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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한국탁구와 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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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홍희 ITF총재의 자서전 <태권도의 나>.


# <태권도와 나>. 조금은 발칙한 표현이겠지만 책 제목 중 이렇게 과한 것도 없을 듯싶다. 고 최홍희(1918~2002) 장군의 자서전인데 스포츠의 한 종목, 그것도 국기(國技)로 불리는 태권도를 자신과 대등하게 놓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최홍희는 태권도의 창시자(혹은 아무리 못해도 작명자)이다. 브래태니카 사전에 그렇게 기록돼 있고,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1955년부터 태권도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1965년 대한태수도협회장일 때 공식적으로 ‘태권도’로 개명했다. 최홍희는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해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ITF(국제태권도연맹)를 창설해 태권도 보급에 헌신했다. 박정희의 비서 출신인 김운용이 1973년 WTF(세계태권도연맹)을 만들기 이전의 일이다. 총 3권인 <태권도와 나> 중 가장 빼어난 것은 역시 1권이다. 최홍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태권도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공부 차원에서 읽어봄직하다(2000년 시드니올림픽 직후 최홍희 ITF총재와 인터뷰를 했는데 목소리가 참 꼿꼿했다).

#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장은 호적상으로는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8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졸수(卒壽)’와 ‘동리(凍梨)’로도 불리는 구순(九旬)의 나이인데 지금도 정정하다. 평생 탁구와 함께 살았음에도 요즘도 ‘탁구를 보고 싶다’며 기회가 되면 대회현장을 방문한다. 1956년 일본 도쿄세계선수권 국가대표, 그리고 1960년대초부터 여자국가대표팀 지도자로 변신해 1968년 싱가포르아시아선수권 우승, 1973년 그 유명한 ‘이에리사 정현숙의 사라예보 신화’를 이끌었다. 비록 내홍을 겪으며 중도에 물러나기는 했지만 2004년 2월에는 탁구인 출신 첫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해 2008년 7월까지 한국탁구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탁구이론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이고, 또 사업가로는 일본의 탁구용품인 버터플라이를 35년간이나 수입 판매해 이쪽에서도 대가(大家)를 이뤘다.

# 천영석 회장과 탁구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범위를 ‘탁구용품’으로 한정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버터플라이를 독점 수입한 천 회장의 신남무역은 35년간 한국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일본의 버터플라이 사(社)가 창업자의 사망 후인 2007년 한국시장 직영을 결정했다. 마침 천 회장도 아들 천호성 씨에게 회사경영을 물려준 상황이었는데 사유가 ‘2세 경영에 문제가 있다’였다. 하지만 핑계에 불과했다. 한국시장 매출은 오히려 천호성 씨 때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신남무역은 시넥티스그룹을 만들어 2010년부터 4년간은 아디다스 제품을 판매했다. 말이 수입판매지, 사실상 라켓, 러버 등 아디다스의 탁구용품제작을 주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아디다스 탁구용품은 유럽, 일본, 중국을 제치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그런데 2014년을 끝으로 아디다스가 탁구용품을 접으면서 새로운 도전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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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석 회장(왼쪽)과 아들인 천호성 ITC대표.


# 두 번이나 외국산 브랜드에 당하자, 천호성 씨는 천영석 회장과 의논해 2015년 말 소리소문없이 ITC라는 독자브랜드를 출시했다. ‘천씨 집안의 탁구전문성’이 워낙 유명했기에 여기저기 다른 브랜드가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해왔지만, 홀로서기를 택한 것이다. 이 사이 한국의 토종브랜드 ‘챔피온’은 버터플라이가 일본직영으로 바뀌며 주춤하는 사이 크게 성장했다. 천호성 씨는 ITC라는 브랜드로 챔피온과 건전한 경쟁을 펼쳐 한국 탁구용품 시장을 키울 계획이다. 철저하게 품질제일주의를 택한 까닭에 유승민 IOC선수위원이 ITC에 동참하는 등 시장의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

# “탁구동호인이 100만 명이라고 하는데, 러버 등 탁구용품이 의외로 비쌉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독일과 일본의 다양한 회사들이 좋은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탁구용품은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만 아직도 유독 버터플라이를 고집해요. 엘리트선수들이 그러니 동호인들은 그냥 따라하죠. 아마 저희 아버지가 워낙 버터플라이를 올려놓아서 그럴 겁니다(웃음). 이제 아들인 제가 그걸 깨야 합니다.” 천호성 대표에 따르면 스피드보다는 스핀에 제격인 테너지05(버터플라이 러버)를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라켓도 세계 주요선수들 중 5겹합판을 쓰는 것은 한국선수밖에 없다고 한다.

# ITC를 방문해 천영석 회장과 탁구용품에 대해 취재한 날, 마침 김운용 전 IOC위원(1931년생)이 모 대통령후보의 캠프에 영입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외였다. 어쨌든 태권도의 최홍희와 김운용은 이미 다수의 책을 냈다. 그렇다면 구순의 천영석 회장도 자서전을 낼만하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18일 시작된 코리아오픈에서 한 실업팀 감독이 이렇게 의견을 전해왔다. “내가 천영석 회장을 잘 아는데, 자서전을 내고 싶어 하더라고. 탁구기자를 오래 했으니 조언 좀 해드려.” 일감으로 떠오른 천영석 회장의 자서전 제목은 <한국탁구와 나>였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 제목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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