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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택 관전평] 김종규와 오세근 사이의 밥상론
17일 경기 결과 : 창원 LG(26승 22패) 94-80 안양 KGC인삼공사(20승 28패)

빠른 LG. 지역방어. 변칙. 성공적. 다만...10분?
인삼공사가 1쿼터에 들고 나온 3-2 지역방어는 개인적으로 이동남 감독대행의 성공적인 카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LG의 팀 컬러는 속공을 비롯한 빠른 템포의 공격농구인데요. 인삼공사의 변칙적인 존 디펜스는 경기 초반 이를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대인방어를 예상하고 나왔을 LG에겐 지역방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만큼 공격 템포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LG의 공격이 풀리기 시작한 건 1쿼터 중반 인삼공사가 맨투맨 디펜스로 돌아가면서부터입니다. 지역방어를 깨는 방법 중 하나가 존의 모양이 갖춰지기 전에 공격하는 속공이라는 점에서, 빠른 농구를 막는 데 지역방어가 통한 건 어찌 보면 아이러니인데요. 그만큼 인삼공사의 변칙 작전이 상대의 허를 찔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인삼공사는 이날 경기 초반 LG가 하고 싶은 농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협력을 통해 착실하게 득점을 뽑아내며 1쿼터 리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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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지, 내 앨리웁?' 4쿼터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는 앨리웁 덩크슛을 성공시킨 후 문태종(왼쪽)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김종규.

상대가 잘 하는 걸 하지 못하게 막는 게 승리의 방정식인 건 비단 농구에만 통용되는 얘기는 아닐 텐데요. 아쉬운 건 인삼공사가 써내려가던 승리 방정식, 딱 10분으로 끝났다는 점입니다. 2쿼터 LG는 타이트한 맨투맨 수비가 살아나며 바로 제모습을 찾았습니다. 인삼공사는 전열을 정비한 LG 앞에 1쿼터와 달리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턴오버가 속출했습니다.

상대의 실책은 속공 1위에 빛나는 LG를 더욱 신나게 하는 촉매제죠. 아니나다를까 LG는 인삼공사가 2쿼터 5분간 무득점으로 침묵하는 사이 순식간에 20여 득점을 쓸어담으며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살아난 LG의 화려한 공격력은 인삼공사의 집중력을 3쿼터까지 뒤흔들어놨고 점수차는 점점더 벌어져만 갔습니다. 4쿼터 양희종의 3점슛에 힘입어 추격에 시동을 걸어봤던 인삼공사지만 넘어간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승부는 2쿼터에 갈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좀 쉬고 있어 DJ, 우리가 할게
LG 입장에서 이날 승리가 반가운 이유는 데이본 제퍼슨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날 LG가 득점한 94점 중 데이본 제퍼슨의 득점은 11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제퍼슨을 제외하고도 5명의 선수가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국내선수들은 매 쿼터 고른 득점 분포를 보여줬습니다. 18분46초를 뛴 크리스 메시 역시 무리한 공격 없이 제때 동료에게 볼을 잘 빼주는 모습이었고 문태종은 3점슛 3방을 터뜨리며 내외곽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상대의 실책이 나오면 빠른 속공 전개를 통한 쉬운 득점, 세트오펜스는 세트오펜스대로 포스트에서 무리하지 않고 유기적인 패스워크를 통한 쉬운 득점, 안에서 안 풀리면 외곽에서 해결. 이처럼 이날 LG가 득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물흐르듯 부드러웠습니다. 그만큼 제퍼슨 외에도 가진 무기가 많다는걸 증명해낸 셈이죠.

제퍼슨의 득점력은 분명 폭발적입니다. 하지만 개인에 의존하는 농구는 팀플레이를 뻑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입니다. 이날처럼 순리대로, 보이는 대로 물흐르듯 농구를 하면 그만큼 팀은 안정을 찾습니다. 제퍼슨같은 '핵폭탄'은 안 풀릴 때 언제든 써먹을 수 있습니다. 고비의 순간 에이스에게 1대1을 지시하는 건 지도자 입장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입니다. 확률이 높은 쪽에 승부를 거는 게 맞기 때문이죠.

하지만 필살기는 최후의 보루일 뿐, 결국 단체운동인 농구에서는 선수들의 득점 분포가 고른 경기가 좋은 경기입니다. LG는 이날의 경기력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인삼공사도 유의해야할 부분이겠죠.

김종규와 오세근 사이의 밥상론
김종규와 오세근. 한국 농구의 미래라 불리는 두 토종 빅맨 간의 대결은 항상 농구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치업입니다. 이날 기록이나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18득점에 앨리웁 덩크 등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날아다닌 김종규가 판정승을 거둔 것 같이 보이지만, 역시 골밑에서 고군분투하며 두 자릿수 득점을 해준 오세근의 활약 역시 가벼이 볼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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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 17일 LG 데이본 제퍼슨과 리바운드 다툼을 벌이고 있는 KGC 오세근(가운데). (사진=KBL)

높이와 스피드, 탄력까지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진 김종규나 파워와 영리한 골밑 움직임을 구사하는 오세근 모두 뛰어난 빅맨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각 소속팀의 스타일 아래서 두 선수를 분석하면 LG가 조금 더 김종규에 최적화된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규는 차려진 밥상 앞에서 식사를 하고, 오세근은 밥상을 차려서 먹어야 한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실제로 이날 김종규의 득점 중 1대1 공격을 통한 득점은 많지 않았습니다. 속공 상황에서의 득점이나 포스트에서 용병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통해 파생되는 득점 찬스를 받아 먹은 것이 많죠. 물론 받아 먹는 것도 능력이라고 김종규의 운동능력이 그만큼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만큼 LG가 구사하는 농구와 김종규 간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오세근은 인삼공사의 포스트에서 혼자 만들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스텝도 웬만큼 잘 밟는 선수라 활동폭을 넓히면 충분히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상 미들레인지까지 상대를 끌고 나오기보다 더 안쪽에서 포스트업을 하다보니 뻑뻑한 플레이에 직면할 상황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종규 정도의 높이를 만나게 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이날 패배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다소 희박해진 인삼공사인데요. 인삼공사는 워낙 기량 좋은 국내선수들이 많아 언제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고, 오늘 농구하고 말 것도 아니기에 멀리 내다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개인 득점도 좋지만 내 동료가 잘할 수 있는 걸 먼저 생각하고 팀플레이에 대한 부분에 좀더 힘쓴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nahyein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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