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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일본의 ‘17세 용 사냥꾼’이 한국탁구에 전하는 메시지

  • 2017-04-20 17:14|유병철 기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지난 18일부터 인천 남동체육관에서는 국제탁구연맹(ITTF) 코리아오픈이 열리고 있다. ‘사드 여파’인지 세계 최강 중국이 불참해 예년에 비해 다소 김이 빠졌지만, 마침 지난 16일 중국 우시에서 아시아선수권이 끝난 까닭에 국내외 탁구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딱 좋았다. 물론 한국 정상은(삼성생명)의 마롱 격파 등 준우승 쾌거도 화제를 모았지만, 중국 땅에서 중국의 1~3장을 거푸 꺾으며 만리장성을 허문 일본의 17세 소녀 히라노 미우는 단연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아시아챔피언의 자격으로 코리아오픈에 출전했으니 더욱 그렇다.

2000년 이후 중국의 주전선수들이 출전한 국제탁구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가 우승하는 것은 아주 드문, 심지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돼 버렸다. 단식의 경우, 세계선수권은 2003년 파리대회의 베르너 쉴라거(오스트리아), 올림픽은 2004년 아테네에서 유승민(한국)이 유일했다. 여자는 아예 없었으니, 별일이 없으면 남녀 개인전(단식,복식)을 비롯해 단체전까지 중국이 우승을 싹쓸이하는 것이 무슨 법칙처럼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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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헌 보람할렐루야탁구단 감독이 20일 코리아오픈 현장인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제자 히라노 미우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히라노 이펙트


일본의 여고2년생 히라노는 물리학법칙과도 같이 견고한 중국의 아성을 만화영화처럼 무너뜨렸다. 먼저 8강에서 세계 1위 딩닝을 3-2로 꺾었다. 이전까지 히라노는 딩닝을 상대로 이기기는커녕 단 한 게임(세트)도 뺏은 적이 없었다. 이어 히라노는 4강에서 주위링(2위), 결승에서 첸멍(5위)을 3-0으로 일축하며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올랐다. 일본열도가 흥분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언론까지 ‘늑대가 나타났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경계령이 내려졌다’며 크게 보도했다. 서구 쪽도 히라노에게 '차이니스 드래건 슬레이어(Chinese dragon slayer)'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히라노가 중국을 상징하는 '용'을 잡는 사냥꾼이란 뜻이다.

한국탁구는 몇 년 전만 해도 남녀 모두 일본에 앞섰다. 하지만 이제 여자는 확실하게 뒤졌고(우시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서 한 게임도 뺏지 못하며 0-3으로 완패했다), 남자도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이 정반대의 사이클을 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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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남아공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 때 당시 일본 여자주니어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오광헌 감독이 포즈를 취했다. 뒤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는 선수 중 오른쪽이 히라노 미우.


한국지도자가 일본 여자탁구를 일으켰다


흥미롭게도 지난해까지 일본 여자탁구의 중흥을 이끈 한국인 지도자가 있다. 오광헌 보람할렐루야탁구단 감독이다. 무명선수였던 그는 1995년 일본의 작은 대학(슈쿠토쿠대)팀 코치로 들어가 지난해 귀국할 때까지 한국인 지도자 신화를 썼다. 소속 대학팀을 최강으로 만들었고, 2009년 일본 여자탁구대표팀의 코치가 됐고, 2013년부터는 여자 주니어대표팀의 감독도 겸했다. 일본 여자탁구의 10대 돌풍을 이끈 것이다. 지금 세계 탁구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히라노 미우를 비롯, 이토 미마, 하야타 히나(이상 17)를 모두 가르쳤다.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오 감독은 지난해 25년 전통의 미즈노스포츠 멘토지도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히기도 했다.

