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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7] 잉글랜드 서닝데일- 박세리, 신지애의 우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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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닝데일 클럽하우스와 18번 그린 옆 올드 코스.


잉글랜드 서닝데일(Sunningdale) 올드 코스는 한국 여자 골퍼와 인연이 많다. 박세리와 신지애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2001년엔 박세리가 우승하고 김미현이 2위를 했다. 2005년 로열버크데일에서는 장정이 정상에 올랐다. 신지애는 2008년에 서닝데일과 2012년에 로열리버풀에서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는 박인비가 트럼프 턴베리에서 우승하며 한국 선수는 5승을 쌓았다.

짧은 출전 역사에도 불구하고 5회나 우승했으니 한국 여자 골퍼와 인연이 깊다고 할 법도 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닝데일의 우승 현장에 내가 항상 있었고, 그날 우승한 선수들과 함께 축하 사진도 찍고 저녁 식사도 했었다.

영국인들은 서닝데일 올드 코스를 ‘영국의 자랑’으로 삼는다. 인랜드, 즉 링크스 코스와 대별되는 육지에 있는 골프장의 대명사로 불린다. 게다가 15~20cm 정도의 암갈색 잡목인 헤더( Heather)가 페어웨이 가장자리인 B러프 지역을 덮으며, 그 외곽은 세월을 가늠하기 힘든 곧게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올드 코스는 디오픈을 두 번 제패한 윌리파크 주니어(1887, 1898년)와 근처에 위치한 웬트워스 웨스트 코스를 설계한 해리 콜트에 의해 1900년 완성됐다. 그 이후 뉴 코스를 1923년에 오픈했다. 따라서 올드와 뉴, 두 개 코스가 있는데 모두 헤더와 아름드리 소나무로 구성된 인랜드 파크 코스다. 개인적으로는 뉴 코스가 더 길고 도전적이며 코스 전체를 덮고 있는 그 헤더가 구름처럼 페어웨이를 감싸는 이색적인 풍경이 아주 인상 깊고 감동적이다.

서닝데일은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는 멤버만의 프라이빗 익스클루시브 골프장의 대명사다. 지금도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가능하다. 라운드를 하려면 멤버 동반이 필수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멤버 추천만으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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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닝데일을 가득 덮은 헤더.


보랏빛 헤더가 아름다운 곳
서닝데일을 얘기할 때 헤더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년생 잡목으로 군집을 이루고 성장하는데 높이는 20~30cm 정도이며 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이 헤더 군락 전체를 덮어 페어웨이를 제외한 골프장 전체가 보라색 바다를 이룬다. 초록의 페어웨이 가장자리를 그 보라색 헤더가 감싸고, 이를 또 아름드리 소나무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흔히 영국의 인랜드 골프장은 아기자기한 맛은 있어도 장관을 연출하며 아름답다는 느낌은 주기 힘든 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런 감동이 있다. 그래서 영국 사람이 ‘최고의 인랜드 코스’로 인정하는 것 아닐까 싶다.

지금의 클럽하우스는 실제 골프장 건설과 동시에 건축되었으며 아직도 별다른 개조 없이 활용하고 있다. 영국의 골프장이 대부분 그렇듯 라운드를 마치고는 바로 발코니 같은 곳에 앉아 맥주 마시며 라운드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데 이곳도 발코니에서 마지막 홀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닝데일 클럽하우스 역시 18, 1번 홀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는데 발코니를 감싸는 담장 넝쿨이 인상적이다. 역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듯 오래고 깊고 넓은 등나무 줄기가 남쪽 건물 전면을 덮고 있다.

서닝데일이 심혈을 기울이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자연 그대로의 보존이다. 코스 내 보경로(步競路)는 울퉁불퉁 패여 빗물이 고여 있어도 메우지 않고, 아직 카트를 쓰지 않고 심지어 요즘 보편적으로 대여하는 전동 트롤리도 없을 정도로 인공미를 싫어한다.

서닝데일의 로고는 아름드리 오크나무다. 18번 홀 그린과 클럽하우스 사이에 심어졌는데 골프장의 초기 사진에는 작은 나무였지만 지금은 골프장 역사와 함께 나이를 먹어 서닝데일의 상징이 되었다.

