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2007년 2월 잠실 롯데호텔에서 디너복싱(SBS 스포츠 생중계)이 개최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퍼포먼스나 제반 무대장치 등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이날 행사의 완성도는 월등히 높았다. 2000년대 초부터 국내 복싱 프로모팅의 가장 큰 스폰서로 자리매김한 지자체의 후원은 물론 흔한 방송중계가 없었음에도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파이팅 코리아 시즌 1’으로 명명된 이 대회를 통하여 AK프로모션은 프로복싱계에 신선하게 데뷔했다. 새로운 복싱 흥행의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AK프로모션은 뜻밖에도 버클리 음대 출신의 김영욱 대표(37)가 이끌고 있었다.
음악인, 기획사 대표에서 프로모터로 변신
음악인 출신으로 최근 침체에 빠진 한국프로복싱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AK프로모션의 김영욱 대표.
가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국내에서는 시장이 없어서 전공인 재즈를 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가요를 했지만 재미가 별로 없었다. 때마침 녹음실도 설 자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홈 레코딩과 장비가 발전하면서 녹음경비가 많이 낮아졌고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기 수입 회사인 ‘뮤직 허브’를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국내외 비즈니스가 바쁜 와중에도 운동은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꾸준히 복싱체육관을 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복싱 용품도 많지 않았다. 당시 배우복서 이시영 씨 때문에 생활체육 인구도 증가하는 걸 보면서 괜찮은 아이템이라는 판단이 들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인 ‘레이예스’와 국내 총판 계약을 맺고, 복싱 용품 전문 수입 회사인 ‘파이트 허브’도 설립했다.
몇 년 동안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용품 사업에도 손대다 보니 복싱 전반으로 차츰 관심이 넓어졌다.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선수들도 시합이 안 잡히고 관리가 잘못 되면서 선수 커리어를 망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환경도 안타까웠다.
그러던 차에 백승원 관장의 제안도 있었고 선수를 지원하면서 회사도 홍보하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 생각은 결국 AK프로모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가수도 키워봤지만 가수보다는 복서들이 더 노력을 하고, 더 순수하고, 카리스마도 더 있다고 느끼던 터라 즉시 시장 조사에 착수하고 복싱 프로모팅에 뛰어들었다.
첫 흥행의 실적은 마이너스 1억 원 정도. 김 대표는 이를 손실이라 치부하지 않고 투자금으로 여긴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1억 원을 써도 별로 표가 안 나지만 현재 권투계는 침체된 상황이라 이 정도만 투자해도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더 자신감을 얻었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복싱이 다 잘 되고 있고 우리도 과거에 대단했던 만큼 권투 자체에 큰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큰 경쟁자가 없고 인프라 확립에 소요되는 비용이 비싸지 않으므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복서를 위한 프로모션 운영 계획
지난해 11월 7일 라마다호텔 특설링에서 열린 ‘파이팅 코리아 시즌 1’ 대회의 장면. AK프로모션은 이 대회를 통해 프로복싱계에 신선하게 데뷔했다.
현재 프로모션이 위치한 사옥의 옥상에도 링이 있는데, 본인이 사용하는 사무실 겸 야외 공간에 정규 링을 배치하고 개폐가 가능한 전동식 지붕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 유료 관중 100명 정도 들어올 수 있고 방송도 가능한 아담한 경기장을 만들어 최대한 경비를 줄이면서 선수들에게 자주 시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프로모션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선수 위주의 운영을 할 것이라고 밝힌 김 대표는 자신이 복싱계에 얽힌 인맥 관계나 선후배 등의 학연, 지연이 없는 것이 오히려 선수들이나 회사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포츠인데 너무 감정적인 문제가 앞서기 때문에 현재의 복싱계가 심각한 트러블이 발생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의리, 배신 같은 감정적 요인으로 인해 스포츠 자체의 본질을 잃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따라서 AK프로모션에서는 소속 선수들이 아무 고민 없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려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줘서 멋진 경기를 선보이게 되면 팬들이 늘어나고 그 팬들로 인해 회사가 올리는 수익을 선수들에게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러면 선수와 팬과 회사가 모두 윈-윈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물론 영리를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 자체에도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3월 1일 ‘파이팅 코리아 시즌 2’ 개최
AK프로모션의 선수들. 왼쪽부터 석봉준, 김동희, 신홍균, 이사야, 유주상.
김영욱 대표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한중일 토너먼트다. 복싱과 정치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데 한중일이 아시아에서는 미묘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으므로 이걸 복싱으로 승화시키면 제법 멋진 스포츠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증된 선수들을 출전시켜서 연속성을 가진 토너먼트를 추진한다면 아시아에서 충분히 주목 받을 수 있고, 세계타이틀까지의 연결고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이팅 코리아 시즌 2’는 3월 1일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IBF 아시아 2대 타이틀매치로 벌어지는 이번 대회에는 석봉준(대한)과 이사야(코리안) 선수가 출전하고,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생중계한다. 오랜만에 복싱계에 출현한 사회인 출신의 프로모터가 복싱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를 복싱팬과 관계자들은 원하고 있다. 그러면 제2, 제3의 AK 프로모션이 출현하게 되고 국내 복서들의 설자리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젊음, 냉철한 판단력, 추진력, 재력과 복서를 향한 따뜻한 마음까지 두루 갖춘 김영욱 대표를 중심으로 AK 프로모션의 약진이 국내 프로복싱 부활의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선수들이 열심히 운동했으니 좋은 시합 보여드릴 것이고, 이번에도 화려한 조명, 음향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토너먼트의 질을 높이고 더 멋진 환경과 볼거리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팬 분들께서 경기장에 티켓을 사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선수들이 살고 저희들이 사니까요.(웃음)” [헤럴드스포츠 복싱전문위원]
*황현철 복싱전문위원은 복싱전문잡지 <펀치라인>의 발행인이었고, 지금은 링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복싱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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