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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중독의 편파 야구 Just For Twins!] 각 잡아라, 오지환 나가신다!

  • 기사입력 2015-04-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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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경기 결과: 삼성 라이온즈 5 - 6 LG 트윈스

INTRO - ‘갓지환’의 잠실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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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지환'으로 거듭난 트윈스의 유격수 오지환. 강정호의 뒤를 이을 초대형 유격수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도 이제 무리가 아닐 듯싶다.

제목부터 “각 잡아라!”라고 반말로 버릇없이 쓴 것 같아 독자분들께 죄송스럽다. 변명하자면 왠지 오지환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때에는 공손한 존칭이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각 잡으세요, 오지환 나가십니다!” ... 확실히 어색하지 않은가?

오지환은 벌써 프로 7년차 유격수다. 그런데 오지환은 늘 어려 보인다. 고졸 출신으로 실제 나이(25세)가 어리기도 하지만, 6년 넘게 한 팀의 주전 유격수를 차지했으면 이제 베테랑 필이 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아마 터질 듯 터지지 않은 만년 유망주의 그늘이 너무 짙게 그를 가렸기 때문일 것이다.

“각 잡아라!”는 말은 지난해까지 오지환을 설명하는 가장 명료한 문장이었다. 실제 지난해 그의 수비는 일취월장했지만, 왠지 그에게 공이 가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공을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팬들은 편안히 앉아 야구를 보지 못하고, 각을 잡고 긴장감 100%인 상태에서 경기를 본다. 그 유쾌하지 않은 쫄깃한 기분. 트윈스 팬이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오지환이 2015년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눈에 띄게 배트를 눕히고 스윙 궤적을 줄이면서 컨택 능력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원래부터 힘은 장사였다. 포털 사이트에 오지환을 치면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오지환 허벅지’다. 그 놀라운 신체에 제대로 맞추는 능력만 갖춘다면 그는 충분히 강정호의 뒤를 이을 대형 유격수의 자질이 있다. 그런 오지환이 컨택 능력을 갖추고 2015년 화려하게 잠실에 등장한 것이다.

오지환은 이날 3안타를 때려내며 다시 4할 타율에 복귀했다. 7회 추격 타점도 좋았지만 9회 비로 질척한 잠실 그라운드를 내달리며 2루 베이스를 훔쳐 정성훈의 끝내기 발판을 놓은 장면은 압권이었다. 끝내기 득점을 향해 홈으로 질주하면서 한 번 균형을 잃었는데도 바로 중심을 잡고 달리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3, 4, 5번 클린업 트리오의 극도의 부진 탓에 트윈스 팬들은 7, 8, 9번에서 제발 주자가 나가주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1번 타순에는 주자를 반드시 불러들일 것 같은 오지환이 있기 때문이다.

오지환이 타석에 들어서면 이제 트윈스 팬들은 자신 있게 외친다. “각 잡아라, 갓(god)지환님 나가신다!” 더 이상 그 ‘각’은 불안한 쫄깃함이 아니다. 오지환이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행복한 각’이다. 그가 리그를 대표하는 초대형 유격수로 인정받을 때까지 팬들이 행복한 각을 계속 잡기를 소망한다.

최고의 멤버 - 정성훈, 이것이 FA 모범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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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끝내기 좌전안타로 팀을 구한 정성훈. 그는 트윈스가 영입한 FA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끔 우리가 잊고 사는 일이 하나 있는데, 암흑기 시절 트윈스는 FA영입으로 ‘돈 쓰고 몸 버리는’ 대표적 팀이었다. 지난해 말 모 언론에서 최악의 FA 먹튀 사례로 2001년 홍현우, 2004년 진필중과 마해영, 2007년 박명환, 2009년 손민한 등 5명을 꼽았는데 그 중 무려 3명이 트윈스의 FA였다. FA 역사상 최초로 10억 원을 넘는 금액(4년 18억 원)에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던 홍현우는 3년 동안 고작 129안타(1년에 기록한 안타가 아니다)를 때렸다.

2004년 팀의 간판 이상훈을 ‘쫓아내는’ 계기가 됐던 클로저 진필중은 4년간 30억 원을 받고 고작 15세이브를 올렸다. 2007년 4년에 40억 원을 받고 트윈스에 입단한 박명환은 영입 첫 해에만 10승을 올렸을 뿐 그 후 3년 동안 겨우 4승만 올렸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정성훈이 얼마나 모범적인 FA인지는 기록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2009년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는데 그 해 0.301의 타율을 올린 것을 비롯해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무려 4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했다. 입단 이후 100경기 이하를 소화한 시즌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에는 34세의 나이에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0.329의 타율을 올렸다. 올 시즌 0.480이라는 놀라운 타격으로 타율 부문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상태다.

그가 5일 통렬한 끝내기 안타를 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성훈은 너무 안정적으로 잘하는 선수이기에 실력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 못한다. 원래 그 정도는 항상 하는 선수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제나 늘 그 정도의 기록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그의 남다른 클래스는 그의 눈부신 실력을 평범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는 KBO 역사상 1800 안타를 때려낸 단 8명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다.

2012년 말 그는 트윈스와 두 번째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 해에는 NC 다이노스가 1군 진입을 앞두면서 FA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한 때다. 정성훈은 4년간 34억 원에 트윈스에 남았는데,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으로 팀을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트윈스에 남았다. “이대로 떠나면 도망자가 될 것 같았다. 도망자가 되기는 싫었다”는 고마운 멘트와 함께.

이제 트윈스 팬들 중 아무도 그를 외부에서 데려온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을 정도다. 팬들의 마음속에 그는 이미 이광은 이후 최고의 프랜차이즈 3루수다. 최정이나 박석민 등 걸출한 3루수에 가려 그는 ‘최고’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고가 아니면 어떤가? 팬들이 그의 존재 자체를 이렇게 고마워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가 트윈스에 남아줘서 고맙고, 그가 이토록 팀을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정성훈의 이름은 절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수은중독: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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