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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수비보다 앞서 나간 그녀들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오프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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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 오프사이드

이번에 살펴볼 영화는 굉장히 참신하고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영화입니다. 바로 이란 영화 <오프사이드(Offside)>입니다. 이란 영화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라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작품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핵개발, 테러, 악의 축’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알려진 이란이지만 실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순박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죠. 이란은 이처럼 이국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왔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외국 영화를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구의 작품만 보게 되는 우리네 현실에서 이란이나 인도 같은 제3 세계의 영화들은 꽤나 신선한 충격을 전해 줍니다.

그런 이란에서 축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축구팬이라면 이란 축구가 우리와 맞설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요. 알리 다에이, 알리 카리미, 잔디, 네쿠남 등등. 월드컵 지역 예선과 아시안 컵의 매번 중요한 길목에서 맞붙곤 하는 강호 이란. 이것은 그 이란에서 만들어진 축구 영화입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이 영화는 축구장 안에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축구장에 들어가고는 싶은데 이슬람 율법에 의해 축구장에 못 들어가는 이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참 기막힙니다. ‘오프사이드’가 왜 기가 막히냐고요? 설문조사를 해 보면 여성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축구규칙이 바로 오프사이드라고 합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최종 수비 라인보다 앞서 나가 공격수가 패스를 받을 때 선언되는 반칙(더 정확히 말하면, 패스를 받는 최종 공격수 앞에 두 명 미만의 수비수가 있는 것). 대부분의 남성들은 쉽게 이해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서 월드컵 기간마다 의아해 한다고 들었습니다.

최종 수비 라인보다 앞선 공격수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는 것이지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수비수들이 공격수보다 뒤쳐져 있기에 선언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생각해 보죠. 왜 감독이 이 영화 제목을 ‘오프사이드’라고 했을까요? 이 제목에는 이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숨겨져 있습니다. 수비수들은 상대팀의 최종 공격수를 가둬두기 위해 오프사이드 트랩(Off-side trap)이라는 전술을 씁니다. 공격수에 대한 일종의 통제와 억압이지요. 마찬가지로 이란 사회 역시 축구를 보고 싶은 여성들의 경기장 입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 오프사이드라는 제목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란 사회의 부조리를 의미합니다.

영화에는 그러한 이란의 잘못된 관습을 깨고 경기장에 숨어 들어가려는 여성 축구팬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경비를 서는 군인들에게 걸려 경기장 바로 밖의 울타리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지요. 오프사이드 반칙이 선언되는 순간, 공격수는 상대 수비수보다 앞서 나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축구를 보려던 이란 여성들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규제를 추월하여 보편적인 인권인 자유와 남녀평등을 위해 한 발 앞서 나가려 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하는 그녀들에 비해 세상의 수비 라인, 즉 이란의 정책과 인식이 그만큼 뒤쳐져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공격수의 전진을 막기 위한 오프사이드,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막는 이란과 이슬람 사회의 관습. 이처럼 <오프사이드>라는 제목은 바로 이란 사회의 여성 차별에 대한 비유입니다. 축구 영화임에도 2006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고, 2006년 전주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바로 이런 사회비판의식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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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심의 오프사이드 판정 사인. 출처= wikipedia(Darz Mol)


왜 일본 여성은 되고 이란 여성은 안돼요?

영화는 2005년 6월 8일,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인 이란 대 바레인의 경기를 무대로 펼쳐집니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이 영화를 그 경기 당시에 찍었다고 하는군요. 어쩐지 영화를 보면 연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생생한 경기장의 분위기가 비쳐집니다. 경기가 벌어지기 전부터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경기장 밖의 보안 검색대에서, 그리고 관중석에서 군인들과 여성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됩니다.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담배를 피며 껄렁껄렁하게 말하는 여성, 아예 군인 복장을 훔쳐서 군인 행세를 하는 여성, 머리에 천을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까지…. 이들은 경기장에 들어가는 여성을 잡아내려는 군인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닙니다. 군인들만이 장애물이 아닙니다. 경기장 앞의 암표상들은 꼬투리를 잡힐까봐 여성들에게 표를 팔지 않습니다. 팔더라도 여성들의 약점을 잡아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죠.

이란 정부가 여성들의 축구장 출입을 금지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슬람 율법 때문입니다. ‘맨살의 외간 남자가 하는 운동 경기를 봐서는 안 된다’는 율법이 그 근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이슬람권인 터키의 경우는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가능합니다. 같은 이슬람권이어도 시대에 맞게 탄력적으로 율법을 적용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란 같은 경우는 1979년의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인권이 억압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조국이건만 경기장에 몰래 숨어든 이란 여성들은 오히려 축구와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얼굴에 이란 국기를 상징하는 녹백적의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국기를 두르고 남자들과 똑같이 이란을 응원합니다. 오히려 그녀들을 감시하는 남자 군인들보다 더 많은 축구지식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여자 축구 클럽에서 뛰는 선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축구를 좋아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경기장 밖의 철창에 갇힌 그녀들. 하지만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경기장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함성 소리에 흥분하고, 철창 안에 축구장을 그리고 전술에 대해 토의하기도 합니다. 좁은 철창 안에서 축구를 토론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이란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잠시 뒤, 그녀들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도착합니다. 아버지가 도착하자 겁에 질린 딸은 얼른 검은색 차도르를 두릅니다. 자유로운 옷차림은 차도르 밑에 갇혀 버립니다.

이런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이란 여성이 군인들에게 묻습니다.

“왜 일본 여성은 경기장에 들어가는데, 우리는 안 돼?”

“일본 여성은 우리말을 못 알아듣잖아. 경기장 안에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성들을 보호해야 돼.”

“그러면 욕하는 게 문제네? 여자가 경기장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몰라. 나도 시키니까 하는 거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이처럼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불평등. 사람들은 이것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면서도 어리석은 고집을 부립니다. 마치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말이죠.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차에 태워져 풍기 단속반에 압송되던 축구장의 여성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이란이 월드컵에 진출하자 거리는 축제에 빠집니다. 그녀들을 태운 버스도 열광하는 인파에 묻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죠. 이 틈을 타 여성들은 수갑을 풀고, 차 문을 열어 탈출합니다. 그리고는 열광하는 인파 속으로 사라집니다. 똑같이 축구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그녀들은,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속에 섞입니다. 그 곳엔 어떤 구별도, 장벽도 없는 그저 축구에 대한 열정만이 가득한 곳이죠. 풍기 단속반에 끌려가던 여성들이 좁은 차 안에서 탈출했듯이 억압 받는 이란의 여성들이 넓은 세상으로 나오길 바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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