아쉽게도 코스가 짧아 남자 프로 대회를 할 수는 없다. 물론 1900년대 초에는 남자대회가 있었다. 디오픈 예선전을 치른 보비 존스(1923, 26, 30년 디오픈 우승)는 66타를 치고 난 후에는 ‘내 집에 옮겨놓고 싶은 코스’라며 극찬을 했다. 파70, 6636야드이니 챔피언 티에서도 다소 짧다. 물론 코스 길이를 늘리는 개조도 가능하지만, 영국인은 조상이 물려준 보물을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을 더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달 소개한 웬트워스와는 대조적이다. 코스의 개조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그렇고, 코스 개방에 대한 기본 입장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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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닝데일 올드코스 10번 홀.


한국 선수들이 우승한 루트
1번 홀(파5, 블랙 티 기준 501야드)은 이글과 알바트로스가 많이 나온다. 내리막으로 형성된 아이피 IP(Intersection Position)에 벙커가 있지만, 아마추어는 그곳까지 닿지 않는다. 따라서 웬만큼 드라이버가 날아가면 내리막이라 굴러서 상당한 거리가 확보된다. 드라이버 샷을 270야드 정도 날리면 세컨드는 통상 200~230야드 정도 남기 때문에 2온이 어렵지 않다.

실제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참가한 많은 선수가 이글 잡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린을 감싸고 있는 벙커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곳 서닝데일 벙커는 특색이 있다. 벙커 턱이 헤더로 덮여 있어서 입구는 잔디지만 출구는 헤더군락으로 덮여 있다. 벙커 턱에 왕관을 씌운 형상인데 자칫 벙커 샷이 짧아 그 헤더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 벙커보다도 더 컨트롤 하기 힘들다. 특히 스윙 스피드가 낮은 여성에게는 곤혹스러움의 연속이 될 수 있다. 샌드웨지 등으로 강하게 임팩트를 주어 폴로스루 없이 탈출해야 한다.

2번 홀(파4 489야드)은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는 파5 홀로 바뀐다. 2005년 영국 여자 골퍼 카렌 스터플스가 이 홀에서 마지막 날 알바트로스를 하고 펄쩍펄쩍 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4일 동안 이글 3개, 알바트로스 2개를 잡아 19언더파로 우승했다. 영국 선수로서는 모처럼 우승했던 그날 많은 영국 사람이 모였던 기억이 새롭다.

4번 홀(파3, 156야드)은 가파르게 언덕을 오르면 생각보다 그린 뒤쪽이 다소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전체적으로 오르막인 그린이 아주 가파르게 그린 입구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핀이 뒤쪽에 위치한다면 다소 여유 있는 클럽으로 공략해야 하고 그린 뒤에서 입구 쪽으로 아주 가파르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5번 홀은 10번 홀과 함께 시그니처 홀로 불린다. 헤더가 무성한 코스에서는 볼 수 없는 폰드가 오른쪽 그린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은 티 박스에서 내려치는 드라이버 샷이 호쾌하다. 이곳 서닝데일이 위치한 토질은 석회질 성분이 많고 습기가 적었다. 따라서 코스 조성 당시에 추가 하수 시설을 만들지 않고도 저렴한 건설비로 골프장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아울러 이 지역은 런던 근교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다소 언듈레이션이 있어 높은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풍광이 멋지다. 건설 당시에는 최적의 입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코스 유일의 폰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린 주위를 감싸는 벙커는 경계해야 한다.

언젠가 이곳 5번 홀에서 동반자의 세컨드 샷이 짧아 그린 옆 물을 지나 그린 앞 20야드 지점에 볼이 떨어졌고, 내 볼은 핀 좌측 5야드 지점에 안착해 손을 들고 기뻐하며 그린 쪽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검은 개가 갑자기 나타나 동반자의 그 짧았던 볼을 물고 그린 위로 달려갔다. 그리곤 내 볼 옆에 내려놓더니 다시 내 볼을 물고 달아났다.

