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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철의 링딩동] 세계 복싱계의 블루칩 한국계 골로프킨

  • 기사입력 2015-02-2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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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샤를 데제트월에서 WBA, WBC(잠정) 미들급 챔피언 겐나디 골로프킨(카자흐스탄)이 만만치 않은 도전자 마틴 머레이(영국)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세 번의 다운을 빼앗아내고 11회 TKO승을 거뒀다. 본인이 치른 14번의 세계타이틀전을 모두 KO승으로 장식한 골로프킨은 2008년 11월부터 19연속 KO승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까지의 전적은 32전 전승(29KO)

도전자 머레이는 펠릭스 스텀(독일)과 무승부, 세르히오 마르티네스(아르헨티나)를 다운시키고 판정패 하는 등 A급 세계챔피언들을 상대로 적지에서 선전을 펼친 바 있다. 네임밸류에 비해 까다로운 복싱을 구사하고 터프함을 갖춰 위험한 도전자로 각인된 탓에 마르티네스 전 이후로 세계 도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때문에 챔피언이 어렵게 방어할 것이라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었지만 이는 기우였다. 머레이의 소득은 골로프킨에게 처음으로 11라운드를 경험시킨 것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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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머레이(왼쪽)는 경기 내내 골로프킨에게 난타 당했다. 사진=<파이트뉴스>

매 경기 수준급 선수들을 상대로, 그것도 세계타이틀매치마다 압도적인 KO승을 이끌어내는 골로프킨은 이제 공포스러운 존재다. 미들급의 레전드 슈거 레이 로빈슨(미국), 카를로스 몬존(아르헨티나), 마빈 해글러(미국)와의 비교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위상도 높아졌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본인 이름 앞에 따라붙던 ‘저평가된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린 겐나디 골로프킨. 조만간 세계 복싱계의 원탑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확신하는 그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한국인

그의 모친 엘리사베스 박 씨는 한국인이다. 2014년 7월 전 WBA IBF 미들급 통합챔피언 다니엘 길(호주)과의 방어전을 앞두고 산타모니카에서 한인방송의 취재에 응한 골로프킨은 한국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두 형의 권유로 8살부터 복싱을 시작했고, 14살 때 러시아 내전으로 두 형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함께 복서 생활을 하던 쌍둥이 동생은 ‘GGG 팀’ 스태프의 일원으로 프로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골로프킨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라이트미들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당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에도 골로프킨은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준결승전에서 송인준(한국)에게만 판정승(18-10)을 거뒀을 뿐 나머지는 모두 초반에 경기를 마무리했다. 1차전에서 압둘라 세킵(아프가니스탄)은 시작하자마자 복부를 강타당한 뒤 전의를 상실하며 곧 기권했고, 2차전에서는 나지멜딘 아담(카타르)에게 1R 세 번의 다운(두 번은 스탠딩)을 빼앗고 RSC승을 거뒀다. 결승에서는 킹스컵 대회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수리야 프라사틴피마이(태국)을 맞아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3회 시작 직후 점수 차이에 의한 RSC승으로 설욕하는 등 한 차원 높은 기량으로 상대들을 압도했다.

아마추어 전적 320전 310승 10패. KO와 RSC는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았지만 KO율이 약 80%에 이른다고 한다. 2000년 부다페스트 세계 주니어 선수권(L웰터급) 금메달을 시작으로 웰터급(오사카 동아시아대회)을 거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L미들급을 석권했고, 2003년에는 방콕 세계선수권대회 미들급을 제패한 골로프킨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골로프킨이 아마추어 시절 카자흐스탄의 국가대표로 수확한 굵직한 국제대회 메달은 금메달이 무려 12개, 은메달도 5개에 이른다.

작년 12월 WBC 총회 당시 라스베가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굉장히 반가워하며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어머니의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골로프킨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아주 잠깐 시간을 가졌을 뿐이지만 그의 표정과 태도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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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필자와 골로프킨(오른쪽).


미들급 세계 최강자로 부상

목표였던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화려하게 은퇴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마음먹었던 골로프킨은 미들급 결승전에서 시드니올림픽(2000년) 은메달리스트 가이다르벡 가이다르베코프(러시아)에게 판정패(28-18)하며 선수생활을 연장하게 된다. 2005년 모스크바 월드컵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같은 해 중국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하자 그는 프로 전향을 결심했다. 가정이지만 만일 골로프킨이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더라면 세계 복싱계를 호령하는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당시 독일 굴지의 유니버섬 프로모션으로 스카우트된 골로프킨은 2010년 8월 파나마시티에서 밀턴 누네스(콜롬비아)를 1회 58초 만에 녹아웃시키고 WBA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다. 프로데뷔 4년 3개월만으로 19전 째 경기인데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선수로는 상당히 뒤늦은 행보였다. 세계기구가 많은 요즘 복싱계를 감안하면 더욱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승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소속 프로모션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원활한 비즈니스가 뒷받침되지 못했던 탓이다. 프로모션의 경영 악화는 골로프킨이라는 뛰어난 상품을 제대로 포장하고 홍보하지 못한 마케팅 실패로 이어졌고 그의 막강한 아마추어 경력은 되려 메인스트림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싸워도 돈이 안 되는 강한 상대라는 인식 탓에 비중 있는 시합에 출전하지 못했고, 지명도전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같은 소속이었던 헤비급 챔피언 형제 비탈리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우크라이나)가 법정싸움을 통해 유니버섬을 떠나 직접 설립한 K2 프로모션으로 이적하는 계기가 된다. 전 IBF S웰터급 챔피언 카심 오우마(10회TKO승), 터프가이 라주안 사이먼(1회KO승) 등 네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끝내고도 대중들로부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K2 프로모션으로 이적하며 드디어 미국 진출의 활로가 틔었다.

