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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오픈 60주년] 우정(牛汀)을 기리며 - 故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골프

2017년 코오롱 한국오픈이 60주년을 맞았다. 이 기념비적인 의의를 평가하면서 코오롱그룹의 고 이동찬 명예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선행은 모래에 쓰이고 악행은 바위에 새겨진다’는 말이 있다. 선행은 그만큼 쉽게 잊힌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의 선행을 모래가 아닌 바위에 새기고 싶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운문화재단의 우정선행상이다(2001년). 고인의 뜻에 따라, 그리고 대회 60주년을 맞아 골프와 스포츠에 남긴 이동찬 명예회장의 ‘선행’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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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유병철 기자] 내셔널타이틀인 코오롱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는 2003년 이후 우정힐스에서 열리고 있다. 오거스타내셔널GC가 마스터스의 경연장이듯, 한국오픈은 우정힐스가 무대인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 최고의 토너먼트코스로 꼽히는 우정힐스는 그 이름에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을 품고 있다. 우정(牛汀)은 이동찬 명예회장의 아호인 것이다. 참고로 오운(五雲)은 이동찬 회장의 선친인 이원만 창업주의 아호다.

우정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물가의 소’를 뜻한다. 소는 불가(佛家)에서 볼 때 ‘인간의 본래 자리, 참다운 마음’을 뜻하며, 정도를 지키면서도 여유롭고 풍요로운 인간 본성을 찾아야 한다는 이동찬 명예회장의 바람을 담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이 아호는 이동찬 회장의 가계사와 연관이 있다. 여주이씨(여강이씨)인 이동찬 회장은 1922년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우각동(리)에서 태어났다. 우각(牛角)은 여주이씨 오이공파의 집성촌으로, 동방사현의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의 5번째 손자 오의정 이의택이 16세기 우각 인근의 그 유명한 양동마을로 이주한 이래 형성됐다고 한다. 양동마을과 우각동은 왜란 때 노비들이 도망가거나 폭동을 일으킨 예가 없을 정도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유명한 곳이다. 이동찬 회장은 고향의 정신을 담아 우(牛)를 자신의 아호에 넣었다. 그리고 충남 천안에 세계적인 코스를 목표로 첫 삽을 뜨면서 ‘명문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철학을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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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1992년 기업인 최초로 국내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을 받았다.


2014년 11월 8일 이동찬 회장이 향년 92세로 타계하자 많은 보도가 나왔다. 기업인으로는 물론이고, 골프와 스포츠에 대한 업적도 많이 조명됐다. 스포츠의 경우 대한농구협회장, 마라톤 육성, 2002 한일월드컵 초대 조직위원장 등이 그의 이력에 포함됐다. 골프는 11년간(1985년 2월~1996년 2월) 대한골프협회장(제9~11대)을 맡아 한국골프의 발전을 이끈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 골프규칙 정비(1985년 골프규칙교실), 눈부신 각종 국제대회 우승(1988년 남자 단체 이후), 한국여자오픈 신설,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 골프용품개발 시작(이상 1987년), 한국오픈 후원(1990년 이후), 골프백서 <한국 골프의 오늘과 내일> 출간, 천안 우정힐스 개장(이상 1993년) 등이 이동찬 시대에 이뤄졌다.

그런데 정확히 따지면 고 이동찬 회장은 협회장 11년만 골프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한국의 골프발전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대한골프협회(KGA)의 창립과 함께 했다. KGA는 1959년 출범했지만 사단법인으로 정식인가를 받은 것은 1966년이었다. 1965년 KGA창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되는데, 여기에 이동찬 회장이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동찬 회장은 당시 한국오픈이 시작된 서울컨트리클럽의 이사이자 회원이었다. 이동찬 회장은 2014년 명을 달리할 때까지 골프에 대해 애정을 쏟았으니, 1965년부터 따지면 만으로 49년 햇수로 50년이나 골프발전에 헌신한 것이다.

실제로 이동찬 회장은 1966년 11월 개장한 뉴코리아골프장의 5인 주주 중 한 명이었다. 한국골프가 향후 눈부시게 성장할 것을 내다봤지만, 그룹 소유의 골프장건설보다는 전반적인 골프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용품을 개발하고, 선수를 후원하고, 대회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은 1993년 우정힐스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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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우승자 이강선 프로에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는 고 이동찬 명예회장.


이동찬 회장은 1987년 국내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골프용품개발팀을 발족했고, 1989년에 엘로드 골프브랜드를 론칭했다. 비싼 외국브랜드 대신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국산용품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코오롱이 만드는 엘로드 등 골프용품과 의류는 1986년부터 지금까지 골프 국가대표와 상비군에 지원되고 있다. 강수연 한희원 박세리 김미현 등 한국의 전설들이 주니어시절 엘로드의 후원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최상호, 최광수, 강욱순, 박현순 등 한국 최고의 프로골퍼들이 전성기에 코오롱 소속으로 투어를 뛰었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선수들에 대해 후원을 명품대회 개최로 확장했다. ‘좋은 대회가 많아져야 선수와 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1987년 한국여자오픈을 창설해 여자골프 활성화에 기틀을 마련했고, 국내 최고의 대회인 한국오픈이 열악한 재정으로 개최가 힘들어지자 “내가 죽기 전까지는 한국오픈을 후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오픈을 코오롱 이름하에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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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 때 이동찬 명예회장(앞줄 가운데)이 한국을 빛낸 여자프로들과 포즈를 취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미현, 박세리, 박지은, 안시현.


이동찬 명예회장은 운명을 달리하기 전해인 2013년까지 우정힐스를 찾았고, 유지를 이어받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도 정성껏 한국오픈을 돌보고 있다.

특히 이웅열 회장은 2000년대 중반엔 미LPGA 대회인 ‘코오롱 하나은행 챔피언십’의 국내 개최를 이끌었고 코오롱 한국오픈에 세계 최고의 골퍼를 잇달아 초청하면서 한국골프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닉 팔도, 폴 로리, 세르히오 가르시아, 비제이 싱, 리키 파울러, 로리 매킬로이 등이 한국오픈을 찾았고, 이는 최경주 양용은의 미PGA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이상은 높게 갖되 겸허한 자세로 이를 정복해나가는 것을 기업이념으로 삼았다. 기업인 최초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장한 깊은 철학이 여기에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동찬 명예회장이 애정을 쏟은 한국골프가 그의 철학처럼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자신(22년 개띠)과 육십갑자가 같은 한국오픈(58년 개띠)의 60주년. 아마 하늘에서도 특유의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우정힐스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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