 가서 금메달 따고 마스코트인형 안겨드릴게요”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영 씨는 벅찬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

감동을 선사한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합숙과 데플림픽 51일 동안 박진영 씨와 룸메이트로 지낸 오상미다. “오상미 선수는 4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선수로서 매일 이미지 트레이닝과 훈련일지를 작성했고, 식단까지 정말 치열하게 조절하며 대회에 임했어요. 대회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본부의무실에 같이 다녀오는 등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했죠.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동메달을 거머쥐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오상미가 결승선 통과하고 쥐가 나서 실려나오는 순간 진영 씨는 감독과 뛰쳐내려가서 부축을 했다. 그때 오상미는 “내가 메달 땄어요. 그런데 은메달 딸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라고 말했다. 진영 씨는 “유독 눈빛이 아름다운 선수인데 그날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라고 회고했다.

박진영 씨는 수어통역을 하는 훌륭한 분이 많아서 자신이 인터뷰를 해도 될까 걱정을 많았다. 그만큼 겸손하고, 가슴속 깊이 농인을 사랑하는 수어통역사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스포츠는 선수와 지도자, 팬뿐 아니라 그 주변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장애인스포츠와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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