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3일 태국에서 열린 WBO(세계복싱기구) 아시아퍼시픽 L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유명구(발안체)가 파죽의 16연속 KO승을 거둔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이적인 16연속 KO승
유명구가 2012년 2월부터 현재까지 기록하고 있는 16연속 KO승은 국내 프로복싱 역사상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1위는 전 WBA S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의 26연속 KO승이고, 2위는 전 WBA, IBF S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의 19연속 KO승이다. 1980년대 중량급의 두 거목이 기록한 연속 KO승은 해외 원정에서 모두 깨어진 바 있다. 백인철은 데뷔전부터 26전 전KO승을 이어가다 미국 원정에서 신 매니언(미국)에게 판정패로 연승이 중단되었고, 박종팔은 베네수엘라 원정경기에서 기록이 끊겼다. 당대 최고의 미들급 챔피언 마빈 해글러(미국)에게 도전하기 위한 도전자결정전에서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베네수엘라)에게 8회 KO패 한 것이다.
유명구에 이어 공동 4위인 13연속 KO승 기록은 전 OPBF 미들급 챔피언 나경민과 전 한국 Jr.미들급 챔피언 유제형이 가지고 있다. 나경민은 데뷔전부터 연속 KO승을 시작, 박종팔을 KO시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리턴매치에서 박종팔에게 4회 KO로 무너져 연승이 끝났다. 6위는 전 OPBF L헤비급 챔피언 이왕섭의 12연속, 공동 7위는 전 WBA S페더급 챔피언 백종권과 전 IBO S페더급 챔피언 김지훈의 11연속 KO승이다.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과 전 OPBF Jr.웰터급 챔피언 이상호의 10연속 KO승이 공동 9위에 올라 있다. 9연속 KO승을 거둔 선수들은 신희섭(IBF 플라이급), 황준석(OPBF 웰터급), 김정범(OPBF S라이트급), 조용배(OPBF 웰터급) 등 4명이고 8연속 KO승 기록은 정영길(OPBF 웰터급, Jr.미들급), 김창택(OPBF Jr.미들급), 박환영(PABA 웰터급), 임홍규(한국 라이트급), 유흥석(한국 Jr.웰터급) 등이 가지고 있다. 전 OPBF Jr.플라이급 챔피언 차남훈 및 한국 페더급 챔피언을 지낸 채승곤과 이종훈은 나란히 7연속 KO승을 거둔 바 있다. 황충재도 두 차례 7연속 KO승을 기록했다.
연속 KO승 기록은 대부분 중량급 선수들에 의해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유명구 이전에 플라이급의 하드펀처 김태식만이 두 자릿수의 연속 KO승을 거뒀을 뿐이고, 신희섭(9연속)을 제외하면 경량급에서는 8연속 KO승도 기록한 선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 태국을 넘나들며 3년간 16연속 KO승을 작성한 유명구의 기록은 재조명 받아야 마땅한 대기록이다. 또한 이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므로 유명구가 기록을 어느 시점까지 연장해 나갈지도 관심거리다. <하단 표 참조>
'한국 복서들의 무덤' 태국에서 올린 쾌거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는 태국은 국내 복서들에게는 최악의 기피 대상이다. 지난 50년간 한국 복서 중 태국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선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100명이 넘는 국내 복서들이 필승을 다짐하고 원정을 떠나 200전이 넘는 경기를 치렀지만 김기수(1967년), 홍수환(1973년), 황충재(1981년), 김기창(1986년), 정희연(1987년)만 승리를 거뒀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패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67년 11월 당시 세계챔피언이던 김기수가 아피데즈 시치란을 상대로 10회 판정승을 거둔 것이 태국 원정 승리의 첫 공식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어 홍수환이 세계챔피언에 오르기 17개월 전에 12연승(9KO) 중이던 홈 링의 강타자 타놈지트 수코타이를 8회 TKO로 꺾었다. 황충재는 OPBF 웰터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전 세계챔피언 사엔삭 무앙수린을 판정으로 눌렀고, 김기창(Jr.밴텀급)과 정희연(Jr.페더급)은 각각 OPBF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다. 이 외에는 타이틀전과 논타이틀전을 가릴 것 없이 국내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모두 태국에서 패하고 말았다.
세계타이틀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1985년 3월 이동춘을 시작으로 18명의 선수들이 21번에 걸쳐 태국에서 원정 세계타이틀전을 치렀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1전 전패(10KO패)로 자존심을 구겼다. 태국에서 방어전을 가진 김용강과 문성길은 각각 판정패로 타이틀을 상실했고, 19명의 도전자들은 전원 도전에 실패했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태국 선수를 상대로 세계타이틀 20전 17승(13KO) 3패로 월등히 앞서 있다. 김성준, 김상현 등 7명의 도전자가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으며 방어전의 경우 10전 전승(9KO)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유명구의 WBO(세계복싱기구) 아시아퍼시픽 L플라이급 타이틀전은 태국 현지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유명구는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11번의 경기를 모두 KO승으로 장식한 것이다. 그 중에는 PABA(범아시아복싱협회) 플라이급 타이틀매치(1회 KO승)도 있고, WBF 및 PABA 챔피언을 지냈던 몽콜 차레온(6회 KO승)과의 경기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 권투계가 지독한 소송으로 분열되면서 스스로 셀프 매니지먼트를 해온 유명구는 국내 커미션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태국과 한국을 오가는 쓸쓸한 사투를 벌여 왔다.
유명구 = 유명우 + 장정구
현재 PABA(범아시아복싱협회) 플라이급(50.8Kg) 챔피언인 유명구는 WBA 플라이급 11위에 랭크되어 있고, WBC에는 슈퍼플라이급 20위에 올라 있다. 이번 WBO 아시아퍼시픽 타이틀 획득으로 WBO에도 랭킹 진입이 확실시 되고 있는데 체급은 라이트플라이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L플라이급(48.98Kg)에서 S플라이급(52.16Kg)까지 세 체급을 가시권에 두고 먼저 기회가 오는 쪽을 택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세계무대에서 체급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기 때문에 체중감량에 큰 무리가 없다면 가급적 L플라이급을 노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유명우와 장정구의 이름을 합성해 유명구로 탄생한 그의 꿈은 물론 세계챔피언이다.
본인이 존경하는 두 레전드 유명구와 장정구의 이름을 섞어 직접 링네임을 만든 유명구. 세계 정상을 향해 묵묵히 정진하고 있는 그의 본명은 배영길이다. 정희연 이후 26년 만에 태국 원정전 연패를 끊더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16연속 KO승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과연 그가 세계챔피언이라는 열매로 굴곡 많던 인생에 화룡정점을 찍을 수 있을지 복싱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헤럴드스포츠 복싱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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