순간적으로 모두 난감해 어쩔줄 몰랐다. 당시 볼을 원 위치에 두고 플레이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는 국외자이기 때문에 개가 옮긴 위치에서 플레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지만, 결국 추정되는 원 위치에서 플레이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볼은 분실구가 되는데, 그런 억울한 경우가 어디 있나? 21여 년 구력에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다소 황당했다.

서닝데일의 시그니처는 10번 홀(파4, 475야드)이다. 곧게 뻗은 내리막 홀이고 그린 뒤로 검은 오두막 그늘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IP 지점 좌우로 벙커가 보이고 역시 그 벙커 턱을 헤더가 덮고 있다. 헤더 군락으로 볼이 들어가면 찾는 것도 어렵지만 찾는 순간 그린을 향해 공략한다 해도 10야드 앞 헤더 군락에 또 빠지는 우를 범한다. 헤더가 깊지 않아서 보기에는 볼이 쉽게 빠져 나올 것 같아도 그게 큰 함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페어웨이 방향으로 10~20야드 목표로 끊어 쳐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항상 두 개의 자신을 발견한다. 도전과 방어의 자신이다. 그러나 헤더 속에서는 반드시 방어의 자신이 되는 게 최상이다. 만약 도전을 해서 실수한다면 그 실수를 금방 잊고 다시 방어의 자세를 취해야 새 기회가 온다. IP 지점이 좁아 보이지만 언덕 위에서 호쾌하게 날리는 드라이버 샷이 중요하다. 코스가 길어 충분한 드라이버 거리 확보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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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닝데일 올드 코스 18번 홀 페어웨이.


17, 18번 홀 피날레가 압권
서닝데일 올드 코스의 시그니처가 5, 10번 홀이기는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17, 18번 홀을 연결하는 오르막을 하이라이트라 생각한다. 이 두 홀은 실제 마지막 승부처이기도 해서 그 아름다움과 함께 승부를 가르는 냉혹함마저 지니는 홀이다. 실제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실수를 해 마지막 날 역전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17번(파4, 425야드) 홀은 오르막으로 숲속의 좁은 공간에 위치해 다소 압박을 준다. 오르막이 주는 부담도 그렇고, 페어웨이 전체를 마치 벙커로 구성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트릭이 있다. 실제 벙커는 페어웨이 우측으로 2개, 좌측에 1개 그리고 그린 주위에 3개가 있지만, 마치 페어웨이 모두가 벙커로 덮여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설계되어 있다. 실제 그 착각으로 인해 대회에서 볼이 오른쪽 벙커로 많이 들어가든지 그 주위에 떨어진다.

18번(파4, 423야드) 홀은 10개의 벙커가 마치 성을 수비하듯 그린을 막아선다. 오르막에 그린 앞 약 100야드 지점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4개의 벙커 때문에 마치 홀 전체가 벙커로 구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실제 샷의 목표를 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린 좌우에 배치된 3개의 벙커가 마지막 승부 홀의 난이도를 높인다.

2008년 청야니를 누르고 우승하던 날 신지애의 세컨드 샷이 오른쪽 턱 높은 벙커에 빠져 보는 이들을 가슴 조이게 했다. 그녀의 벙커 샷이 벙커 턱을 살짝 넘어 그린에 올라가는 순간 한숨을 내쉰 한국 응원단은 지금도 18번 홀에 가면 그 얘기를 하곤 한다. 결국 원 퍼트로 3타 차 승리를 했지만, 그 벙커 턱이 주는 부담을 넘어 승리를 했다는 것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8번 홀 마지막 퍼트를 마감하고, 오크트리 밑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클럽하우스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라운드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헤더가 길게 덮여 있는 장관과 그 헤더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그 악몽이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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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닝데일 뉴 코스.


서닝데일 개요
주소 :
리지마운트 로드 서닝데일 버크셔 SL5 9RR U.K.
전화 : ++ 44 (0) 1344 621 681.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30km 약 30분.
코스 : 36홀(올드, 뉴 코스) 1900년 개장, 올드 코스 파70, 6636야드.
설계가 : 윌리 파크 주니어, 해리 콜트
특이 사항 : 핸디캡 증명서 제출. 남자 18, 여자 24, 전동 카트 없음.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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