“히라노의 우승요? 예고된 이변이에요. 제가 2013년 4월 일본 여자주니어대표팀의 코치를 맡았는데, 당시 히라노 등 10대 3인방이 중학교 1학년이었죠. 작년까지 만 4년을 제가 지도했어요. 카데트 및 주니어 대회에서 처음 3년간은 단체전에서 일본이 중국에 졌죠. 꼭 중국을 꺾겠다고 선수들과 다짐했는데, 지난해 12월 남아공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일본 여자팀이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했어요. 일본탁구가 무서운 것은 벌써 세계 정상권에 도달한 이 선수들이 겨우 17살이라는 데 있어요. 한국은 여자는 물론이고, 하리모토를 키우고 있는 남자까지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오광헌 감독은 이번 코리아오픈 기간 중 히라노 등 일본 제자들과 오랜만에 해후했다. 지난해 말 한국으로 들어올 때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까닭에 서로 반가움이 더 컸다. 오 감독에 따르면 히라노는 “예전보다 리시브를 많이 보강했어요. 또 왼손잡이 선수랑 많이 연습해서 자신감이 높아졌어요”라며 스승에게 기량발전을 뽐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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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아시아탁구선수권에서 중국의 1~3장을 모두 제압하며 역대 최연소로 정상에 오른 히라노 미유. [사진=아시아탁구연맹]


이제 시작이기에 더욱 무서운 일본 여자탁구


오광헌 감독은 히라노 등 일본 여자탁구의 황금세대에 대해 흥미로운 일화도 소개했다. “히라노가 작년 미국월드컵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고, 이번에 만리장성을 각개격파했지만 사실 17세 3인방 중 이토 미마의 실력이 제일 좋았어요. 이토가 자질이 좋다면, 히라노는 노력파죠. 둘은 중2때부터 복식파트너였는데, 고2가 된 올해 갈라졌어요. 그만큼 라이벌 의식이 강해진 것이죠. 특히 조금 뒤져 있던 히라노의 경쟁심이 강했어요.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는데, 이토는 정식멤버였고, 히라노는 4번 카드, 그러니까 연습상대로 리우에 갔었죠. 귀국길에 독일에서 일본항공사가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었는데, 이토가 큰 환영을 받은 반면 히라노는 주목을 받지 못했죠. 행사 때 히라노는 아예 밖에 나가 있기도 했는데, 그때 히라노의 행동과 표정에서 ‘언젠가 내가 너(이토)를 이긴다’는 독기가 역력히 드러났어요. 뭔가 저지를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막 중국을 넘으려고 하는 일본 여자탁구는 주목할 만하다. 17세 황금세대의 1~4년 위로 카토 미유(18세), 하시모토 호노카(19), 마에다 미유(20), 사토 히토미(21) 등 실력파가 즐비하다. 여기에 황금세대 밑인 13~14세에 유망주 두세 명이 포진해 있다. 현재 일본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이시카와 카즈미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자신 있냐’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 지금 밑에서 올라오는 뛰어난 일본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내가 나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답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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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 주니어대표팀 감독으로 경기 중 히라노 미유와 작전을 얘기하고 있는 오광헌 감독.


싫어도 배워야 한다

“일본탁구협회는 히라노 등이 초등학교에서 탁구를 시작할 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펼쳤습니다. 전용시설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 합숙훈련을 하고, 일찌감치 해외대회에 파견하는 등 주니어들에게 대대적으로 투자를 했죠. 이에 지도자는 중국을 넘기 위해 연구했고, 선수들은 의지를 키웠습니다. 이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경제적인 탁구’를 표방했습니다. 서브를 강화하고, 리시브의 다양성을 높였습니다. 한 가지 기술에 3~4가지씩 대응책을 가지고 있죠. 순간순간 변화를 주고, 디펜스까지 좋으니 세계 최고의 중국선수들도 위압감을 느끼며 무너지는 겁니다.”

싫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중국의 높은 벽 앞에 좌절만 했던 한국탁구도 일본처럼 (1) 미래를 내다보고 유소년에게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2) 지도자는 억압적이고, 고지식한 탁구를 버려야 한다.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사람은 같은 조건이면 탁구에서 충분히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지금은 한국탁구가 일본의 17세 용 사냥꾼으로부터 크게 자극을 받아야 할 때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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