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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겸의 MLB 클립] 미네소타로 돌아온 사나이, 토리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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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헌터 (사진=미네소타 트윈스 트위터)


에인절스 5년. 디트로이트 2년. 지난해 12월 초, 토리 헌터는 7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친정으로 복귀했다. 텍사스와 볼티모어가 그에게 구애를 보냈지만, 헌터의 선택은 미네소타였다.

1993년 드래프트 1라운드 20순위로 미네소타에 지명된 헌터는 1997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07년까지 메트로 돔의 외야를 지켰다. 풀타임 첫 시즌인 1999년부터 9년간 거둔 성적은 .271의 타율과 192홈런 709타점. 6차례 20홈런 이상 시즌을 보냈으며, 두 차례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의 진짜 진가는 수비에 있었다. 공격력의 키워드가 꾸준함 이었다면 수비력의 그것은 화려함이었다. 현 타겟 필드 이전 미네소타의 홈구장이었던 메트로 돔은 외야 수비가 대단히 까다로운 곳으로 손꼽힌 구장이었다. 그럼에도 헌터는 2001년부터 미네소타의 마지막 해였던 2007년까지 매년 골드글러브를 손에 넣었으며(통산 9회), 최근 카를로스 고메즈, 마이크 트라웃 이전에 ‘홈런 스틸러’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던 이가 바로 토리 헌터였다. 2005년 발목 부상으로 98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그의 전성기 시절 수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헌터는 미네소타를 사랑했다. 아메리칸리그 팀에서 뛰면서 매년 미네소타를 방문할 수 있었던 헌터는 그 때마다 미네소타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미네소타에서 장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기에 우승 반지를 얻는 일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그가 약체로 평가 받던 미네소타로 복귀한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면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리빌딩을 진행 중이던 미네소타가 올 7월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백전 노장을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여전히 유효한 타석에서의 생산력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디트로이트에서 기록한 그의 성적은 .286의 타율과 17홈런 83타점. 3할 타율에 실패하고 OPS 역시 7할대(.765)로 내려왔지만,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여전히 준수한 성적이었다. 2001년부터 14년 연속 기록하고 있는 두자리수 홈런에서 알 수 있듯이 간헐적으로 터지는 파워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지난해 400타석 이상 들어선 미네소타 타자 중 헌터보다 많은 타점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으며, OPS 역시 대니 산타나만이 헌터보다 나은 성적을 올린 바 있다.

무엇보다 테리 라이언 단장이 헌터를 다시 불러들인 이유는 그의 리더십 때문이다. 헌터의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로, 그는 FA로 합류한 에인절스와 디트로이트의 클럽하우스에서 모두 뛰어난 존재감을 발휘한 바 있다. 디트로이트의 어스머스 감독은 올 시즌 미네소타와의 개막 시리즈를 앞두고 ‘우리 팀 클럽하우스가 헌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로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미네소타는 헌터가 팀 전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으며, 아직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는 아르시아와 힉스는 물론 연내 데뷔가 유력한 슈퍼 유망주 듀오 바이런 벅스턴과 미구엘 사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에 따르면 폴 몰리터 신임 감독은 헌터에게 이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자 그의 영입을 위해 FA 자격을 갖춘 헌터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미네소타에서 마무리한 몰리터는 헌터의 메이저리그 데뷔 초기 시절인 1997년과 1998년 짧게나마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헌터의 영입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올 시즌 대부분의 언론에서 지구 최하위 후보로 지목된 미네소타는 18일(한국시간)까지 21승 17패의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3위에 위치하고 있다. 지구의 양대 산맥 캔자스시티와 디트로이트를 각각 2,3경기차로 뒤쫓고 있으며, 아직 이른 시기이긴 하나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는 2위에 올라있다. 1승 6패의 최악의 출발 이후 20승 11패로, 5월의 11승 5패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높은 승률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헌터의 방망이가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시점부터 미네소타의 질주가 시작되고 있다.

4월을 .205의 타율과 1홈런 7타점으로 마친 헌터는 5월 15경기에서 타율 .367 5홈런 14타점을 쓸어담고 있다. 5월 5홈런은 추신수, A-로드, 미구엘 카브레라, 에드윈 엔카나시온, 넬슨 크루즈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 등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공동 1위 기록이며, 14타점은 오클랜드의 레딕과 보트, 클리블랜드의 브랜틀리에 이어 리그 4위의 기록이다. 공교롭게도 미네소타가 5월 당한 5패에는 헌터가 결장한 1경기와 그가 무안타에 그친 3경기가 포함돼 있으며, 같은 기간 미네소타는 헌터가 멀티 안타를 기록한 경기에서 6승 1패, 타점을 올린 경기에서 7승 1패를 거두고 있다. 올 시즌 헌터는 팀 내 타자 중 홈런-타점 1위, 타율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으로, 당초 노쇠화로 인한 우려를 자아냈던 수비에서도 무난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즌 초반 미네소타의 기대 이상의 선전에는 불혹을 앞둔 노장 선수의 역할이 지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헌터는 리더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고 있다. 그는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미네소타의 외야를 이끌어나갈 벅스턴의 멘토를 자청하기도 했으며,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는 헌터의 합류 이후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미네소타의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58세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몰리터가 젊은 선수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는 데에는 중간에서 가교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헌터의 공이 크다는 평가다.

미네소타는 시즌 프리뷰에서 대부분의 현지 언론으로부터 지구 최하위로 평가받았다. 이 와중에 선발 보강을 위해 FA로 영입한 어빈 산타나가 약물 복용으로 인한 8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면서 최근 4년간 세 차례나 지구 최하위에 그친 미네소타 팬들의 기다림은 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발진에서 깁슨과 펠프리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휴즈와 놀라스코의 부진을 메우고 있으며, 보이어-톰슨-펄킨스로 이어지는 승리 계투진은 다른 여느 팀이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꼭 잡아야 하는 경기는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6회까지 리드시 16승 1패) 무엇보다 몰리터 감독의 지도력과 더불어 지난해 후반기(득점 ML 3위)에서 싹수를 보인 젊은 타선은 헌터의 가세로 보다 농익은 짜임새를 선보이며 미네소타의 초반 선전을 이끌고 있다.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다소 부진하긴 하나 미네소타는 사노와 벅스턴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그들은 연일 계속되는 패배에도 미네소타 팬들이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막연한 기대감에 그칠지 몰랐던 헌터의 복귀가 이뤄졌고, 그는 2000년대 6차례 지구 우승을 차지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데 있어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하며 팬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다. 모든 팀 스포츠가 그렇지만, 야구 역시 한 개인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나 한 명의 선수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미네소타로 돌아온 사나이 토리 헌터. 그의 복귀만으로도 올 시즌 미네소타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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