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스포츠 타타라타] ‘표’밖에 모르는 정치에 대한 스포츠의 저항
이미지중앙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


# 「바우어만 코치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엘리트 선수만 스포츠맨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스포츠맨이지. 우리에게 신체가 있는 한, 우리는 스포츠맨이야.”」 이 구절을 확인하기 위해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다시 펼쳤다(132쪽에 나온다). 나이트는 육상선수 출신이고, 대학 때 미국의 전설적인 육상코치 빌 바우어만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바우어만과 동업해 일본운동화를 수입판매하는 회사(블루리본→나이키)를 창업했다. 여기까지가 1963년 얘기다. 운동(특히 달리기)과 신발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 열정에서 나오는 혜안과 노력이 이후 아디다스를 제치고, 나이키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용품업체로 키운 것이다.

# 지난주 제법 괜찮은 젊은 진보정치인과 우연히 술자리를 가졌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이런저런 정치이슈가 주된 술안주였다. 정권교체가 유력한 상황에서 ‘그 다음이 진짜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나라를 망치고, 마침내 건국 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보다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우리사회의 적폐가 봄날 눈녹듯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스포츠가 업인 까닭에 이 틈에 “왜 우리의 좋은 정치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나? 그러니 최순실 같은 악당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지”라고 드밀었다. 기분이 좋았던 것은 현실에서는 아직 영향력이 적은 이 정치인이 “맞다!”라고 흔쾌히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데, 잘나가는 정치쪽 사람들은 스포츠 얘기가 나오면 대개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논리를 설파하느라 바빴다.

# 이 술자리 이틀 뒤 한국체육대학교의 이종영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내년이면 정년인 이 천상 학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체육복지’라는 말을 툭툭 사용했다. 이런 게 내공일까? 일본보다 1년 빠른 1991년 한국스포츠사회학회 창립을 주도했고, 30년이 넘도록 대학에서 공부와 술, 사람만을 좋아한 노교수는 1992년 자신이 쓴 글을 인용해 ‘여가의 시대’, ‘매슬로의 욕구단계설’ 등을 설명하면서 “결국 우리 시대에는 체육복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아니,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왜 우리네 위정자들은 아직도 이런 걸 소홀히할까 하는 뉘앙스는 확실히 풍겼다.

이미지중앙

1978년 유네스코가 선포한 '국제체육스포츠헌장'.


# 궁금해서 자료를 찾았더니 서구선진국에서는 1960년대 복지사회건설을 위한 요건으로서 생활체육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sports for all(모두를 위한 스포츠)’이라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또 1978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위원회) 총회는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활동에 참가하는 것도 기본적 권리이다’라고 국제체육스포츠헌장을 선포했다. 한국은 체육복지에 앞선 ‘문화복지’가 1996년 정책으로 공식 입안됐으니 ‘체육복지’의 개념도 빨라야 1990년대일 것이다. ‘21세기의 바람직한 삶을 규정하는 새로운 복지의 개념에는 체육복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 체육복지란 연령, 성별,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놀이 등 다양한 체육문화의 혜택을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2006년에 나온 <스포츠와 사회복지>에 나오는 체육복지의 정의다.

#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 숱한 대선후보들이 일자리 창출, 전 국민 안식제(10년 일하면 1년 쉰다), 국가균형발전, 국민소통관제, 청년사회상속제, 4차 산업혁명의 기수 10만명 양성, 육아휴직 최장 3년 등 장밋빛 공약을 내걸고 있다. 심지어 사교육 폐지, 사형집행 등 자극적인 내용까지 나온다. 이들 말대로만 되면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매번 선거 때면 나오는 내용을 새롭게 포장하거나, 표에 안달이 난 까닭에 과장한 수준이다. 정치가 그런 것이니 이해한다. 그런데 유감이 하나 있다. 최순실 일당이 말아먹은 스포츠 영역에 대한 공약은 찾기가 힘들다. ‘닥치고 정치’의 나라 한국은 2017년인데도 1963년의 나이키만도 못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체육복지를 논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는 ‘장미대선’에서 탄핵부역자가 아닌 대선후보 중 체육복지정책이 가장 빼어난 이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속좁은 체육인의 소소한 저항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이미지중앙

제19대 대통령선거 정보.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