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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체육전도사로 변신한 '배구계 작은 거인' 조영호
170㎝가 조금 넘는 키로 배구를 했다. 작은 키 때문에 선수로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대학교수, 국제심판, 그리고 만 43세에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한국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향 벌교에는 196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배구대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고 있다. 보통 벌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태백산맥>의 조정래(소설가)인데 체육계에서는 이 사람이 됐다. 바로 전 한양대 교수 조영호(66)다.

2014년 40년이 넘는 한양대 교수 자리에서 정년퇴임한 그가 조용히 국내 최대의 스포츠단체인 국민생활체육회의 사무총장으로 변신했다. 새해초 체육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 자리에 오른 조용호 사무총장을 만나 취임(2014년 10월) 3개월 만에 생활체육 이야기를 들었다.




Q. 먼저 국민생활체육회를 소개해 달라.
▲ 말 그대로 국민들의 생활체육을 전담하는 기관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생활체육을 즐기게 하자’가 모토이다. 17개 시도 및 228개 시군구 지구에 지부가 있고, 67개 전국종목별연합회가 있다. 10만여 개 클럽에 공식등록된 동호인만 450만 명이다. 국내 최대의 스포츠단체다. 중요한 것은 참 많은 일을 하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홍보가 부족했다. 이렇게 생각들 하시면 쉽다. 기본적으로 생활체육회는 돈을 쓰는 곳이다. 국민 누구라도 홈페이지 등 국민생활체육회와 관련된 정보는 무조건 확인하시면 그 혜택을 받으실 수 있다.

Q. 최근 서상기 전 회장(국회의원)의 사퇴 번복 기자회견 및 갑작스런 사퇴가 이슈가 됐다. 그 배경과 신임회장 선출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좀 오해가 있었다. 서 회장님은 자리에 미련이 없었다. 단, 기자회견 내용 그대로 생활체육진흥법 제정이 워낙 중요한 까닭에 이 일을 마무리한 후 물러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후 정의화 국회의장과의 면담(30일)에서 국회 차원에서 진흥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약조를 받은 후 그날로 사퇴하셨다. 전통적으로 국민생활체육회의 수장은 정치인이나 정치권 추천인사가 맡아왔다.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제한 규정으로 이제 정치의 속박에서 어느 정도 풀려나게 됐으니 이제 경제인이든, 체육인이든 생활체육에 열정을 갖고, 또 우리 체육회에 큰 힘이 되어주실 분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 정관에 나오는 절차에 따라 빠르면 2월말 늦어도 3월이면 새 회장이 선출될 것 같다.

생활체육진흥법이 진짜 복지

Q. 생활체육진흥법이 그렇게 중요한가?
▲ 국민생활체육회의 올해 예산이 1,246억 원이다. ‘스포츠 7330(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자)’이라는 범국민캠페인이 말해주듯 국민들의 자발적인 체육활동과 관련된 모든 일을 수행한다. 그런데 돈을 쓰는 것도, 혹은 예산을 확충하는 것도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아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진흥법이 통과되면 국민들이 누리는 생활체육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늦어도 4월에는 법이 제정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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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은 체육인으로 선수, 심판, 학자, 행정가를 모두 경험했다.

Q. 개인적인 얘기 좀 묻겠다. 배구선수 출신으로 ‘뼛속까지 배구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먼저 심판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 1969년 국내심판이 됐고, 1977년 국제심판, 1989년 FIVB심판(한국 1호)이 됐다. 1989년 세계 최우수심판으로 선정됐고, 1995년에는 아시아배구 100주년 기념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은 84 LA대회부터 4회 연속 심판을 맡았다. 키가 작아 9인제 배구에서도 세터를 맡았고 이후 학자의 길을 택하면서 공정한 경기운영과 판정으로 배구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심판을 시작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인정을 받고, 나름 배구발전에 공헌하게 돼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아직도 ‘조영호 전무’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체육행정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 하하. 맞다. 1989년 40이 조금 넘은 나이에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를 돼 2002년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1990년대 한국배구의 최전성기를 이 명함으로 함께 했고, 2000년대 프로배구 출범에 디딤돌을 놓았다. 이후에도 대한배구협회 부회장,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 대학배구연맹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지금 국민생활체육회라는 거대체육단체의 사무총장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체육계 후배들도 단순히 지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행정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선수출신이 한양대 수석졸업

Q. 학자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교수로 임용을 받은 1975년부터 계산해도 햇수로 40년을 한양대학교에서 보냈다.
▲ 내게 ‘학교’라는 보통명사는 ‘한양대’라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그만큼 한양대와 김종량 전 총장에게 감사한다. 수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무조건 외부로 나가 활동하라는 배려를 받았기 때문에 심판 조영호, 행정가 조영호가 가능했다. 체육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했던 시절에 공부를 하기 시작해 조교-교수-학생처장-체육대학장 등 대학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 지금도 대학 1학년 때가 눈에 선하다. 전남 땅끝 벌교라는 시골 동네서 한양대에 진학했는데 운동을 한 까닭에 대학 새내기 때 법학, 자연과학, 문학 등 교양과목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모르니까 열심히 수업에 개근하며 공부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체육대 수석졸업, 한양대 전체 수석졸업의 영예까지 안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공부하는 체육인들이 참 많은데 더욱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운동한 만큼 열심히 하면 학자로서도 대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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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사무총장은 요즘 걸어다니기를 좋아한다. 대한민국 생활체육의 행정책임자로 생활체육을 통한 건간증진을 솔선수범하자는 취지 때문이다.

Q. 젊었을 때 두주불사로 유명했고, 인맥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어떤가?
▲ 명색이 국민생활체육회의 행정책임자인데 과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술자리는 많지만 예전처럼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만나는 것은 바로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의 가장 큰 일이다.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줘야 하고, 행사를 만들고 진행하고 알려야 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걷는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간다. 생활체육을 진흥하는데 사무총장이 배가 툭 튀어나오거나 비실비실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오늘 점심도 좀 멀찍이 걸어가는 곳에서 할 생각인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하하.

Q. 체육인으로 선수, 심판, 학자, 행정가를 모두 겪었다. 그리고 정년퇴임을 하고도 한국 생활체육의 행정책임자가 됐으니 남들이 다 부러워한다. 국민생활체육회의 사무총장으로 각오를 밝혀달라.
▲ 정년 기념강연에서 미소, 인사, 대화, 칭찬의 줄임말인 ‘미인대칭’을 잘해야 참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조직에서도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는 미인대칭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생활체육도 미인대칭의 공간이다. 생활체육에 1달러를 투자하면 의료비가 3,43달러나 줄어든다는 연구가 있다. 체육인 출신 첫 사무총장으로 큰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잘해야 체육인 후배들이 이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전 국민이 생애 주기별로 1인1기의 생활체육을 누릴 수 있도록 생활체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프로그램을 보급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60년 체육인생을 통해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이다. 부디 생활체육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재물을 잃는 것은 인생의 일부를 잃는 것에 불과하며, 명예를 잃는 것은 인생의 절반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을 잃는 것은 인생의 모두를 잃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생활체육이 최고의 명의, 명약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기자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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