HBO와 계약하면서 2012년 9월 그레즈고르즈 프록사(폴란드)와의 5차 방어전(5회TKO승) 때 처음 미국 링에 데뷔한 골로프킨은 이후 까다로운 도전자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면서 천천히 자신만의 아성을 쌓는다. 통합전 같은 빅매치를 열망했지만 지명도가 높은 톱복서들은 대부분 골로프킨을 외면했다. 전문가들로부터는 진작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어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골로프킨을 상대할 경우 리스크는 큰 반면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의 개런티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로프킨에게는 시험이 계속되었다. 전 챔피언들, 또는 A급 챔피언들을 고전시킨 까다로운 복서들이 방어전 대상으로 결정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로 압도해나가면서 자신의 몸값과 인지도를 수직 상승시켰다. 여러 환경으로 인해 아직 100만불에 못 미치는 개런티는 조만간 수백만 달러를 넘어 천만 단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름 강하고 내구력 있는 상대들도 골로프킨 앞에서는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다가 녹아웃 되었던 완벽한 경기내용들이 이를 보증한다.

펠릭스 스텀에게 2-1 판정패, 세르히오 마르티네스에게는 11회 종료 기권패로 선전했던 매튜 맥클린(8차 방어전)은 3회에서 레프트 보디블로우 한 방으로 KO패 후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전 IBF, WBA 미들급 챔피언 다니엘 길(3회TKO)에게는 라이트를 먼저 히트당하면서 뻗은 라이트훅 일발로 KO시키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WBC 미들급 잠정챔피언 마르코 안토니오 루비오(멕시코)와의 통합전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찍는 레프트훅 원 펀치로 2회에서 간단하게 KO승을 거두었다. 각도가 좋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파워가 실려 있는, 그야말로 가공할 펀치였다. 전 WBA S웰터급 잠정챔피언 이시다 노부히로(일본)는 한 번도 KO패가 없는 터프가이였지만 35전 째 골로프킨에게 실신 KO패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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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전의 승리로 WBC 타이틀까지 거머쥔 골로프킨. 사진=<인디펜던트>지


메이웨더, 파퀴아오 다음은 골로프킨 시대가 펼쳐질 것
골로프킨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방을 맞추는 능력과 미들급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일발필도의 펀치력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뻗는 잽 하나도 버리는 펀치가 없고 힘이 실려 있다. 롱 훅이나 롱 어퍼컷의 적중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며 그 한 발, 한 발에 모두 가공할 위력이 탑재되어 있다.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장악하고 상대를 본인의 근접거리에 가둬두는 프레싱 능력 또한 발군이다. 링 중앙에서의 신경전이나 타격전은 거의 없이 극강의 전진스텝으로 상대를 몰고 다니는 어그레시브는 차원이 다른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골로프킨의 경기를 보면 카메라 앵글이 경기 내내 네 군데의 로프 근처에 집중적으로 형성된다. 상대 선수들은 골로프킨의 공세에 주로 로프에 몰린 상태에서 결정타를 허용하고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공격 일변도의 스타일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골로프킨의 디펜스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근접거리의 타격전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면서도 웬만하면 인사이드를 내주지 않는 선 굵은 테크닉은 상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언뜻 보면 골로프킨은 스피드가 별로 없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뿐 필요한 순간 스피드나 순발력이 뛰어나므로 상대의 정타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루비오 전에서 레프트 훅으로 페인트를 주고 강력한 라이트 어퍼를 꽂는 장면은 골로프킨의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다. 무지막지한 인파이팅을 펼치는 것처럼 보여도,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박하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골로프킨을 일반적인 파이팅 머신이 아니라 핵펀치를 장전한 테크니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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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프킨은 경기가 끝나면 항상 매력적인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제 골로프킨은 모든 흥행조건을 갖췄다. 국적의 불리함도, 대중적으로 낮았던 인지도도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스스로 극복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들급의 통합과 빅매치들이다. 5월로 예정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이 마무리되면 차기로 주목 받을 복서는 골로프킨이 0순위다.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전의 승자 또는 패자와의 대결, 한 체급 위의 실력자 안드레 워드(미국)와의 대결 등 전 세계 복싱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넥스트 카드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다. 링 위에서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지만 링 밖에서는 웃음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친근감을 주는 반전매력의 소유자. 극강의 프레싱으로 상대를 분쇄해버리는 골로프킨에게 백스텝을 밟게 할 선수는 과연 누구일까? [헤럴드스포츠 복싱전문위원]

■ 겐나디 골로프킨 프로필
- 국적 : 카자흐스탄
- 출생 : 1982년 4월 8일
- 신장 : 179Cm
- 리치 : 178Cm
- 스탠스 : 오소독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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