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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대한체육회장선거와 제5원소

# 퀴즈 하나. 다음은 한 학술논문이다. 000에 들어갈 인물은 누구인가?‘첫째, OOO은 다양한 체육활동을 통해 조국 독립운동에 힘썼다. 둘째, OOO은 한국 근대스포츠의 초석을 다졌으며 스포츠 외교를 통한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위해 노력했다. 셋째 OOO은 스포츠를 통한 건전한 정신, 강인한 민족을 만들기 위해 애썼으며, 과학적인 체육이론을 역설하며 엘리트 체육을 통한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 노력하였다.'

# 좀 어려울 수 있다. 힌트 몇 개. ▲ OOO은 1912년 11월 YMCA 야구단을 이끌고 일본 원정에 나서 일본 야구 명문인 와세다 대학팀과 친선경기를 했다. 이것이 모티브가 돼 만들어진 영화가 (2002년)이다. 영화 속 이호창(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이 OOO이다. ▲ OOO은 해방 후 조선체육회 회장(현 대한체육회로 11대에 해당)과 조선올림픽위원회(KOC,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전신)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신생 대한민국이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도 OOO 덕이다. ▲ 1947년 OOO이 암살 당하고, 장례식을 치를 때 운구 및 하관을 맡은 것은 손기정 옹 등 체육인들이었다. 가히 ’한국 체육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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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 출마한 5명의 후보. [사진=대한체육회 홈페이지]


# 정답은 여운형(1886∼1947년)이다. 지난 7월 18일 제9회 몽양 학술심포지엄이 '한국 체육의 선구자 몽양 여운형'을 주제로 열렸다. 힌트의 주요 내용은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교수들이 발제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퀴즈의 대상이 된 글은 2011년 한국체육사학회지에 실린 ‘여운형의 체육활동과 사상’(손환 최성진)이라는 논문의 국문초록에서 따왔다. 독립운동가, 정치가로 익히 알려진 여운형은 역대 대한체육회장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00년 역사(1920년 조선체육회로 출발)를 앞둔 대한체육회의 수장으로 대통령(노태우), 재벌총수(정주영), IOC 넘버2(김운용), 존경받는 체육인(민관식) 등 37명이 거쳐갔지만 대부분 너저분한 정치의 종속변수였기 때문이다.

# 한국 체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오는 10월 5일 연 4,000억 원을 주무르는 ‘스포츠대통령’인 제40대 대한체육회장선거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61),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62), 장정수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64), 장호성 단국대 총장(61), 전병관 경희대 교수(61) 등 5명이 출마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가나다순, 이하 존칭 생략). 선거전이 뜨거워지면 다음과 같은 각종 ‘설’과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 정부, 즉 문체부가 후보를 찾다찾다 장호성을 어렵게 낙점했다(체육계 널리 퍼진 통설). 전혀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문체부 답변). 2013년 선거에서 2위(1위는 김정행)로 떨어진 이에리사가 청와대와 가깝다. 아니다, 이번에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일 뿐이다. 체육회통합에 딴죽을 걸었다는 이유로 이기흥 전 부회장은 정부에 찍혔다(이것도 통설). 통합에 반대한 적이 없다. 체육인들의 뜻과 의지로 통합체육회를 만들어야지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이기흥 측 보도자료, 증거 제시), 실제로는 장호성-이기홍의 2파전이다(한 전직 언론인). 아니다 장호성-전병관의 2파전이거나, 이에리사-장호성의 2파전이다(언론보도). 이기흥은 직접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비리의 온상이었던 조직(대한수영연맹)을 6년이나 이끌었기에 자격이 없다(언론보도), 수 차례 검찰조사와 통장조사를 20여 차례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였다(이기흥 측 반발)….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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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몽양 학술 심포지엄'의 홍보포스터. 여운형은 가장 훌륭한 대한체육회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대한체육회 속사정에 밝은 한 방송사의 기자는 새 대한체육회장의 조건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1. 국내 스포츠 정책과 제도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 2. 모두를 포용할 있는 넉넉한 품성을 갖추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3.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고양할 안목이 있는 사람, 4.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5. 문화체육관광부의 간섭과 개입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서두에서 퀴즈로 냈던 여운형 대한체육회장의 3가지 특성을 지금의 버전으로 바꾼 느낌이 든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이지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 그리고 특히 5번째는 꼭 지켜졌으면 한다. 체육이 정치의 종속변수라면 아무리 좋은 대한체육회장을 뽑아놔도, 대통령이 바뀌면 몹시 고생하거나(김정행), 쫓겨나거나(김정길), 심지어 구속될 수 있기(이연택) 때문이다. 이건 진보든 보수든 다 그랬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원칙일 게다. 앞서 5가지 기준을 제시한 방송사 기자는 지난 2월 ‘장관(문체부)에게 혼난 최초의 대한체육회장(김정행)’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대한체육회의 문체부 종속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야당의 체육통인 안민석 국회의원도 지난 9월 27일 국정감사에서 “문체부 주무국장이 특정후보에 전화를 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정부개입을 경고했다.

#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돌 테퍼 독일체육회 부회장에 따르면, 2006년 체육단체 통합을 이루며 한국의 롤모델이 된 독일은 체육관련 부서가 없고, 체육회는 여러 부처에서 예산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이 전혀 없다. 단체통합도 길고도 어려운 설득과정을 거쳐 갈등을 빚지 않았다. 요란을 떨지 않아도 독일은 엘리트든, 생활체육이든 한국보다 훨씬 낫다. 남의 좋은 것은 겉만 배우지 말고, 제발 그 진심을 배우자. 그래야 ‘체육민주화’가, 진정한 ‘체육발전’이 가능하다. 이번 선거는 그래서 진짜 중요하고, 체육인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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