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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미LPGA 8연속 우승이 전하는 메시지
#지난해로 꼭 50주년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서는 기념 앨범이 나오기도 했다. 1964년 2월 7일 영국의 밴드 비틀즈가 미국에 도착했고, 이 장면은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다. 이틀 뒤 그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번쇼'는 무려 7,30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딱정벌레’ 이후 영국의 록 밴드들이 대거 미국으로 진출했다. 롤링 스톤즈, 후(Who), 애니멀스(Animals), 에릭 크랩튼, 야드 버즈(Yardbirds) 등 영국 아티스트들이 미국 팝시장을 점령했다. 2월 24일자 <뉴스위크>지가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표현했으니 이 문화적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자존심이 상한 미국 팝계가 ’몽키스‘를 급조해 되도 않는 대항을 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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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미국에 도착한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이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가 묘사한 2019년 로스앤젤레스는 일본풍이 짙다. 주인공 해리슨 포드가 게이샤가 나오는 광고판 밑에서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한다. 그만큼 1980~90년대 일본의 위세는 대단했다. 엄청난 경제력과 문화적 파급력으로 인해 서구 세계는 징기스칸에 이어 또 다시 황인종의 점령이 시작된다며 긴장한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이자 20세기 과학소설에서 군계일학으로 꼽히는 필립 K. 딕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딕은 영화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등의 원작자이며, <매트릭스>와 <인셉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때 대한탁구협회의 박도천 국제이사는 중국 외에 싱가포르, 인도, 마카오,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의 전력이 크게 상승한 것에 대해 “OEM(주문자상표부착) 때문에 그렇다. 다들 중국선수들을 데려다 대표로 만들었으니 탁구도 원산지 표기를 해야 한다”고 촌평을 했다. 그만큼 탁구에서는 중국독점 현상이 심한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에서도 드물지만 특정 종목을 특정 국가가 싹쓸이하다시피 지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주국이 주도하는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탁구의 중국을 비롯해, 양궁과 쇼트트랙의 한국, 마라톤의 케냐, 육상 단거리의 자메이카 등이 그렇다(바둑도 두뇌 스포츠로 분류한다면 한때 한국이 이견이 없는 세계 최고였다). 하지만 해당 스포츠의 국제화 지수가 높아질수록 이런 현상은 잦아드는 법이다.

#며칠 전 양희영이 2015시즌 미LPGA 투어의 4번째 대회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3개 대회도 최나연, 김세영, 리디아 고(뉴질랜드) 등 한국(계) 선수들이 우승트로피를 가져갔다. 지난해 말 4개 대회에서 박인비, 이미향, 크리스트나 김(미국), 리디아 고가 차례로 우승한 것을 포함하면 무려 8개 대회 연속 우승이다. 리디아 고나 크리스티나 김도 부모가 모두 한국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이지 경이적인 수치다. 이 부분 역대기록은 한국선수들이 11승을 쓸어 담은 2006년 5∼6월의 4주 연속 우승이었으니 ‘8’이라는 숫자가 전하는 놀라움은 더욱 크다. 이미 지난해 미LPGA투어 32개 대회 중 한국(계) 선수가 16승을 합작해 종전 한 시즌 최다승(2009년 12승)을 갈아 치우며 ‘한국 천하’의 조짐을 예고했다. 그리고 올해는 시작부터 여자골프의 한국 강세가 불을 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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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


#2008년 선수 말년의 샤킬 오닐은 평생을 괴롭혀 온 자유투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스스로 새 별명을 `샤코비치'라고 지었다. 슛이 뛰어난 동유럽 선수의 이름이 '~비치'로 끝나는 것을 빗댄 풍자였다. 이처럼 미 NBA에서는 큰 신장에 슈팅이 좋은 유럽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판도를 흔들어왔다. 그리고 역사가 오래된 MLB에서도 중남미와 일본(그리고 한국) 선수들이 호성적을 낸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여자골프만큼은 아니었다. 여자골프의 ‘코리언 인베이전’은 1998년 박세리의 미국제패 때 “박세리는 한국의 가장 값진 수출품”이라고 표현할 때부터 시작됐으니 일시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니,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그 위력이 더 강해지지 더욱 경이적인 것이다.

#이제 DNA가 어쩌고, 젓가락 문화나 손재주가 어떻고 뭐 이런 식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만끽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비틀즈 이후 미국 팝은 세계시장을 석권해왔다.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와 함께 서구인의 일본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심지어 더 이상 영화 속에서도 일본이 미래를 지배하지 않는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이미 연습벌레인 한국선수들 영향으로 미국선수들도 이 전에는 쉬기만 하던 월요일에도 연습에 매진한다. 신체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장타는 물론이고, 한국식 정확성도 갖춰가고 있다. 한국식 골프 대디와 골프 마미도 흔해졌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직 한국골프는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이다. 비틀즈는 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영국에 엄청난 부를 안겼다. 1965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MBE훈장을 수여할 때 “음반수출로 영국경제에 공헌한 바 크다”고 했다. 누적 앨범판매량 10억 장은 지금 시가로 150억 달러(약 16조 원)로 5,000만 명의 한국 국민이 1인당 맥도널드 햄버거 80개를 먹을 수 있는 액수다. 심지어 비틀즈라는 문화유산으로 죽어가던 리버풀이라는 도시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탁구의 중국이나 한국 양궁이 장비와 지도자 수출에서 큰 개가를 올렸듯이 골프에서도 선수 육성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메이커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활성화를 언급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직함과 관련이 있는 프레지던츠컵 때문으로 한정돼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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